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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rRre7O_a0rk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려고 왔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들 중에 의인도 있고, 죄인도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때로 자신의 죄된 모습을 깨닫지 못하고, 다른 이들의 죄에 대해서 문제를 삼습니다. 그도그럴 것이 다른 사람을 보듯이 자신을 객관화 해서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럽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냉정한 것이 보통 사람의 모습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그러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바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 무리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으로 들어오실 때에 백성들이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그 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예수님과 사람들 앞에 세웁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이 여인을 어떻게 해야겠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들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 입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묻는 것은 음행한 여인을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몰라서 묻는게 아닙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으로는 그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고 한 가르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선생님은 어떻게 말하겠냐고 묻는 것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눈에 가시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자신들은 율법을 강조하며 경건하게 살려고 힘쓰고 사람들에게 가르치는데, 예수라는 사람은 죄인된 사람과 어울리며, 율법을 무시하는 일들을 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이 음행한 여인을 빌미로 해서, 예수의 죄인됨을 드러내어서 고발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계획한 대로 되지 않고, 그 일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은 예수님이 죄인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두가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는 은혜와 또 하나는 예수님께서 죄인을 긍휼히 여기신다는 은혜입니다.

 

1. 먼저 우리는 율법을 통하여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는 은혜를 받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은 때로 율법으로 자신의 죄를 살피기 보다는 다른 이들의 잘못을 정죄하고자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음행한 여인을 데리고 옵니다. 그들은 형사들도 아닌데, 음행한 여인을 잡아 올 정도로 열심을 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간음한 현장에 남녀가 같이 있었을터인데 남자는 여자와 같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은 남자가 그 현장에서 도망갔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혹자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해서 여자를 간음의 상황에 빠뜨린 후 현장에서 그녀만을 잡아 왔다고 추측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여인을 잡아온 사람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치라 하였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들은 이 여인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몰라서 예수님께 묻는 것이 아닙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 율법에 관한 전문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어떻게 해야할지를 묻는 것은 예수님의 대답을 문제 삼아서 예수님을 고소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경건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고자 직접 간음한 여인을 잡아오는 열심을 보였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이 질문에 답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의 대답할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었습니다. 모세의 율법대로 행하라고 하던지, 아니면 그렇지 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것을 말한다고 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불리한 대답이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그 여인을 용서하고 돌로치지 말라고 하신다면, 그들은 예수님이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며 예수님을 정죄하고 고발할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모세에 율법대로 돌로 치라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그 동안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그동안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던 이유 중에는 예수님이 죄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정죄하기 보다는, 그들을 선대하며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간음한 여인을 돌로치라고 한다면 예수님을 따르던 이들에게 커다란 상처와 혼란이 야기될 것이고, 그의 지도력은 해를 입을 것이 뻔합니다. 그리고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돌로치라고 한다면 이 또한 문제가 될 수있을 상황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함정에 걸렸다고 내심 좋아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하시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질문에 답은 하지 않고 이상한 행동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몸을 굽혀서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십니다. 예수님의 이 모습은 생뚱 맞습니다. 왜 아무 말씀도 없이 땅에 손가락으로 글을 쓰고 계시는 것입니까? 이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땅에 뭐라고 쓰셨을까 궁금해 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내용은 알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땅에 뭐라고 쓰셨는지 알려주지 않고 그저 예수님께서 땅에 손가락으로 글을 쓰셨다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곧 그 말씀은 예수님의 행동이 의미있는 행동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시는 장면과 흡사한 일을 구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에 하나님께서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출애굽기 31:18절에,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돌판에 새겨 주실 때에친히 쓰셨다고 했는데, 이 원문을 보면, “손가락으로 쓰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계명을 손수 손가락으로 돌판에 계명을 써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 손가락으로 바닥에 글씨를 쓰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운운했는데, 예수님은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알지 못하고, 그 율법으로 율법을 주신 하나님까지도 정죄하고 고발하고자 했던 어리석음이 있었습니다

 

2. 그런데 하나님께서 율법과 말씀을 주실 때에 그것은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정죄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죄를 깨닫고 살피라고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지속적으로 어떻게 말할 것이냐며 대답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일어나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리고 그 한마디 말씀을 하신 다음에 예수님은 다시 앉으셔서 여전히 땅에 손가락으로 뭔가를 쓰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망치를 얻어 맞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들은 그들은 자신들이 이 여인을 정죄할 만큼 의로운 사람인지를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율법으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기 자신을 살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실 때에 그것으로 다른 이들을 평가하고 정죄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각자가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것을 기대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율법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성찰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만을 평가하며 정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고, 그리고 예수님까지도 정죄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들은 의로운 사람인 것처럼 행세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비로서 자기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 여인을 정죄하기에는 자신들에게도 부끄러운 죄의 모습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침을 들은 그들은 비로소 양심에 가책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죄를 고발할 때에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자신이 의인인 것처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죄의 종류는 다를 수 있지만, 우리 모두가 죄인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죄가 크던 작던 그것은 사망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른 이들을 정죄할만한 존재가되지 못합니다

