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5/2023 -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누가복음 3:7-9, 15-17]
https://youtu.be/N-Fu1ZZ3pX8
오늘은 사순절 2번째 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본격적인 메시야의 사역을 하시기 전에,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하나님은 세례 요한을 미리 보내셔서 예수님이 공생애의 삶을 잘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하도록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역할은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되었습니다.
4절에,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고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세상에 나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예수님을 기다리던 곳이 광야였고, 그는 그곳에서 사람들에게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광야에서 외쳤습니다. 제가 요한이었다면 이왕 외칠 것, 듣는 사람들이 많은 예루살렘과 같은 곳에서 외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살기가 힘든 척박한 곳입니다. 그럼에도 블구하고 요한은 약대털 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광야에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광야는 하나님을 만나기에 아주 적합한 곳입니다. 세상적인 것으로는 척박하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만나기 용이한 곳이 광야입니다.
광야를 히브리어로는 '미드바르’라고 합니다. 그리고 히브리어로 '말씀' 은 '다바르' 입니다. 그런데 '미드바르'와 '다바르'라는 단어는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광야는 예루살렘과 같이 사람의 소리로 가득찬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광야와 같은 때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것 같고, 척박한 시간들을 보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도 우리가 소망이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초점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과 가정, 교회도 그렇습니다. 모두 광야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막다른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는 때인 것입니다.
세례요한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광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풍요와 세상의 소리속에서 묻혀 살다가 보면 하나님의 소리는 세상 소리에 묻혀 버리기 일수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요한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하는 광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세례요한은 빈들, 광야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언제 자신이 주의 길을 예비할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절에 보니,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을 향하여서 외칩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리고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람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사람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전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요한을 통해서 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원하셨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어떻게 맞이하는 준비의 삶을 살아야 할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가운데 있음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세례요한이 하는 일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는 일이었습니다. 이 세례는 죄사함을 위한 물세례였습니다. 사람들이 세례를 받기 위해 무리를 지어 요한에게로 몰려 왔습니다.
마태복음에는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곳으로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세례받으로 나오는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누군가에게 독사의 자식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좋은 의미로 부르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독사는 다른 사람을 해하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고, 요한은 지금 세례를 받으러 오는 무리들이 악을 행하는 존재라고 강렬하게 꾸짖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누가 너희로 하여금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라고 합니다. 이 말은 곧 사람들이 독사의 자식과 같은 죄가 있고,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음을 강하게 질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서 사람들이 빨리 그 진노로부터 돌이켜야 함을 경각시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말하냐하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러한 존재인지, 하나님의 진노가운데 있는지를 별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죄악을 자각하지 못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자신들이 특별한 존재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그들을 질책할 때에,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의로운 사람들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고 외칩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이 하나님 앞에 특권이 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돌과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돌이라고 한다면 땅 바닥에 흔하게 널려있는 별 가치가 없는 존재입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특별한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것은 결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사람도 하나님의 진노에서 우리를 피하게 할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이 권력을 가지고 명예를 가진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스스로를 죄로부터 구원해 줄 수 있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해 줄 사람이나 방법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당시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아래있는 독사의 자식이고, 돌과 같이 무익한 존재임을 알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리 선하지 않은 존재입니다. 이것을 자각하고, 죄로부터 돌이킬 때에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되는 일인 줄로 믿습니다. 나 자신을 너무 의롭고 선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는 돌과 같이 별 볼일 없는 존재요, 하나님의 진노가운데 있는 독사의 자식과 같은 존재일 수도 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2.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들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많은 이들이 죄사함을 위한 세례를 받으러 왔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그들을 향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외칩니다. 