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2/2023 -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2) [에베소서 6:10-17]
https://youtu.be/Af2JJA8fNWQ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편지를 마치면서 그들에게 강력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명령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전신갑주는 당시 전쟁을 치르는 로마 군인들이 입는 옷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에베소교회 교인들에게 그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말씀은 곧 성도는 전쟁을 치르는 군인과 같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이유를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의 씨름의 대상은 마귀입니다. 마귀는 인류의 영원한 적입니다. 사람들을 시험하고 유혹해서 생명되신 하나님과 대적하는 삶을 살아가게 만듭니다. 사람들을 타락하게 해서, 마귀와 그 무리들을 위해서 마련된 지옥에 함께 떨어지게 만듭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은 이러한 마귀의 공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 어떤 사람이 나를 죽이려고 칼을 들고 덤벼든다면 우리는 그냥 있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목숨을 다해 그 사람과 죽기살기로 싸우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입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 간계를 부립니다. 자신의 모습은 숨기고, 사람들을 속여서 하나님께 죄짓게 만들고, 또한 사람들로 서로 갈등하며 싸우도록 만듭니다. 눈에 보이는 대적과 싸우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그 뒤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 마귀와 대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몇 년동안 코로나 바이러스를 경험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를 우리는 경험했습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나를 죽일 수 있는 바이러스가 존재함을 인식하며 사람들은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도록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고,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지냈습니다. 세계 국가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해서 힘썼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일로 인해서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아시아 사람들이 바이러스를 옮긴 주범이라도 되는듯 증오하는 사람들도 나타났습니다. 모두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인해서 힘들고 아파하는 같은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동정하고 안타까워하기 보다는 험악한 말과 폭력으로 사람을 상대하는 악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납니까? 사람의 악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부추켜 서로 싸우도록 만드는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마귀의 존재를 간과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 누구보다 마귀가 호시탐탐 공격하려고 주시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가장 강하고 위험한 적은 사람이 아니라, 그 뒤에서 역사하는 마귀임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러한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할 방법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마귀의 간계를 대적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급해 주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면, 아무리 강한 마귀라도 능히 대적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지난 주일에 하나님께서 주신 전신갑주의 아이템으로 진리의 허리띠, 그리고 의의 호심경을 주셨음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다음으로 주시는 전신갑주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번째 하나님께서 주시는 전신갑주의 아이템은 신발입니다. 바울은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특징은 평안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아기로 탄생하셨을 때에, 천사들은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 (누가복음 2:14)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죄를 대속해 주심으로,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있던 불화가 평안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끼리도 그리스도의 복음안에 있을 때에 하나가 되고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통한 평안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대적하는 악한 영과 싸워서 이길 때에 참 복음의 평안이 임하는 것이고, 그 평안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 신이 필요합니다. 로마 병사들의 신은 질긴 가죽으로 만들었습니다. 바닥은 철로 만든 징을 박아서 더 단단하도록 했습니다. 로마 병사들은 그 신을 신고 거친 전쟁터를 누비며 대적들과 싸웠습니다. 그리고 대적들을 평정해갔습니다.
성도들도 주의 평안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복음의 신을 신고, 먼저 마귀의 영역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마귀가 점령하고 있는 거친 땅에 들어가 영적인 전쟁을 치룬 후 그 땅을 빼앗아 점령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5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와 관련해서 희안한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질 때에 사탄은 사람들을 통해서 복음을 대적하게 만듭니다. 지금도 이슬람국가나 불교, 힌두교 국가에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여러가지 형태로 방해와 핍박을 합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하고, 기독교인들을 못살게 구는 것은 그들의 성품이 악해서가 아니라, 그 뒤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나를 대적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물리적으로 싸워서는,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나를 미워하고 핍박한다고 해서 이에 맞써서 똑같은 방법으로 싸우는 것은 그리스도의 평안의 복음을 왜곡하는 것이고, 이를 마귀는 원하는 것입니다. 나를 핍박하는 원수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평안을 만들어 갈 때, 그리스도의 복음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이 평안을 가지고서 간계를 부리는 것이 있는데 이도 인식해야 합니다. 그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거짓 평안에 머무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서 타락한 남유다왕국에 선지자를 보내어서, 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심판할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경고하십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반대로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고, 하나님이 보호하시는데 어떻게 이스라엘이 망할 수가 있겠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심판을 경고한 참 선지자를 비난하고 핍박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향해서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6:14절에,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형식적으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불의를 행하며, 약한 자들을 해하는 일들을 그냥 보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죄악으로부터 돌이키도록 경고하셨습니다. 그런데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할 때에 그들에게 심판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죄에 대해서 무감각하게 하여 거짓 평안을 누리도록 합니다. 그런데 참 평안은 주님과의 바른 관계속에서 주님으로터 오는 평안인 것입니다. 마귀의 거짓 평안에 속지 말고, 주님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시를 축원합니다.
네번째, 전십갑주의 아이템은 믿음의 방패입니다.