누가복음 6:37절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예수님께 대답을 다그치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대답에 한 마디 대꾸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곳을 조용히 떠납니다. 어른으로부터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떠나 갑니다. 어른들은 누구보다 율법에 대해서 더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들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죄에 대해서 무뎌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어떻습니까젊었다고 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자신이 저지른 죄가 생각이 나면서, 그여인을 정죄하는 것이 양심에 가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그 자리를 조용히 떠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을 가장 먼저 적용해야 할 대상은 그 말씀을 받은 각자 자신들이어야 합니다

요즘 영화를 보면 검찰이나 경찰을 다룬 영화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영화의 대부분은 그들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 조사하고 판결을 하는 사람들이, 정작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심각한 죄를 짓고, 이를 감추고 정당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속에 나오는 경찰이나 검찰의 비리가 엄청 나길래 혹시나 과장된 것은 아닌지, 경찰생활을 하신 분에게 여쭈어 보니까, 영화에 나오는 것보다 더 심각한 지경이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을 들을 때에 먼저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보통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그 말씀이 자신과 무관한 말씀으로 들을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씀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은혜받는 분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그 말씀들이 꼭 자신의 이야기이고,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같아요.”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는 것이 은혜입니다. 더군다나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고 한다면 더욱 기쁜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을 통해서 성도들이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을 가지고 다른 이들을 평가하고 정죄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적용시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나의 죄성이 드러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어느덧 그 여인을 정죄하던 사람들이 떠나가고, 예수님과 음행한 여인 단둘이 남았습니다

이 여인은 그 상황이 어리둥절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자리에서 일어서셔서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께서그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녀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자신의 죄 때문에 양심에 가책이 느껴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유일하게 사람의 죄를 정죄할 수 있는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예수님이 그녀를 정죄하지 않는 것은 그녀에게 죄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녀가 행한 음행은 분명히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그녀에게 죄를 다시는 범하지 말라고 당부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의 죄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그녀를 용서하신 것은 죄가운데 고통을 당하는 그녀에 대한 긍휼의 마음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녀가 죄로 인해 멸망당하는 자가 되지 말고, 그 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그 여인에게 긍휼한 마음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 여인이 잡혀 와서 사람들 앞에 당하는 수치와 아픔, 상처와 죽음의 공포에 대해서 아랑곳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그 대가를 치르고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죄로 인해서 죽어가는 그 여인을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죄로 인해 죽지 않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녀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그녀가 비록 죄인이지만 살길을 열어주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그녀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감당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그 간음한 여인과 같은 처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구원을 얻은 것은 우리가 죄가 없어 의로워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긍휼히 보시고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사람의 죄를 깨닫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율법을 통해서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지만, 율법이 사람들이 지은 죄를 해결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죄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정죄하지 않으시지만 요청하는 것이 있습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인 자신들의 죄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예수님을 죽이는 죄를 범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십니다. 자신의 죄성을 늘 자각하며,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힘쓰는 일은, 예수님의 긍휼과 구원의 은혜를 입은 이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신앙의 자세인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자신은 의롭게 여기며 살아갑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심지어 예수님을 정죄하고 예수님을 고발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실 때에는 그 말씀으로 다른 이들을 평가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말씀으로 성찰하고 온전케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하나님은 우리에게 율법을 주심으로 내가 죄인임을 깨닫는 은혜를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여러분, 내가 죄인임을 깨닫는 것은 은혜입니다. 죄인임을 깨달음으로 회개에 이르고, 회개를 통하여 죄 용서함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의 긍휼하심을 받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아시고 정죄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죄인들을 위해서 죽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가 간음한 여인이 될 수도 있고, 그녀를 정죄하여 돌로 치려고 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우리가 누구의 입장이든지 상관없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순절을 지내면서 다른 이들의 죄가 아니라, 나의 죄를 돌아볼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의 불쌍히 여기셔서 대신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다른 이들을 긍휼히 여기며 그리스도의 은혜를 나누는 일에 힘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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