11/27/2022 - 나는 세상의 빛이라 [요한복음 9:1-5]
https://youtu.be/qnwsN3OfSbs
빛은 이 땅에 생명체들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특별히 빛은 어둠을 밝히는 일을 합니다. 불을 발견한 인류는 태양빛이 없는 밤에도 어둠을 밝히며 밤에도 활동을 하면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전기와 전구를 발명한 후에는 밤에도 전기불을 대낮처럼 밝혀 놓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밤에 도시를 밝히고 있는 불빛들을 보면 하늘에 있는 별빛보다 더 밝고 화려하게 빛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세상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빛으로 점점 밝아지는데, 영적으로는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문명화되면서 사람들이 육신적으로는 편하고 풍요하게 살게 되었지만, 영적으로는 미개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잔인한 범죄들이 일어나고, 마음에 어두움과 우울함을 가지고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물리적인 어두움을 몰아내고 밝히는데 관심하지만, 하나님이 관심은 이 세상에서의 영적인 어둠을 몰아내고, 세상을 밝히기를 관심하고 계십니다.
이사야 9:2절에 보면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흑암에 행하던 백성,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들’ 은 영적으로 죄의 어둠가운데 있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영적 어두움 가운데 있는 이들을 영적으로 살리시기 위해 빛을 보내주실 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죄로 어두워진 이 땅을 비추는 생명의 빛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대림절 첫 주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림절 첫 촛불을 밝혔습니다. 이렇게 초불을 밝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음을 나타내고자 함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구약시대 성막의 성소안에는 등잔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은 매일 성막에 들어와서 등잔대 위에 있는 7개의 등잔의 심지를 다듬고, 올리브 기름을 채우며, 등잔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 등잔대 앞에는 12개의 떡이 올려져 있는 떡상이 있었고, 그 등잔불들은 그 앞에 있는 떡상을 직접 비치고 있었습니다. 등잔불이 밝히고 있는 12개의 떡은, 12지파로 구성된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떡상을 밝히는 금등잔대의 빛은, 하나님께서 빛이 되셔서 이스라엘을 비춰주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천국에는 해와 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천국은 어둡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림자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빛이 되셔서 천국의 모든 곳을 밝히시기 때문입니다.
빛되신 하나님은 죄로 인한 어둠을 싫어하십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어둠을 밝히실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빛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에 우리의 영적 어두움을 물러가고, 빛 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한 소경에 대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평생 어둠가운데 있는 그를 눈뜨게 하셨고, 빛 가운데 살아가게 하십니다. 오늘의 말씀은 단순히 눈먼 사람을 눈뜨게 하시는 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어떠한 분으로 이 땅에 오셨는지를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죄의 어둠가운데 있는 죄인들을 영적으로 눈을 뜨게 하시고 빛을 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대림절은 영어로 Advent 인데, ‘오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Adventus 에서 유래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는데,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예수님께서 빛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삶을 비쳐주십니다. 오늘 대림절 첫날에, 빛으로 이 땅에 오신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빛가운데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함께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우리에게 빛되신 예수님이 오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보게 되고, 내 안에 영적인 어두움을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 맹인이 나오는데, 그는 태어나면서 부터 앞을 못보는 맹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 맹인을 보면서 질문이 생겼습니다. 저 맹인은 누구의 죄로 인해서 날때부터 맹인이 되었냐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병에 들거나, 장애를 가지게 되면 그 이유는 그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 맹인은 날때부터 앞을 못 보니, 누구의 죄로 인해 그가 죄의 벌을 받는 것인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그가 맹인이 된 것은 누구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신 후, 맹인의 눈에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십니다. 맹인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로암 연못에 가서 눈을 씻었고, 눈이 밝아졌습니다. 눈을 뜬 소경은 나중에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을 믿고 그 앞에 절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 맹인의 눈을 뜨게 해 주심으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빛임을 드러내셨고, 맹인은 예수님이 이 세상의 빛이요 구원자이심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맹인을 고치시는 일을 보고도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는 표적을 보고도,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빛으로 보내신 일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이 안식일에 맹인을 고치는 일을 했다고 정죄하며 죄인 취급했습니다.
