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2/2023 -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로마서 2:25-29]
https://youtu.be/OM7W_iGAQ1k
바울이 교회에 쓴 편지들은 신약성경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떤 교회에 문제가 있거나, 권면한 일이 있을 때 편지를 써서 그들을 복음으로 잘 지도하고자 힘썼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편지를 마칠 때에는 주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면서 축복하면서 편지를 끝냅니다. 그런데 오늘 갈라디아서는 좀 다릅니다. 그는 축복의 인사를 하기 전,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도 없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이 구절을 통해서 우리는 바울이 갈라디아교회에 일어난 일로 인해서 얼마나 괴롭힘을 당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가장 괴로워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왜곡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편지 첫부분에 갈라디아교회를 이상하다고 말합니다. 1:6-7절에,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갈라디아교인들은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복음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떠난 후 교회안에 나타난, 유대 율법주의자들의 말을 듣고 그들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들은 갈라디아교인들에게 왜곡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갈라디아교인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율법도 지켜야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다른 것은 몰라도 육체의 할례를 행하는 것이 필수라고 가르쳤습니다.
여러분, 구원을 받기에 율법을 지키고, 무엇보다 할례가 조건이 됩니까? 여러분들 할례받으셨나요? 그렇지 않은 것이지요. 율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에,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이 할례를 받으므로 그 자손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나타내는 몸의 표징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나면서 8일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할례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드러내는 아주 중요한 몸의 표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는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하나님께는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하실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모든 죄인을 구원하셨고,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곧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상관없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 구원을 얻도록 하나님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거짓 교사, 율법주의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며,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함께 따라야 한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사도 바울에 대해서도 비하했습니다. 거짓교사들은 바울이 진정한 사도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이 부르신 사도는 12제자들인데 바울은 예수님이 부르시지도 않아고, 도리어 교회를 박해한 자이기에 그는 사도도 아니라고 바울의 권위를 깎아 내렸습니다. 그러니 갈라디아교인들이 그들의 말에 현혹되어서, 바울의 가르침을 떠나 거짓된 가르침을 따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이 얼마나 속상하고 괴로웠겠습니까? 바울이 고난가운데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는데 그 교회가 거짓교사들의 가르침에 넘어가서,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은,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흔적이 무엇일까요?
그런데 바울만 예수의 흔적을 가진 자들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예수의 흔적을 가진 자들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바울이 말한 예수의 흔적이 무엇인지를 살펴 보면서,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바울은 자신의 몸에 예수의 흔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몸에 할례의 흔적이 있다고 말하는데, 이에 반박하며 바울은 자신의 몸에 예수의 흔적이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의 흔적이라고 할 때 쓰인 단어는 ‘스티그마’입니다. 이 스티그마는 그 당시 노예나 가축의 소유주들이 자신의 것으로 표시하고자 남긴 흔적을 말합니다. 주인은 쇠로 자신이 주인임을 나타내는 글씨나 모양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쇠를 불에 달군 후에, 노예나 짐승의 몸을 이 쇠로 지져서 자신의 소유로 표식을 합니다. 그러니 노예나 짐승은 누구의 스티그마를 받았느냐에 따라 그들이 누구의 소유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은 자신은 예수님의 스티그마, 흔적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곧 예수님이 자신의 주인이시고,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 소유물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 주인이 바뀌게 되면 내 삶도 바뀌게 됩니다. 바울이 예수의 흔적을 몸에 지닐 때에 그에게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그는 말합니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여러분,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 자랑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장 많이 자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재물을 자랑하고, 자녀를 자랑합니다. 건강을 자랑합니다. 많이 배운 것을 자랑합니다. 각자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들,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바울을 괴롭게 하던 유대인들이 자랑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육체에 할례받은 것을 자랑을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에 대해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표가 할례이기 때문에 할례받은 것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들은 할례가 마치 구원의 증표인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사실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육체의 할례를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바울도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이고, 베냐민 지파고, 경건한 바리새파이고, 그당시 유력한 랍비로부터 율법을 배운 것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여겼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 후에, 그 자랑거리가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을 경험한 후, 구원은 사람이 아무리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킨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원에 이르는데 사람의 행위, 공로는 전혀 소용이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구원에 이르게 됨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그 어떤 자신의 행위나 공로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자신을 구원할 유일한 것임을 깨달았기에, 그는 예수 그리스도도의 십자가 만을 자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십자가가 정말 자랑할 만한 것입니까? 그 당시에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십자가는 가장 흉악한 죄인이나, 로마제국에 대적하는 사람들이 달리는 사형도구였습니다. 십자가는 죄의 상징이고, 저주의 상징입니다.
