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7/2019 - 코람데오(Coram Deo)의 사람들 [역대하 33:11-13]
설교: 역대하 33:11-13절 “하나님
앞에 선 사람들 Coram Deo” 사람이 살아가는데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이 쓰이고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아갑니다. 집안에서도 가족을 의식을 합니다. 사회에
나오면 친구나 직장의 동료를 의식합니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을 의식합니다. 내가 아는 사람들만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 내가 알지 못하는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을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혼자 있을 때는 자유로운데 주위에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말과
행동이 조심스러워지고 달라집니다. 헤어스타일, 옷들을 신경
씁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존재에 대해서 의식해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존재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영적인 존재는 육신의 감각으로 느끼지 못할 때가
많이 있지만 역시 존재합니다. 요한복음 4:24절에는“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셨습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존재하십니다. 존재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이 세상에 충만하십니다. 모든 곳에
편재하십니다. 모든 곳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세상을
살피십니다. 이것을 자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라틴어로는 ‘코람 데오(Coram Deo)’라는 말이 있습니다. ‘코람’이라고 하면 ‘앞에’, ‘데오’라고
하면 ‘하나님’을 뜻합니다. 곧 코람
데오는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있는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사람을 의식하며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 성도들의 삶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한지를 살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나와 있는 므낫세 왕을 보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다가 후에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있음을 깨달음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를 통하여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 코람 데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이 어떠한지 살펴 보겠습니다. 므낫세왕은
남유다왕국의 열세번째 왕입니다. 므낫세 왕의 아버지 히스기야왕은 하나님께 헌신했던 사람입니다. 왕이 된 후 성전을 수리하고, 그 동안 지켜지지 않던 유월절기를
다시 행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우상들을 헐어버리고 하나님만을 믿는 유일신앙을 굳건하게 하였습니다. 그가 죽을 병에 걸렸을 때에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함으로 응답받아서 십오년을 더 살았던 왕입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 므낫세는 달랐습니다.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이 된 그는 하나님과 관계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상들을 다시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아버지가 회복시켜 놓은 성전에
자신가 만든 아로새긴 목상을 세워 놓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떠나 살게 되고 이방의
우상들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므낫세왕의
사는 모습을 보면, 그는 왕으로 자신이 가진 권세를 마음껏 누리며,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마음 껏 살았는지 모르지만 33:2절에 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가 행하는 일들이 악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삶은 어리석은 삶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없다 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어리석은 자라고 말합니다. 시 53: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하나님의
시선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죄로 연류된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코람 데오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죄를 지어도 그것이 죄인지도 모르고, 죄의 심각함을 알지도 못합니다. 심각한 죄의 권세 속에서 살아가다가
인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코람 데오의 삶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 코람데오의 삶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구하고 따라
살아가는 삶입니다. 므낫세 왕이
저질렀던 가장 큰 죄 중에 하나는 이방의 우상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만 섬겼을 뿐만 아니라 유다나라의
사람들을 꾀어서 함께 악을 행하게 하였고, 그 악이 하나님 보시기에 그 어떤 이방의 사람들보다 더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전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목상, 우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신비적인 것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였습니다. 점을 치고 사술과 요술을 행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자신의 욕망이 삶의 기준이 됩니다. 우상을 세우는 이유는, 그 우상 앞에 자신의 욕망을 빌면, 그 우상이 그 욕망을 채워줄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점을 치고 사술을 함으로 어떻게 하면 자신의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까 하는
것에 관심하였습니다. 므낫세왕의 삶의 관심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있음을 아는 사람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나무 우상과 같이 말 못하는 존재가 아니라 수시로 말씀하시고 지시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므낫세는 자신이 지시하기를 원했지, 지시를 듣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무시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무시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한 후에 처음으로 만든 것이 금송아지 우상이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에
그들은 불안했습니다. 그들을 인도한 하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아론에게 부탁을 해서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를 만들고 거기에 절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하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양손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이 있었고, 모세에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라고 주신
말씀, 법이 있었습니다. 비록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 없었지만
그의 실체는 그의 말씀으로 그들에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므낫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하나님 앞에서 그를 기쁘시게 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살아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눈에 보이는 현상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입을 닫아놓고
