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2/2018 - 영광의 소망이신 예수님 [골로새서 1:25-29] - 대림절1
골로새서 1:25-29, “영광의 소망이신 예수를 기다리자”
지난 한 주간 동안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시고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우리 서로 인사하십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이번 주일부터 교회력으로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성탄절 전 4주간을 대림절이라고 부르며, 이 기간은 이천년전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대림절 Advent 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Adventus 에서 유래되었는데, ‘오다.’’도착하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이천년전에 이 세상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렇다고 그러한 그 예수님이 우리의 각자의 삶 가운데 도착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대림절 기간을 통하여서 이 땅 가운데 오신 예수님이 우리의 삶 가운데 오셔서 예수님을 만나고 동행하는 신앙의 여정이 되길 위해서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성탄절을 기다립니다. 그들 나름대로 성탄절을 기다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들을 이 성탄의 기간에 이뤄질 수 있을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사업하시는 분들은 성탄기간에 자신들이 원하는 좋은 매출을 기대하며 성탄절기를 지냅니다. 이를 위해 가게안을 성탄장식으로 하고, 캐롤송을 틀어 놓으며 손님을 맞습니다.
아이들도 성탄절이 오기를 아주 고대합니다. 아이들은 성탄절이 되면 자신들이 원하는 선물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래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는 인기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자신들이 원하는 선물을 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받기를 원하는 선물을 받는다는 것이 아이들로 하여금 성탄절을 기다리게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탄절을 기다리는 것은, 그 기간동안 자신들이 원하는 것들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정작 원래 성탄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뒷전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이 원하는 뭔가를 주실 것이라고 별로 기대하지 않습니다.
만약 이 기간동안에 예수님께서 산타 클로스 처럼 선물 보따리에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들고 나타나셔서 주신다면 예수님을 아주 애타게 기다릴 것입니다. 게임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새로 나온 닌텐도 스위치를 주시고, 자동차가 필요한 어른들에게 자동차를 선물로 주신다면 사람들은 목빼고 예수님을 기다릴 것입니다. 아니면 성탄절 때마다 소원을 하나씩 들어주신다고 한다면 예수님의 인기는 절정에 이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쉽게도 그러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신 것은, 그 어떤 세상의 존재가 줄 수 없는 가장 귀중한 것을 이 세상에 주시고자 원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주시고자 하셨던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이 땅에 무엇을 주시고자 하는지를 이 앞에 성탄초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앞에 초가 다섯개가 있습니다. 각 초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다 의미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소망의 초입니다. 두번째는 평화 세번째는 기쁨, 네번째는 사랑의 초입니다. 그리고 하얀초는 빛되신 예수님을 의미하며, 성탄절에 킵니다.
오늘 대림절 첫째주로 소망의 초에 불을 붙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의 소망으로 보내주셨음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성탄의 계절에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소망으로 두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먼저 우리는 우리가 어떤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지 그리고 그것이 참된 소망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람들마다 각자 가지고 있는 소망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소망의 대부분을 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소망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자신의 이익을 소망하며 살았던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귀신들린 여종에게 소망을 두고서 살아가는 주인들입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사도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에 사도바울 일행을 귀찮게 하는 한 여종이 있었습니다. 이 여종은 날마다 바울의 일행을 따라다니면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외칩니다. 그런데 그 여종은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 아니라, 귀신에 들린 사람이었습니다. 귀신들린 여종이 여러날을 그렇게 하니 바울이 심히 괴로워서 그녀에게 들어간 귀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쫓아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귀신들린 여종의 주인들이었습니다. 이 여종들의 주인은 그 여종에게 점을 치게 해서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여종이 귀신들에 들렸으니 점을 치더라도 귀신같이 알아 맞혔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그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줬으니 더 이상 점을 치지도 못하고, 더 이상 돈도 벌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16:19절에 보면, “종의 주인들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그래서 바울과 실라를 잡아가 처벌 좀 해 달라고 관원들에게 끌고 갑니다.
