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2/2023 -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가복음 2:13-17]
https://youtu.be/6kVFe8r_4tU
지난 주일 말씀에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던 세례요한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세례요한이 그토록 기다리던 예수님께서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알려주시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를 보시고, 그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레위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합니다. 그리고 레위는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위해서 식사자리를 마련합니다. 그는 식사자리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도 함께 초대합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죄인들이 함께 앉아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보고서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예수님께서 그들의 말을 들으시고 답하십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예수님은 범인을 잡으러 온 형사인 줄 알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죄인을 부르시는 것은 그 죄인을 정죄하고 형벌에 처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반대인 것입니다.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보여 주시기 위해 그 당시 죄인이라고 여겨졌던 세리 레위를 제자로 부르셨고, 그 당시 죄인이라고 여겨지던 사람들과 함께 앉아서 식사를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르신 그 죄인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레위를 부르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죄인된 사람들이 어떻게 구원에 이르게 되는지를 살펴 보며, 우리 각자에게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다시 경험하는 시간되시길 축원합니다.
1. 먼저, 우리의 구원은 죄인된 우리를 부르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있는 것을 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에게 “나를 따르라”고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은 예수님께서 레위를 제자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레위는 그 말씀을 듣고 일어나 예수님을 따릅니다. 예수님이 세관에 오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레웨를 부르러 직접 찾아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르신 레위는 세리입니다. 그 당시 세리는 예수님의 제자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인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리들은 사람들에게 죄인으로 알려진 사람들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았는데, 로마제국은 세리를 고용해서 각 식민지 사람들에게 세금을 거두어 들였습니다. 그리고 세리 레위도 그러한 일을 했습니다. 세금을 걷는 것 자체가 유대인들에게는 좋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의 돈을 강제로 거둬서 로마제국에 바쳤으니 말입니다. 더우기 어떤 세리는 자신이 거둬들여야 하는 세금보다 더 거두어서, 로마에게 바칠 것은 바치고, 그 나머지를 자신이 착복하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을 아주 차가왔고, 사람들은 세리들을 죄인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세리들은 성전에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법정에 증인으로 나설 수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세리를 부정하고 부정직한 사람들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한 세리 레위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먼저 부름을 받은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 레위가 제자 그룹에 들어오는 것을 달가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평판이 좋은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 경건하고 의롭게 여겨지는 바리새인들이나 종교지도자들을 제자로 부르셨어도 됐을 텐데, 예수님은 굳이, 세리를 제자로 부르셨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레위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한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 당시에 유대인들은 이방 사람들이나 친분이 없는 사람들하고는 식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죄인들과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금기시된 일입니다. 자기 자신도 부정한 부류에 속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덕망이 있고, 권세 있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려고 하지, 평판이 좋지 못하거나 행실이 바르지 않는 사람들과는 함께 어울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일부러 죄인들과 함께 하시려고 그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종교적 엘리트 집단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셔서 그들을 구원하시고,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세우시고자 그들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의 부르심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죄인을 정죄하고 멀리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죄인이라고 외면치 않으십니다. 도리어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더욱 관심하시며 우리에게 찾아와 주시고, 함께 하고자 하시는 분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찾을 필요를 느끼지도 못할 때에, 주도적으로 우리를 찾아오셔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찾아와 주심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2. 그리고 구원의 은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Yes” 로 반응할 때에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레위를 제자로 부르실 때에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그는 세관에 앉아있다가 예수님이 부르실 때에 일어나 예수님을 따라 세관에서 나왔습니다.
