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0/2019 - 더 많은 은혜를 누리자 [베드로후서 1:1-4]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자녀들 가운데는 “은혜”라는 여자이름이 많이 있습니다. 아이를 낳았을 때에 그 아이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며, “은혜”라고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은혜”라는
이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줄여 ‘하은’, ‘예수님의 은혜’를
줄여 ‘예은’이라고 이름도 많이 짓습니다. 또한 성도들은 더 많은 은혜를 받으려고 관심합니다. 예배나 신앙적인
모임을 가질 때에 ‘은혜 많이받으세요’라고 상대방을 축복합니다. 설교나
기도, 찬양을 통해서 우리는 은혜받기를 원하고 그 은혜를 간직하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사도 베드로도
자신의 편지를 읽는 교인들에게 인사하기를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 지어다.”라고 기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베드로의 편지를 읽고 있는
교인들의 상황은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편지를 쓸 당시에, 교회들이 점차 환난을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
제국은 황제를 섬기지 않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할 대상으로 삼았고, 순교자들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한 때를 타서 교회안에는 거짓 이단들이 들어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떠나도록 미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교회의 성도들이 두려움과 불안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베드로는 교인들에게 그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여서 그 환란의 때를 이겨나갈 수 있도록 편지로 격려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교인들이 은혜와 평강을 많이 누리기를 기원하면서 말하기를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라고 말합니다. 곧 성도들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알아갈 때에 그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아짐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은혜많이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입니까? 우리는 무엇인가에 의해 감동된 것을 은혜받은
것의 근거로 삼기도 합니다. 내가
듣고 싶거나 인정받는 말을 듣고 기분이 좋을 때에 그것을 은혜받은 증거로 삼곤 힙니다.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그것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이긴 합니다. 그런데 보다
근본적인 은혜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알아감으로서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이신지, 어떠한 일들을 하셨는지를 알면 알수록, 그
은혜와 평강도 더욱 많아 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것은 비례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더 많은 은혜와 평강을 누릴 수 있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우리가 은혜와 평강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많이 알아갈 때에 또한 그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아지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교회를 오래 다닌다고 해서 저절로 알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기에 힘쓰지 않는다면, 제대로 알 수 없고, 주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도 제대로 누릴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이라고 했을 때에, 앎은 ‘에피그노시스’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 단어는 상대방을 단순히 정보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의 관계를 통해서 정확하게 아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사람이
서로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남녀간에 서로 알아가는 것을 보면 그 알아가는 단계가
있습니다. 어떤 총각이 한 아가씨를 소개 받아서 그 아가씨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비록 상대방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그 총각이 그 사람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서로 연애를 하다보면 더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직접 관계를 맺고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대방과 결혼을 논하기에 상대방을 충분히 알고 있고,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게 되면 그 사람과 결혼을 결심하게 됩니다. 그런데 결혼한
다음에는 그 사람에 대해서 더욱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날마다 함께 살면서 그 사람을 보니까 결혼전의
좋은 모습뿐만 아니라 또 다른 모습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당신이
이런 사람인줄 내가 진작 알았으면, 내가 결혼하지 않았을 거예요” 라는
말도 나옵니다. 아무리 같이 오랜 시간사는 부부라고 할지라도, 종종, “나는 당신이 누군지 잘 모르겠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날마다 같이
사는 부부나 가족사이에도 서로를 잘 몰라서 놀라워하는데,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베드로도 그러한 경험을 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3년간 밤낮으로 예수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잘
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예수님의 뜻을 알지 못해서 꾸중을 가장 많이 들었던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 편지를 쓸 때에는 그 전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더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안에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아짐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읽는 교인들에게도,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더욱 많은 은혜와 평강이 그들에게도 경험되어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하나님은 이 땅의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하신 거룩하시고 크신 분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유한하고 미미한 사람들이 다 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자체가 교만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수 없는 존재이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자신을 숨기지 않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수있도록 허락하신 것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인줄로 믿습니다. 성경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며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 땅의 자연만물을 보면서 하나님의 창조와 위대하심을
알아갈 수 있도록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깨닫는 매 순간 그 은혜도 더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하나님을 더욱 알아감으로, 더 큰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2. 이제 베드로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은혜로 주셨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3절에 보면, 베드로는,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1)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은 먼저 우리에게 생명을 은혜로 주셨습니다.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생명을 가지고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영원히 사는 영생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생명이 사람의 능력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3절에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그 생명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능력으로
영생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기한 능력은,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셔서 예수님은 죄인이 되어 돌아가시고, 죄인된 사람들은 의인으로 만드신 구원의
능력입니다. 로마서 3:24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사람들이
영생을 얻기에 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된 것은 우리가 의로워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서 구원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심으로 우리가 의롭게 인정받아서, 구원받았고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영생을 은혜로 거저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거져
영생을 얻었다고 믿는 믿음의 사람들은 목숨을 위해서 무엇을 먹고 마실까 고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생명을 주셨음을 믿는 이들은, 이 은혜로 주신 영생으로 어떻게 생명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위해 살아갈까라는 관심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2) 그리고 또한 하나님께서는 신기한 능력으로,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혜로
주셨습니다. 경건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을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건한 삶을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4절에서는
이것을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세상 사람들과 같이 썩어질 육신의 소욕을 따라서 살아가다가 멸망 받을
인생이었는데, 이제는 신성한 성품, 곧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죄인된 사람으로서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경건한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으로 우리로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3. 그런데 이쯤 되면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이야기 할 때에 종종 우리 자신을 기준으로 할 때가 있습니다. 나의 기분을 좋게 만들고, 감동되게 할 때에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은혜가 떨어졌다고 말하면서 우울해 합니다. 그런데 은혜는
나를 알아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아감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하나님이 선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심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선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 무엇인가를 나에게 주셨다면 나에게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되니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은혜가 더욱 풍성해 집니다. 이러한 고백은
베드로 뿐만 아니라, 사도바울에게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9-10절,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를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했던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만나주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에게 생명을 주셨고, 또한 그리스도의 신성을 닮아가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울은 사도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감당할 자로 사명받은 것을 은혜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했으니 이 또한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지금의 자신의 모습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더 알아갈 때에,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사람은, 사도바울과 같이 나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이 은혜임을 믿을 때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나에게 지금 허락하신 사람과 환경들 또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느끼기에 감동이 되고, 유익이 되는 것만이 은혜는 아닙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환난과 어려움을 주시는 것도 있는데,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이들은 이러한 것도 은혜로 여기게
됩니다. 환난을 통해서 연단과 인내를 이루게 하셔서 더 좋은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시고자 하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더
많은 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그 무엇인가를 새롭게 더 많이 받음으로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미
주신 은혜를 은혜를 더 많이깨달아짐으로 풍성해 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통해서입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더 많은 은혜와 평강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 주님을 더욱 더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닌다고 저절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적으로 예수님을 안다고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앎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서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알고 믿는 것을 우리의 행동으로 적용하며 살아갈 때에 진정한 앎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 예수 그리스도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을 주셨고,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영생의 삶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은혜를 더 풍성히 누리는 것은, 하나님을 알수록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더욱 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선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내가
좋던지 싫던지 간에 우리에게 모든 것을 유익으로 주신 것으로 받게 되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됩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많이 알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과 더욱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고, 서로 교통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선하신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평강을 날마다 발견하시고, 이를 마음껏 누리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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