바울도 갈라디아서 3: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알고 난 후로는 오직 그 십자가를 자랑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제 십자가는 더 이상 저주와 죽음의 상징이 아니라, 구원과 생명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최고의 자랑거리로 삼고, 이를 증거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최고의 자랑거리는 무엇입니까? 어떤 분들은 자식을 자랑하고, 어떤 분들은 자신의 재물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외모나 재능을 자랑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랑하는 세상의 어떠한 것도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수도 없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우리를 옮겨 놓을 수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우리를 죄의 죽음에서부터 구원해 주시는 유일한 능력인 줄로 믿습니다.
바울과 같이 예수의 흔적을 가진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를 깨달은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자랑스럽게 날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 그리고 예수의 흔적을 가진 이들은 새 사람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진 자들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이고, 예수님이 자신의 주인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예수의 흔적인 가진 사람은 주인이신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자 합니다. 바울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16절에,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에 중요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흔적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해서 주인의 뜻을 따라 새롭게 지어져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의 흔적을 지닌 사람으로 새로 지으심을 받기 위해서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일입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로 인해, 세상이 나에게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말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세상은 죽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의 죄악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서 바울에게 아무 영향력도 끼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새로 지음받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9:23절에, 예수님은 무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에 속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세상의 흔적을 몸에 지니고 세상을 따라서 살아갑니다. 세상적인 생각, 가치관, 유행, 문화를 따라서 세상을 닮아갑니다. 세상이 자신을 만들도록 내어 맡깁니다.
그런데 예수의 흔적을 지닌 이들은 세상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나를 새롭게 지으시도록 주님께 맡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의 새롭게 지어주심을 기대하며, 주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인되신 주님의 뜻을 살아갈 때에,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존재로 지어지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흔적을 지닌 우리는 주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존재로 날마다 변화되는 것입니다.
3. 그러기에 예수의 흔적을 지닌 사람은 그 흔적의 주인인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몸에 흔적이 있으셨습니다. 십자가의 흔적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에,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에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손과 발의 못자국과 허리의 창자국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에 난 상처, 흔적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순종의 삶을 살았던 아들의 흔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죄인된 사람들을 살리고자 죽으신 사랑의 흔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바울도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자랑스럽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다가 보니, 그의 몸에도 예수님과 같이 흔적이 생겼습니다. 루스드라같은 곳에서는 예수님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서 죽을 뻔했습니다. 곤장을 맞기도 했습니다. 자신을 박해하는 이들로 인해 고통과 수치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바울도 그의 몸에 예수의 흔적이 생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그 청년 바보의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33세 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크리스챤 ‘안수현 의사’의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그의 장례식이 영락교회에서 치러졌는데 이 때 4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참석했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 많은 분들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이 안수현 의사에 대해서 한 이야기들이 모아져서 나온 책이 ‘그 청년 바보의사’ 입니다. 안수현 의사는 돈이 없어서 검사를 받지 못하는 조선족 할아버지 검사비를 대신 내 주었습니다. 치료하던 환자가 숨지면 장례식에 찾아가 가족들을 붙잡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실의에 빠진 환자들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베푼 수 많은 선행과 희생들이 그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친구들에게 메일을 쓸 때마다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스티그마 안수현’
안수현 의사는 자신의 몸에 예수의 흔적, 스티그마가 있음을 깨닫고 산 사람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의 삶을 통해서 예수의 흔적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성도와 교회를 비판하는 이유가 우리에게 예수의 흔적이 보이지 않기 때문은 아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과 같은 세속적인 흔적들이 많기에 조롱당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성도는 예수의 흔적을 가진 자들이어야 합니다. 성도가 스스로 높아지고 강해지고 부해지려고 할 때, 우리는 예수의 흔적을 점점 잃어 버리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에게 흔적을 주시고 나의 주인이 되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낮아지고 손해보고 헌신하면서 살아갈 때에, 우리에게 있는 예수의 흔적은 더욱 선명해질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것이라고 스티그마, 흔적을 찍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로, 예수님이 주인되신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새로 지으심을 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흔적을 가진 성도는 날마다 주인의 뜻으로 살아가다 보니 새롭게 지은 받은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예수 흔적이 있는 이들은 예수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세상의 흔적을 지닌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의 자신의 부귀와 영화를 자랑하며 삽니다. 하지만 성도는 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자랑하며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흔적을 가진 이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서 보여주신 십자가를 지는 삶,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자신을 부인하며 살아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를 당신의 것이라고 도장을 찍으신 주님께서는, 바울과 같이, 우리의 삶에 주님을 나타내는 새사람의 모습이 나타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속의 물결이 강하게 성도를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 세상의 흔적을 가진 자가 아니라, 예수의 흔적을 가진 자임을 상기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는 삶을 세상에 드러내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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