고대 전쟁에서 위협적인 무기 중에 하나가 화살입니다. 그리고 어떨 때 병사들은 화살 촉에 송진을 발라 불을 붙여서 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불화살을 막을 수 있는 무기가 방패였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방패는 나무판에 철과 가죽을 씌워서 만든, 병사의 온 몸을 가릴 수 있는 크기의 방패로, 그 방패 뒤에 있으면 불화살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마귀의 공격을 불화살로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불과 같은 환난과 어려움, 그리고 유혹들이 마귀로부터 옵니다. 그럴 때에 믿음의 방패가 있으면 그 모든 공격을 너끈히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불화살을 막는 방패가 바로 하나님이 되십니다. 창세기 15: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환상중에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은 여러가지 두려운 상황 속에 있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땅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두려운 일입니다. 그가 얼마나 두려웠던지 자기 아내를 취하려고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하기도 합니다. 가나안 북쪽 왕들의 연합군으로부터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자기 집안에서 훈련시킨 군사를 동원해서 구해 왔지만, 여전히 연합군들의 복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꿈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다.”
다윗도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산 사람입니다. 다윗이 시편 7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7:10절에,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다윗에게 많은 어려움과 공격들이 있었습니다. 사울왕의 위협도 있었고, 이스라엘의 왕이 된 이후로도 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방패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도 이러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가 되셔서 어떠한 마귀의 공격도 막아 주신다는 믿음 말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떨어지게 하려고 불화살을 날립니다. 건강의 문제, 가정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 세상적인 유혹 등의 불화살을 날립니다. 그런데 아무리 불화살을 날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을 방패로 삼아 그 뒤로 피하면 모든 공격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방패되심을 믿지 못하고, 다른 것으로 막아보겠다고 하나님을 떠나면 마귀의 공격에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십니다. 이를 믿고, 사탄이 불화살로 공격할 때에 도리어 방패되신 하나님 뒤에 숨으며, 그분과 더욱 가까워지는 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다섯번째, 하나님께서 주시는 전신갑주는 구원의 투구입니다. 투구는 또한 외부적인 공격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합니다.
군인이 싸우다가 머리를 다치게 되면 치명적입니다. 전쟁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투구를 씁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마귀의 공격은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일대일 제자양육’ 성경공부를 하다가 보면 이러한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오늘밤 죽어도 천국에 갈 것을 믿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사실 그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비록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24절, 예수님은 확실하게 이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런데 마귀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요즘 이단들이 현혹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초대 교회때에 율법주의자들은 예수님을 믿어도 육신의 할례를 받아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요즘 이단들을 보면 기존 교회에는 구원이 없고, 자신들에게 구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마치 자신들이 구원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날 대속하신 구원자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면 구원에 이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이 믿음의 확신 속에 있을 때에, 우리는 구원을 왜곡하고 의심케 하는 마귀의 간계를 이길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는 구원의 자녀입니다. 더 이상 마귀의 정죄는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성령의 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다섯까지의 아이템들은 공격을 방어하는 무기입니다. 그런데 방어만 잘한다고 승리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공격을 해서 무찔러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공격용 무기는 성령의 검입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 아이가 오락하는 것을 보니까 어떤 미션을 수행할 때에 아이템을 확보하더라구요. 그런데 무기들이 참 다양합니다. 상대하는 적의 강함의 정도에 따라 무기를 맞추어서 사용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기를 주실 때 능력별로 무기를 차별적으로 주시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의 무기만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무기는 충분히 마귀를 상대로 해서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 말씀을 대할 때에 별 공격력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두려워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사탄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상대로 시험 하기도 했습니다. 마귀는 40일간 금식하시고 주리신 예수님께 와서 시험을 합니다.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라. 성전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봐라. 나에게 절하라. 그럴 때에 예수님은 마귀의 간계에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간계를 말씀으로 분별하셨고, 그리고 마귀를 말씀으로 물리치십니다.
예수님과 같이 전능하신 분도, 마귀를 자신의 생각과 이성, 상식으로 물리치지 않으셨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분별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하셔서 물리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막강한 말씀의 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마귀를 이기기 위해서는 그 말씀을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고 강력한 무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취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됩니다. 전에 학교에 다닐 때에 교과서를 안가지고 온 학생이 있으면 선생님께서 “너는 전쟁터에 가는데 총을 안가지고 오냐?” 라고 꾸짖으십니다.
그런데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마귀를 상대로 하는 전쟁터에 무기없이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마귀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의 검에 얼마나 무력한지, 속수무책인 지 잘 압니다. 그러니까 마귀는 성도들로 하여금 성경을 하찮게 여기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말씀의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격언이나 명언들을 더 관심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에서 말하는 전문가의 말을 더 신뢰하도록 만듭니다. 성경은 예배 때나 읽는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성경말씀은 현대에 맞지 않는 구시대의 산물이라고 치부해 버립니다.
이러한 마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닙니다. 이러한 마음이 올 때에, 이것은 마귀의 공격임을 감지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더욱 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의 마귀의 공격을 능히 대적하여 물리치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바울은 편지를 마치면서 에베소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고 명령합니다. 그 말은 곧, “ 당신들은 지금 전쟁을 치르는 군사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귀는 세상이 창조될 때부터 지금까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사람들을 미혹해서 죄를 짓게 만들고 사망으로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마귀를 능히 대적해서 이길 무기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주신 것입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전신갑주로 무장하지 않으면 마귀의 간계에 속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내 생각과 경험, 지식과 지혜를 너무 과신하지 마십시오. 예수님도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에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셨습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우리가 세상의 악한 영, 마귀와의 영적인 전쟁 가운데 있음을 늘 명심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무기로 마귀를 이기고, 승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요 교회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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