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8/2022 - 누구와 함께 하십니까? [마태복음 1:18-25]
https://youtu.be/U3aC9V2yCaU
오늘 대림절 네번째 주일을 맞았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한 가족에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아주 복된 일입니다. 아이를 임신하였다는 사실만으로 아이의 부모 뿐만 아니라 가족들, 이웃들이 임신과 출산을 축하하며 복을 빌어 줍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은 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처녀 마리아를 통해서 임신되셨는데, 마리아가 임신하였다는 소식은 마리아와 그 약혼남인 요셉을 당황스럽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 마리아가 약혼남 요셉과 동침하지도 않았는데 아이를 임신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결혼을 하기도 전에 임신한 것이고, 그 임신한 아이도 약혼남의 아이가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인 것입니다.
오늘날은 미혼모에 대해서 호의적이어서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그 여인은 간음하였다고 해서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마리아의 약혼남 요셉이 이 일로 인해서 무척 당황했을 것입니다. 자신은 약혼녀 마리아와 동침한 적도 없는데 마리아가 임신을 했으니 말입니다. 여러분이, 요셉이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보통 사람같으면 그 약혼녀에 대한 배신감을 가지고 그 여인을 해하려고 할터인데,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했습니다.
성경은 요셉을 소개하기를 그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의롭다는 것은 법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의로운 요셉은 마리아를 율법에 맞게끔 처벌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녀의 죄를 공개해서 수치를 당하게 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녀를 위해서 조용히 그 일을 처리하고자 합니다.
‘의’ 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법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지었다고 사람을 정죄하고 수치를 주는 것이 의가 아닙니다. 의로움의 기초에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의는 사랑에 기초했습니다. 우리가 의를 행할 때에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서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마리아의 임신으로 인해서 많은 생각에 사로 잡혔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는데 주의 사자가 현몽을 합니다. 그리고 요셉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그리고 이어서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마리아가 처녀로서 잉태한 것은 성경에 나타난 메시야 탄생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천사는 그 아기의 이름까지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의 이름을 지어서 요셉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예수’ 라고 하라고 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자이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알려주는 것이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오늘 말씀은 아기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인, “임마누엘”을 통해서 예수님의 탄생이 저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임마누엘’ 이름에는 우리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죄된 존재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은 우리가 꼭 하나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안되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때로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사람인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안 계시면 사람들은, 죄의 지배를 받아 죄를 짓다가 죽을 인생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 라는 이름은 헬라식 이름인데, 히브리어로는 ‘여호수아’라고 합니다. 그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 땅에 모든 이들이 죄가운데 있고, 구원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죄인인지 모르고 살아가다가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만드시는 것은 사탄에게 속아 사망의 길로 가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닌, 사탄과 함께 하면서 사망으로 동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도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나의 가족, 친구와 이웃이 어떤 사람들인가에 따라서 사람의 삶이 달라집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다가 보면, 음악에 흥미가 생기고 음악가가 되기도 합니다. 성품이 좋은 사람과 함께 하면 성품이 좋아지지만, 성품이 좋지 못한 사람과 함께 하면 자칫 악한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좋은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성경공부하고 수련회도 가면서 교제하다가 보면 믿음이 성장합니다.
그런데 죄인인 사람들이 꼭 함께 해야 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사탄과 함께 할 때 사람들은 죄짓고 사망에 이르지만, 하나님께 함께 하실 때에는 죄로 부터 구원받아, 하나님이 자녀로 영생에 이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하시는 것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거부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거부하면, 그 자리를 누가 차지하는지 아십니까? 바로 사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에덴동산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와 함께 하시고자 만드신 임마누엘의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영생을 꿈꾸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사이로 뱀이 몰래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사탄은 아담과 하와를 속여서 그들을 지배했습니다. 사탄은 그들로 하여금 죄짓게 만들고, 끝내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단절시켜 버렸습니다.
