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8/2023 - 사는 이유 [고린도전서 10:31-33]
https://youtu.be/LrRkHlgd2U4
불교의 한 스님의 ‘즉문즉설’ 곧 즉석에서 질문을 받고, 즉석에서 답해주는 방송이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에서 한 청년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사람이 즐겁게, 때로는 고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사는 걸까요?” 그때 스님은 답합니다. “사람이 하루하루를 사는 데에는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사는 거예요. 풀이 자라는데 이유가 있나요? 토끼가 자라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없잖아요. 그처럼 사람이 사는 것도 다 그냥 사는 거예요. 그런데 그 삶이 즐거운지 아니면 괴로운지는 자기 마음을 제대로 쓰느냐 못 쓰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니 ‘왜 사느냐’는 올바른 질문이 아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가 올바른 질문입니다.”
언듯 듣기에 스님의 대답이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그런데 정말 사람이 사는데 이유가 없는 것일까요? 어떻게 사는 냐가 중요한 질문이지만, 어떻게 사느냐는 왜 살아가는지 그 이유를 알 때에,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답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청년과 같이 왜 사는지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열심히 살아가지만 목적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때로, “내가 뭐 때문에 살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실 때가 있지 않으십니까? 때로는 그 질문에, 죽지 못해 살고, 자식을 위해서 산다고 답하지는 않으십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그 삶의 이유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 때는 예수님을 만날 때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하는지를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먹고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오늘 말씀을 통해서, 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우리의 살아갈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나를 만드신 분이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내 삶의 이유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성도님께서 ‘생명’에 대해서 멋지게 해석해 주시더라구요. 한문으로 ‘생명’은 ‘살 생’ 자에, ‘목숨 명’인데, ‘명’의 원 뜻은 ‘명령하다.’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살라는 명령’ 으로 해석하시더라구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살라’는 명령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살라고 우리를 만드실 때에는, 목적이 있어서 우리를 만드신 것입니다.
시편 139:13-14절에서 다윗은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다윗은 자신이 우연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드셨다고 고백합니다. 그것도 이유없이 막 지으신 것이 아니라, ‘심히 기묘하게’ 지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일은 참으로 기묘한 일입니다. 별볼일 없는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기묘하심을 드러내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사야 43:7절에 하나님은 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는지 그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심을 알지 못한다면, 나의 삶의 이유도 당연히 알지 못합니다.
진화론자들은 삶의 목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체가 우연히 생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세포 동물이 진화하다가 우연이 물고기가 되고, 원숭이가 되고,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진화해갈지 모릅니다. 우연으로 만들어진 삶에, 삶의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생명있으니 그저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난 이들은 살아가는 이유를 알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났을 때에 자신의 삶의 이유를 알았습니다. 야곱이, 모세가, 다윗이, 베드로가, 바울이 하나님을 만났을 때에 비로서 자신의 삶의 이유를 알고, 그 전과는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분임을 믿는 이들은, 그 삶의 목적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으심을 받았음을 믿어야 합니다.
찬송가 ‘부름받아 나선 이 몸’이 있습니다. 3절은 ‘존귀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입니다. 이 찬송가를 지으신 이호운 목사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평생을 사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때로 반대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 내가 홀로 받겠습니다. 멸시천대 십자가는 주님께서 계속 지고 가십시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기 전에,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아지고 사람들로부터 추앙받는 존재가 되기를 원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때로 나의 영광을 위해서 믿음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높여주실 것을 기대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었으니, 그 대가로 나를 영광스러운 존재로 세워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이들은 다릅니다. 자신이 낮아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높아지시면 그것으로 기뻐하며 만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모든 피조물들에게 존재의 이유를 주셨습니다. 깊은 산 속에 홀로 핀꽃, 어떤 사람도 들어가서 봐주지 않은 꽃을 볼때에 그 존재가 무의미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꽃을 보고 계시고, 그 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흙으로 우리를 만드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은 심히 기묘한 일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기뻐하는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2. 그렇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5:16절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은 여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찬양과 경배를 통해서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되어서 사람들 앞에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아주 일상적인 일이 되어야 합니다. 일상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에게 뿐만 아니라, 사람을 상대로 선한 일을 할 때에, 그 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십니다.