나의 욕망을 말하며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허락하신 말씀에 근거해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앞에 선 자들의 모습입니다. 2. 코람 데오의 삶은 거만하지 않고 겸비한 삶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자는 하나님의 크심 앞에서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므낫세는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므낫세를 돌이키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군대를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치게 하시고 므낫세는 힘없이 앗수르의 포로로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그가 의지했던
손으로 만든 신들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보기에는 거대하고 웅장한 신이었지만, 므낫세가 앗수르 사람들에게 잡혀갔을 때에 그 우상들은 여전히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성전에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주술과 점을 치는 것들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더 이상의 므낫세에게
행운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 때에
므낫세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히스기야 왕이 그토록 의식했던 하나님, 자신이 포로로 잡혀온 앗수르 땅에도 계시고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그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한 것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2절에, “하나님 앞에서 크게 겸비하였다.”고 했습니다. 앗수르 사람들에게
잡혀 왔다고 앗수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던 것이 아닙니다. 살기 위해서 사람들 앞에 비굴하게
행했던 것이 아닙니다. 므낫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되니까 자신이 왕으라고 교만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을 구원해 주실 분은 앗수르 사람들이 아니고, 자신이
왕이라고 하는 특권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을 구원하실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므낫세는
그동안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교만하게 행했던 일들이 죄였음을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13절에는 “다시 왕위에 거하게 하시매, 그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므낫세는
비로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있는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될 때의 자세는
겸비함입니다. 비록 왕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무지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 동안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거만하게 살면서 지었던 죄를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코람 데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겸비하며, 사람앞에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크신 하나님 앞에 있으니 자신은 한없이 보잘것없이 작은 존재임을 깨닫기에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높은 명예와 사회적 자리에 있다고 할지라도, 심지어
므낫세와 같이 왕의 자리에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기에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회개할
수 밖에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죄인된 존재인지 알기 때문에 회개할 수 밖에 없습니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만났을 때에, “주님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코람데오의
삶을 사는 이들은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교만하다면 아직 하나님 앞에 선자의 삶이 아닙니다. 3. 코람 데오의 삶은 변화하는 삶입니다.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때와 그것을 알았을 때의 삶은 동일할 수가 없습니다.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뜨고 우리를 보시고 계시는 것을 알면서도 죄에 대해서 의식하지 못하면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교만하면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그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므낫세가
이방 땅 앗수르에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있음을 깨닫고 예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더 이상 우상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가 만들었던 이방신들의 제단을
다 무너뜨리고 예루살렘 성 밖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는 화목제를 드리고, 감사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만을 섬길 것을 백성들에게 선포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선자는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선자가 더 이상 우상을 섬기며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없는 것입니다. 더 이상
나의 감각과 눈에 보이는 것에 근거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우상을 제거하고, 예배의 삶을 살아가며, 그 말씀을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변화된
삶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걸림돌이 되는 것, 우상이 되는
것, 악이 되는 것을 그대로 둘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붙잡는 삶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4. 코람 데오의 삶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살피시고 알고 계십니다. 누가복음 12:6-7,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하나님 앞에서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린바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간섭하시고 알고 계십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사람의 머리털가지도 세신 바 된다고 하셨습니다. 코람 데오의
신앙을 가진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감시와 책망을 하시려고 하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을 살피시고 돌보고
있음을 경험하케 하시는 분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있기에 나를 해하려는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아뢰며 하나님의 능력가운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기 전에,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있음을 아는 코람데오의 신앙이 있는 자는 세상의 시선과 기대에 따라서 살아가거나, 나의 욕망을
따라서 살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앞에선 자의 삶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섰다는 것을 깨닫는 자는 늘 하나님 앞에 겸비합니다. 교만하지 않습니다. 겸손히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선 자임을 믿고서 살아가는 자들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갑니다. 옛과거의 구습은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살아갑니다. 사람의 시선보다는 하나님의 시선을 먼저 느껴집니다. 그래서 사람이
있던지 없던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삽니다. 전에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서 살아갔던 사람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그 삶이 동일하고 진실해 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고 살아갑니다. 우리의 머리털
하나라도 세신바 되시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보호해주시며, 능력이 되어주심을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코람데오의
신앙, 내가 하나님 앞에 있고, 하나님께서 내 앞에 계심을
믿고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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