레위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주저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에는 자신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 제가 세리인 것이 안 보이세요? 어떻게 이 죄인이 예수님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정중히 그 부르심을 거절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리 레위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일어나 예수님을 따른 것은, 그동안 따르던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그는 재물을 따라서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죄인이라고 조롱해도 그가 세리를 그만두지 않고, 그 일을 했던 것은 돈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레위는 예수님이 자신을 부르실 때에 예수님을 따라보겠다고, 그전에 따르던 것을 포기하고 세관을 벗어나 예수님을 따라 나섰던 것입니다. 만약 레위가 세관에 그냥 앉아있었다면 예수님을 따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도록 하는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세리 레위와 같이 재물을 따르면서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할 때에 판단의 기준을 돈에 많이 둡니다. 어떤 일을 할 때도 그 일이 돈이 되는 일인지? 아닌지를 먼저 따집니다. 직장을 구할 때도 돈을 많이 주는 곳을 찾아갑니다. 결혼할 상대가 돈이 많이 있으면 더 좋은 배우자로 여겨집니다. 이 세상에서 돈이 성공과 출세의 기준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돈 벌이가 안되면 가치없게 여겨집니다. 돈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재물을 가치의 기준으로 삼고 따라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13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그 말씀을 듣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그 말씀을 비웃는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돈을 좋아하고 이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돈을 모두 함께 섬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들은 돈으로 인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고 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리 레위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그 동안 자신이 따랐었던 것들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따르기위에 무엇을 버리셨습니까? 혹시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레위와는 반대로 더 세상적인 무엇인가를 얻기위해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까? 예수님을 따른 다는 것은 내가 그동안 따랐던 것을 포기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만을 따라,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과거의 죄된 자리에 앉아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제대로 따를 수가 없습니다. 세리 레위와 같이 예수님이 부르실 때에 내 과거의 죄의 자리를 뒤로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결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당신이 부르신 죄인들을 고쳐주시고, 구원의 자녀로 변화시켜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세리 레위를 비롯해서 많은 죄인들과 함께 앉아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죄인들에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15절에 보면,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과 제자들과 함께 앉아 식사를 했는데, 그들 중에도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레위가 예수님을 모시고 전도 초청 잔치를 한 것이고,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도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같은 자리에 있지만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16절에,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입니다. 서기관들은 성경에 관한 일들을 했습니다. 성경을 필사하는 일을 했습니다. 요즘, 성경을 필사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서기관들은 이 일을 직업으로 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하였고,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지도자급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이 죄인들과 같이 식사하는 것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율법을 따르지 않는 부정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가 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아주 정확하고 명료하게 나타낸 말씀입니다.
의사는 병든 사람에게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자신이 건강한 상태라고 여기는 사람은 의사를 찾지 않습니다. 몸에 병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만 의사를 찾아 병고침 받고자 합니다. 그런데 때로 의사가 필요한데도 의사를 찾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병들었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병이나 증상이 확연히 나타나는 병들에 걸렸을 때에는 의사를 찾게 됩니다. 그런데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병에 걸리게 되면 자신이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여깁니다. 그러다가 병을 더 키우게 됩니다.
그런데 죄의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질병과도 같습니다. 로마서 3: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자각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의 상태를 가장 잘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죄로 인해 영혼이 병든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영적으로 병들어 영원히 죽을 수도 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다만 죄인들 중에는 자신의 죄를 자각하는 죄인이 있고, 그렇지 못한 죄인이 있는 것입니다. 세리와 죄인들은 자신들이 죄인임을 자각하는 죄인들이었기에 예수님이 필요함을 알고 그의 부르심에 응답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죄인 취급했던 바리새인과 종교지도자들은 자신이 죄인인지 모르는 죄인이었기에 예수님의 부르심을 거부하며 도리어 예수님과 대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영적으로 병든 죄인들을 고쳐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을 필요로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그들이 영적으로 건강하고 죄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병이 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죄의 병에 걸렸음을 아는 이들은 예수님을 찾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죄가 없는 의인이라서가 아니라, 우리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무지한 죄인이기 때문인지는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병든 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육신적인 질병만을 고쳐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병, 죄의 병을 고쳐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최고의 의사이십니다. 우리의 육신뿐만 아니라, 영적인 병인 죄도 고쳐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을 날마다 가까이 하는 것이 죄의 병 중에 있는 우리들에게는 커다란 복인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들도 죄인을 불러서 그들의 죄를 고쳐 구원에 이르도록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의 죄의 병을 고쳐주시기 위해서 손수 의사로 자청하시고, 죄인들을 부르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을 찾으시고 불러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3:23절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땅에서 죄에 대해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세리들을 죄인이라고 업신여겼지만, 예수님 보시기에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죄도 자각하지 못하는 더욱 어리석은 자로 보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영광인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사람으로서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3:24절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예수님만이 우리를 죄의 질병에서 고쳐 주시고, 의롭게 해 주실 유일한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잘 아시고, 이를 치유하시는 명의가 되십니다.
이 사순절을 보내면서, 나의 죄를 아시고 나를 찾아와 주시고, 불러주시고, 치유하시고, 이제는 나와 함께 동행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묵상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은혜로 인해서 하나님께 기뻐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는 사순절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