합당한 열매가 없는 회개를 하나님은 원하지 않으십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지은 것을 사해주시기 위해서 속죄제사를 제정하셨습니다. 죄지은 사람대신 흠없는 짐승이 대신 죽음으로 죄가 용서함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죄사함을 받았으면 그 은혜에 감사하며 죄짓지 않는 삶으로 변화되어야 했는데, 그들은 속죄제사만 드렸지 삶에는 변화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그들을 보며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호세아 6:6절에 보면,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기 원하시는 것은 회개를 통한 열매맺는 삶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내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변화된 삶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요한은 열매 없는 나무마다 하나님께서 찍어 버리시는데, 지금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다고 경고합니다.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이제 열매가 없으면 곧 휘둘러서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작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의 임박함과 심각함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발밑에 하나님의 심판의 도끼가 놓여있다면 매우 심각할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할 때에 심각해야 합니다. 변화되지 않으면 도끼에 찍혀 버릴 수도 있다는 심정을 가지고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요한의 심각한 경고를 들은 사람들은 자신들은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습니다. 그 때 요한이 대답합니다. 옷 두 벌있는 자는 옷 없느자에게 나누어주고,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나를 입히고 먹는데만 신경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돌보고 구제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열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으러 온 세리들에게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부과된 것 이외에는 더 거두지 말라고 합니다. 사실 세리들이 그 당신에 죄인으로 취급받는 주된 이유는 그들이 로마의 공무원이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거두어들여야 하는 세금보다 더 많이 거둬들여서 자신의 유익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직하게 부과된 것만을 행해도 그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라는 것입니다.
군인들은 어땠습니까? 요한은 군인들에게 말하기를 “강탈하지 말고,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고 했습니다. 군인들은 힘이 있으니까 힘으로 다른 이들을 강탈하기 쉬웠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그들의 권력을 불의를 위해 쓰지 말고, 현재 급료에 만족하라고 합니다.
위의 말씀을 보면,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뭔가 특별하고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에게 맡겨진 일을 정직하고 충성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이들을 살피며 그들을 돕고 선대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회개에 합당하지 못한 열매를 맺고 삽니다. 다툼의 열매, 불의의 열매, 탐욕의 열매, 불충성의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
우리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회개를 한 후에, 변화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합당한 열매를 맺는 변화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3.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 세례를 주셔서,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은 죄사함의 물세례를 주지만, 내 뒤에 오시는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이 주는 물세례는 내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죽고, 이제 새로운 변화의 삶을 살아가겠다고 결단하며 물세례를 받습니다.
그런데 물세례를 받았다고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결단과 각오를 가지고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성령 세례를 베풀고자 하셨습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을 때에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17절에 보면, 예수님은 손에 키를 들고 계십니다. 키라고 하는 것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기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키에다가 탈곡한 곡식을 놓고 키질을 하게 되면 쭉정이는 바람에 날려 키밖으로 날아가고, 알곡은 키위에 그대로 남습니다. 그리고 그 알곡은 창고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알곡이 되어 창고에 들인다는 것은 성령세례를 받고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감을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2:3절에,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하였습니다.
성령의 세례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믿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로 죄의 권세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권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신 후에, 마가의 다락방에 오순절 성령님을 부어주셔서 교회를 세우시고, 구원의 사명을 감당케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령세례를 받는 이들도 있지만 불세례를 받는 이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키질을 하셔서 알곡은 창고에 들어가지만, 쭉정이들은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집니다. 이는 곧 죄로부터 구원함을 받지 못하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의 심판에 들어가는 자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의 세례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믿고 구원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늘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고, 성령의 주장하심에 순종할 때에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세례 요한은 죄사함의 세례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라고 쏘아 붙입니다. 그리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합니다.
우리는 독사의 자식들과 같이 하나님의 진노가운데 있는 악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하지만, 별로 변화되지 않은 삶을 살아가기 일수입니다.
이래서는 긴박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진노를 피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세례를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려고 하더라도,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않으면,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성령세례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모심으로 죄에 대해서는 죽고 예수에 대해서는 살게 됩니다.
사순절 기간, 예수님께서 주시는 성령세례를 더욱 간절히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가정, 교회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늘 맺어지고, 새로운 피조물로 날마다 변화되고 세워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