지난 한 주간, 자신 말고, 다른 사람에게 선한 일을 얼마나 하셨습니까?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위로해 주고, 분낼 일도 참고 부드럽게 상대해 주고,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도와 주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들.. 이런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돌릴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라고 했는데, 그 배경을 보면, 고린도교회안에 야기된 먹는 문제와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 지역에는 많은 신전들이 있었습니다. 아폴로 신전, 아프로디테 신전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전에서 동물 제사를 드리게 되는데, 제사 후에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들이 시장에서 팔리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기독교인은 아예 고기를 사먹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혹시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상에게 바쳐진 부정한 고기를 먹을 수도 있다고 여겨서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그런 것 염려하지 않고 고기를 편하게 먹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우상을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아예 무시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상이 아무런 존재도 아니니까 그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어도 별상관이 없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바울 같은 경우도 고기의 출처를 묻지 말고, 고기를 먹어도 상관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할 때를 말해 줍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그 고기가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이었다고 말한다면, 그 말한 사람과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고 합니다. 비록 내가 양심에 거리낌없이 모든 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고기를 먹지 아니하는 사람이 내가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는것으로 실족하지 않도록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먹고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 하라” 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실족치 않게 하기 위해 먹지 않는 것도 하나님께 영광을 위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 먹고 마시는 문제 뿐만 아니라, 행하는 모든 일의 근거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행하는 일이 어떠한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어떻게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선한 일입니까?
1. 먼저 바울은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고 말합니다.
‘거치는 자’의 뜻은 ‘거침돌이 되어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자’입니다. 비포장된 길을 가다가 보면 발에 채이는 돌이나 나무 뿌리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를 경계하지 않으면 걸려서 넘어져서 다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도 그러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헬라인에게나 유대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때로 헬라인은 유대인들에게 거치는 돌이 되었고, 유대인들은 헬라인에게 거치는 돌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구성하고 있었는데, 교회안에서 어떤 이들은 거치는 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 거치는 자가 될 때에, 그들은 하나님께 또한 거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서로 거치는 자가 되지 않을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는 거치는 일이 있을 때에 그것을 거치는 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삼을 수 있는 신앙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거치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에, 더 성숙한 신앙의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디딤돌로 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거치는 사람을 두신 이유이기도 하십니다. 서로에게 거치는 자가 되지 않기 위해 힘쓰십시오. 그것만으로도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십니다.
2. 그리고 바울은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서로에게 거치는 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람을 기쁘게 하고, 유익을 주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에 자신의 기쁨이나 유익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다음에 생각할 것은 그것이 하나님에게 기쁨과 유익이 되는 일인가? 그리고 나와 관계된 사람들에게 기쁨과 유익이 되는 일인가를 살펴야 합니다. 만약 나도 기쁘고, 하나님도 기쁘고, 다른 사람들도 기쁘게 하는 일이면,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일이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내가 하는 일이 나는 기쁜데 하나님이나 다른 이들을 슬프게 하고, 손해를 준다면 그 일을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입니다. 다른 이들의 기쁨과 유익을 고려하며 행하는 일은 교회를 화목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지난 한 주간, 여러분은 누군가의 기쁨이 되셨습니까? 다른 분들의 유익이 되기 위해서 어떤 일에 헌신을 하셨습니까? 우리 교회가 다른 사람들의 기쁨과 유익을 관심하며, 이를 위해 헌신한다면, 하나님께서 더 큰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3. 그런데 바울이 다른 사람들의 거치는 자가 되지 않고, 도리어 기쁨과 유익이 되는 삶을 살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33절의 말씀과 같이, 사람이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좀 더 기쁨이 되고, 유익된 삶을 살아가고자 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성품이 그래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바울의 관심은 다른 이들이 구원받는데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9: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바울은 율법 없는 자를 대할 때는 자신이 율법이 없는 자같이 되었고,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대할 때는 율법아래에 있는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와 같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관심이 다른 이들의 구원, 영혼에 있을 때에 우리는 상대방에게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이들의 영혼을 구원하고자 할 때에 우리는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하고 유익하게 하는 헌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영혼을 바라보지 못하고, 나만을 생각한다면, 구원받은 이들까지 실족하게 하는 일들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일들을 보면, 하나님을 대상으로 해서 무엇인가를 해 드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하며 그 사람들의 기쁨과 유익을 구하는 삶인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구원에 이르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 주위에 있는 이들을 함부로 대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을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삶의 진정한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이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그는 고린도교인들에게 “먹던지 마신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유도 하나님께서 내 삶을 영광스럽게 해 주시기를 기대하며 믿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가장 큰 영광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지음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심히 기묘한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 막연하게 느껴지기 쉽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내가 사회적으로 대단한 공적을 행하거나, 교회안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리는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속에서 다른 이들에게 선한 일을 행할 때에 영광을 받으십니다. 바울과 같이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이 다른 이의 거치는 자가 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유익되게 행할 때에 하나님께서 영광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존재로 세워주심을 감사하며, 모든 삶을 통해 사람에게 선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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