그러한 사탄은 지금도 우리안에 역사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없으면 자기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고 속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은 인생은, 사탄의 지배를 받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결국 영원한 사망, 지옥에 이르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스스로를 죄로부터 구원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에만 우리는 사망에서 영생으로 옮기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그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하신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2.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떠한 사람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할거야…” 했던 분들이 있으십니까? 바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함께 있고 싶어합니다. 남녀 연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아무리 함께 있어도 더 있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예 결혼을 합니다. 결혼 서약을 할 때에, 신랑과 신부에게 묻는 전형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검은 머리가 하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어려운 일이 있거나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함께 살겠습니까?” 지금 한창 사랑의 절정에 있는 신랑 신부에게 이 질문은 괜한 질문입니다. 당연히 확신있게 "예" 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사랑이 식어지게 되면 당장 나타나는 변화는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하고 싫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가장 대표적인 사랑의 현상은 함께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와 함께 하고자 한다면,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그토록 사람들과 함께 하고자 하신 것도, 그리고 이 세상에 오신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들이 아닌 죄인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의로워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누가 죄인과 함께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보통 사람들은 주변에 불량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과 거리를 두려고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감옥에 갔다온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과 엮이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정반대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죄인이었기 때문에 함께 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더 가까이 오셨습니다. 왜냐하면 죄인된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죄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 많은 희생을 치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사람의 육신을 입고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 자유로우시고 광대하신 분이 사람의 육신을 입으셨습니다. 얼마나 제한적이고, 답답하셨겠습니까?
단독주택에서 사시는 분이 계셨는데 연세가 많아지셔서 자녀들과 함께 Nursing 홈을 다니보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Nursing 홈에 다녀오셔서 이런ㄴ 걱정을 하십니다. 그 동안 넓고 편하게 살다가 좁은 곳에 들어가서 살면 얼마나 답답하겠냐는 것입니다. 넓은 집에서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려고 해도 답답하고 불편하게 여기는데,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무한하신 분이 사람의 육신을 입고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늘의 영광을 포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연약하고 미천한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그것도 왕궁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할 자격이 없다고 정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내가 죄를 짓고 사탄과 사람들에게 정죄를 당하고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더욱 가까이 오시는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죄가운데 있다고 해서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도리어 연약하고 죄된 나와 함께 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로 적극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하며 죄인된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이유입니다.
3. 이제 성도들의 과제가 있습니다. 우리도 임마누엘 하나님과 함께 하고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하시고자 이 땅에 오셨지만 모든 사람들이 환영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하나님보다는 죄의 어둠가운데 머물러 있는 것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어둠의 것들과 멀어져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시편 1장에 복있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 복있는 사람은 누구와 함께 하지 말아야 할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악인, 죄인, 오만한 자들과 함께 하지 않는 이들입니다.
그러면 누구와 함께 합니까?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기를 기뻐하십시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임마누엘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하나님이 함께 안 계신 것 같은 환경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고 살았던 대표적인 인물이 다윗입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에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다윗은 자신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 빠져다고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죽을 것 같은 순간에서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확신했습니다. 우리가 인생에 어려움을 당할 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 때에도 주님께서는 나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한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말합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이 세상의 어떤 사람들도 이 땅에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늘 함께 하겠다고 약속한 배우자도 함께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릅니다. 그분은 내 평생에 늘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신데,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죽어 세상을 떠나도 함께 하십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여호와의 집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이 세상에 그 누구와 함께 하는 것보다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 힘쓰는 성도가 복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함께 할 때에 구원받고, 영원한 하나님의 집, 천국에 거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임마누엘” 이라는 예수님의 이름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의미있는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없으면 죄로 인해 죽을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자리는 사탄이 차지하고 사람을 지배합니다. 사탄의 지배를 받는 이들은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시고자 이 땅에 오셨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인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영광과 능력을 제한하셔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사람은 죄인들을 정죄하고 멀리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고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 성탄의 계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얼마나 열정적으로 오셨는지를 깨닫게 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열정적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모든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내 인생에 뭔가 불편하고, 손해가 되는 것 같아서 주저하는 것은 없습니까?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자 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손해를 주시는 분이 아니라, 도리어 하늘의 신령한 은혜로 풍성케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이번 성탄의 계절이, 그 어떤 사람과 함께 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이 복됨을 깨닫고,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죄인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주님으로 인해서 기쁨과 감사가 충만한 성탄의 계절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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