귀신들린 여종의 주인들이 가지고 있는 소망에 대해서 성경은, ‘자기 이익의 소망’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귀신들린 여종의 주인들은 돈을 자신들의 소망으로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돈을 이 여종이 벌어줄 것을 소망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세상적인 이익을 위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떤 이들은 물질을 자신의 이익으로 삼고 이를 소망으로 두고서 살아갑니다. 어떤 이들은 권세와 명예를 자신의 이익으로 소망을 두면서 살아갑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가지려고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마다 자신의 이익의 소망을 이루려고 살아가는 사회는 결코 소망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의 소망이 다른 이의 절망이라면 참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귀신들린 여종을 가진 주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그 여종이 계속 귀신에 들려 있기를 원했습니다. 어쩌면 자신들에게 있는 다른 종들도 귀신에 들려서 더 많은 돈을 벌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을 지도 모릅니다. 사도바울이 그 여종의 귀신을 쫓아내고 멀쩡하게 만들어 놓았을 때에, 그들은 그것을 기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이루기 위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 갈 때에 사람들은 서로 싸우고 경쟁하면서 해를 입히기 십상입니다. 거짓과 술수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이루려고 하는 이익의 소망은, 한시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땅에 있는 것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것을 자기의 이익의 소망으로 두는 것은 허무한 것입니다.
베네수엘라에는 종이로 만든 공예품들이 유행하고 있는데, 그 종이공예의 재료가 베네수엘라 지폐라고 합니다. 베네수엘라가 오랜 시간 인플레이션을 경험하면서 돈의 가치가 떨어질 대로 떨어졌습니다. 길거리에 돈을 쌓아 두어도 훔쳐가지도 않는답니다. 그러니 그 돈으로 공예제품을 만들어 파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이 땅에서 구하는 모든 것들은 영원하지 못한 것들입니다. 언젠가는 두고 떠나야 되는 허무한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의 소망을 위해서 평생을 살아가다가 허무하게 죽어가기 십상입니다.
2.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소망은 다릅니다. 허무한 소망이 아니라 영광의 소망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1:27절에서, 골로새인들이 가져야 할 소망이 누구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사도바울도 골로새 교인들이 가지게 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광의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영광의 소망은, 이방사람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받고, 천국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방사람들은 원래 영광의 소망이 아니라, 세상에 썩어질 허무한 소망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의 육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우상을 섬기며 살아가다가 죽어갈 소망 없는 허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서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 받을 영광된 존재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영광의 소망은 하나님께서 품으신 소망이었습니다.
디모데전서 2:4절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원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모든 이들을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고자 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의 소망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망을 함께 품고서 살아가는 사람이 소망이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많은 돈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살 수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결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어떠한 곳이든지 VIP 대접을 받으며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천국은 결코 세상의 권세를 가지고는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그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 주셨고, 영원토록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소망이 되는 이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이 있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세상에서는 가질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광의 소망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가져야 할 소망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움받는 다는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28절에,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원래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고 능력이 많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각 모든 지혜로 사람을 가르침으로 완전한 자로 세우려고 한다고 합니다.
이 땅에서 유일하게 완전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사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서 죄가 없으신 가장 완전한 분으로 사셨고, 사람들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살아감으로 완전한 존재로 세우심을 받는 소망이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될 소망은 세상의 어떠한 인기인이나 유명한 사람을 부러워하며 닮아가는 삶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 가운데서 완전한 사람으로 사셨던 것과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진다는 것을 소망하며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영광의 소망을 가진 이들은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돈을 벌고, 공부를 하고, 직업을 가지는 이유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자 하는 바람이 또한 영광의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소망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세상 사람들이 세상에서 썩어질 허무한 것들에 소망을 두고서 살아갑니다. 물질과 권력, 자동차, 집, 명예 등과 같은 것이 좋아보일지 몰라도, 영원하지 않고 썩어질 허무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심으로 썩어질 소망이 아니라, 영광의 소망을 품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제는 이 땅의 기업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소망하며 살아가는 삶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보여 주셨던 완전한 자의 모습을 소망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소망이 영광의 소망이 되는 것은, 이것이 사람의 죄의 욕망으로부터 난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망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세상의 이익의 소망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썩어질 것들을 위해 살아가다가 허무하게 끝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완전해 지는 사람으로 세움받는 소망을 더 품는 성탄의 계절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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