그러한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9:39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맹인이라고 규정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죄를 보지도 못함으로 죄가 그대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만나고서도 자신들의 죄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영적으로 눈을 뜨고 있었다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맹인을 눈뜨게 하신 일을 보고, 분명 그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알았을 것이고, 또한 자기 자신들이 죄임임을 깨달아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빛되신 예수님을 보고서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그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그의 친구들을 제자로 처음 부르실 때에, 그들은 밤새 고기를 잡으려고 바다에 그물을 던졌지만 한마리도 잡지 못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비롯한 어부들에게 깊은대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그 결과,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는 한 행동이 무엇입니까? 그는 예수님께로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간청하기를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물고기를 많이 잡게 하시는 것을 보고서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 볼 때에 자신은 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 앞에 있기에 죄인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아래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하나님의 주권가운데 하나님의 하시는 일임을 보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든 일들이 우연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영적인 빛가운데 있는 이들은 모든 일들 뒤에서 역사하시는 영이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빛 가운데 있는 이들은 자신의 죄에 대해 민감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죄의 어둠가운데 있는 이들은 중한 죄를 지어도 이를 보지 못하고 무감각한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주님과 함께 하는 이들은 자신이 지은 더러운 죄가 예수님의 빛가운데서 밝히 드러나기 때문에 이를 깨닫고 회개하고 정결케 되는 것입니다.
2. 그리고, 빛되신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실 때에, 우리는 참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참 빛이실 뿐만 아니라, 참 생명이십니다. 요한복음 1:4절에, 예수님을 가리켜 말하기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스스로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생물들이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빛입니다. 빛을 적게 필요로 하든, 많이 필요로 하든 상관없이 생명체에게는 빛이 필요합니다. 빛 아래에 있을 때에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도 빛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어떤 이들은 어두운 죄의 영향력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빛되신 예수님과 멀리 떨어져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아갈 때에, 우리안에 영적인 생명력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의 여왕으로 불리는 크로스비(Fanny J, Crosby)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8000여곡 이상의 찬송가 노래 가사를 작사했는데, 그녀는 앞을 못보는 맹인이었습니다. 그녀는 태어난지 6개월 때 의사의 실수로 시력이 나빠졌고 결국 실명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할머니가 들려주는 성경이야기를 듣고 영의 눈이 열려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기도하는 중에 신령한 노래들을 많이 썼습니다. 그중에는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인도하시니..." 곡도 있습니다.
그는 아홉 살 때 기도하기를 "만약에 하나님이 나에게 시력을 허락해 주신다해도 나는 안 받으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밝은 눈을 주실텐데요. 세상에서 더렵혀지지 않은 깨끗한 눈으로 우리 주님의 얼굴을 보렵니다.” 그리고 그녀는 말하기를 "나는 내 눈을 멀게한 그 사람을 만난다면 나는 그에 한 없는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육신적으로 눈을 뜨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음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육신적인 눈이 밝아 세상의 것에 눈이 팔리다가 보면, 영적인 하나님을 바라보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패니 코스비 여인은 육적인 눈을 가려져서 어둠속에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을 보며 밝은 빛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받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에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가는 것이, 생명의 빛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이 땅에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119:105절에,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빛되신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우리는 어둠과 빛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거짓과 진리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사망과 생명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우리는 비로소 빛된 삶, 참 생명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영생의 길로 인도하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3.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갈 때에, 우리 또한 빛된 존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한국에 이원철 작가가 2019년 12월에 사진 전시회를 했는데 그 전시회의 제목은 “불꺼진 등대” 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전에 보면 바다위 돌섬이나 바닷가에 있는 등대들을 찍은 사진입니다. 그 많은 등대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불이 꺼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원철 작가가는 불꺼진 등대들을 통해, 한국 사회가 자신들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을 불꺼진 등대를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등대에 빛이 없다면 그 존재는 그 가치를 잃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에 빛을 발하는 존재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5:14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예수님은 당신이 빛이라고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착한 행실을 하는 빛된 삶을 살아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다고 하면서도, 빛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택함을 받은 것은 빛된 삶을 살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꺼지 등대처럼, 성도들의 삶에 말씀으로 행하는 선함이 없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는 무익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이 영적인 어둠, 죄의 어둠으로 부터 벗어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 땅에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둠속에 있는 이 땅에 오셔서, 참 생명의 빛을 비추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에, 빛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 땅에 어둠의 역사가 강한 이때입니다. 어떨 때에 우리의 삶에 어두움이 내려 앉을 때가 있습니다. 이 때에 우리는 빛되신 주님께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 말씀의 빛이 우리 가운데 임하고, 우리 가정과 교회 가운데 임할 때에 어둠의 죄의 역사는 물러가고, 하나님의 영광의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 대림절기에, 생명의 빛되신 예수님을 모심으로 우리 가정과 교회가, 이 사회안에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들을 많이 감당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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