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9/2018 - 평화의 아이 [누가복음 2:8-14]
오늘 우리는 대림절 두번째 주일을 맞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초를 밝혔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평화로 오셨음을 상징하는 초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목자들에게 보내셔서,
예수님이 탄생하신 소식을 전하십니다. 수 많은 천군과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송할 때에
이렇게 찬송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인해서, 이 땅에 평화가 왔다는 것입니다. 평화라고 하는 것은 서로의 관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서로의 관계가 좋으면 평화지만, 그렇지 못하면 불화, 다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은 피조물들의 관계가 평화롭도록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 육지에 사는 동물들과 사람, 아담을 만듬으로 모든 창조를 마치셨습니다. 그런데 모든 피조물들을 만들어 놓고,
만들어 놓으신 피조물들에게 한가지 추가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동물들에게,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이나
하늘과 땅의 모든 동물들에게 먹을 거리를 주셨는데, 맛있는 고기를 음식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
땅에 있는 풀이나 식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는 육식동물이 없었고,
모두가 다 초식동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땅위의 동물들에게 풀과 식물을 먹을 거리로
주셔서, 서로를 잡아 먹기 위해서 공격하고 불화하며 살아가지 못하도록하셨습니다.그리고 서로 평화의 관계 속에서 사는 모습을 보시면서 최종적으로 보시기에 참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에덴 동산에 있던 모든 생명체들은 평화의 관계를 가지고, 화목하게 살아가도록 지음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에서의 평화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동산 중앙에 있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지 말라고 했는데 이를 따 먹게 되고, 그 일로 인해서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또한 짐승들도 서로 풀을 뜯으며 살아가는 관계가 아니라, 약육강식의 관계가 되어서,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잡아 먹는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관계들도 평화를 잃어 버리고, 긴장과 다툼 속에 있습니다.
대림절 두번째 주일, 평화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평화를 누리고 있는지,
어떻게 그 평화를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처음 에덴동산은 실로 평화로운 세상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동물들이 함께 평화로운 관계속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들이 깨어지게 시작한 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뱀이 끼어들면서 입니다. 뱀은 들짐승 중에서 가장 간교한 동물로 여겨졌습니다.간교하다는 것은 악한 쪽으로 교활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한 뱀이 하와에게 접근합니다.
그리고 묻기를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고 묻습니다. 뱀이 그 사실을 몰라서 질문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 중앙의 나무 열매만을 제외하고는 모든 열매 과실을 주신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정반대로 하와에게 질문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와는 순진하게 대답합니다. “아니야, 동산 나무에 있는 모든 열매를 다 먹을 수 있지! 그런데 하나님께서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어. 만약
먹으면 죽을것이라고 말씀하셨지” 그랬더니 뱀은 이에 대꾸합니다.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는다고 결코 죽지 않아.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셔서 그렇게 하신거야” 라고 말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하와의 마음이 혼란스러워집니다. 그 동안 하나님의 말씀만 철저히 믿고 하나님과 평화로운 관계속에서 살았는데, 뱀의 말을 듣고
나니까 괜히 그 동안 속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보니, 전에는 먹으면 죽게 될 것같아 만지기도 두려웠는데, 이제는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했습니다. 그리고 하와는 결국 선악과를 따먹고, 그것을
남편 아담에게까지 주었습니다. 뱀으로 상징되는 사탄이 하는 일은 하나님과 사람의 평화의 관계를 깨어 놓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살리시기 위해서 선악과를 따먹지 못하도록 하셨는데, 뱀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왜곡해서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악한 존재로 만들어 버리고, 아담과 하와를 죽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불화의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문을 가지게 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일입니다. 뱀이 하와에게 오기 전까지 아담과 하와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였습니다.
그런데 뱀의 말을 듣고서,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게 됩니다.
도리어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뱀의 말을 더욱 신뢰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평화의 관계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없이 믿고 순종할 때에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신뢰와 순종이 없으면 하나님과의 평화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하와가 하나님과의 평화의 관계를 잃어 버린 것은,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뱀이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뱀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믿었을 때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뱀과 같은 존재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무신론자들이 만연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이들에게 최후의 심판이 있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말씀하셨는데 뱀은 이에 대해서
의심하게 만들고 최후심판을 준비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성경에 말씀하시는데, 뱀은 이를 부정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하는 거짓된 말로 의심을 가지게 합니다. 이러한 불신앙의 생각들에 사로잡히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은 뱀이 주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뱀과 같은 생각과 유혹들이 있을 때에, 도리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하나님과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도 뱀과 같이
불화하게 하는 존재가 개입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의 평화의 관계를
잃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4장에 보면, 그 아들들 간에 평화의 관계가 깨지게 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아담과 하와의 큰 아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시기해서 돌로 쳐 죽인 일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이 아벨을 죽이기 전에 그에게 경고의 말씀을 주십니다. 창세기 4:7절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인은 죄를 다스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도 들에 나가서 동생 아우를 쳐 죽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가운데서 역사했던 뱀은, 그들의 큰 아들인 가인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동생과의 관계를 파괴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을 죄로부터 구원하기를 원하셨지만,
가인은 그 마음속에 뱀, 사탄이 주장하기를 용납했던 것이니다. 사람들과 사람사이에 불화한 관계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2:18절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과 사람들이 서로 평화하기 위해서 힘쓰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뱀과 같은 사탄은 말합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불화하라”고 말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늘 평화로울 수 만은 없습니다. 때로는 상대방을 시기하기도 하고, 오해하기도 하면서 서로 긴장하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힘쓰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마음속에 다툼을 일으키는 뱀과 같은 생각과 마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뱀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불화하고, 사람들끼리 서로 불화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관계속에 들어가서 서로를 불신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주는 것입니다. 뱀이 하와를 유혹했듯이, 사람들 마음속에서 이렇게 속삭입니다. “그 사람이 너에게 뭐라고 말하던? 너 그 말을 사실이라고 믿니? 그거 다 거짓말이야. 그
사람은 너를 싫어해” “니네 엄마가 뭐라고 하던. 니 엄마가 너에게
해 준게 뭐있어? 그냥 네가 원하는대로 해” , “사람과의 관계가 뭐
그렇게 중요하니, 니가 원하는대로 살아…” 사람들의 말중에는 서로를 불신하게 만드는 말들이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이간질 시키는 뱀이 한 말들과 같은 말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뱀이
하는 말과 같은 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고, 싸우게 만들고, 악하게 대하게끔 만들도록 부추키는 말들을 주위해야 합니다. 평화를 깨는 말들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뱀의 말들을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주시는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사람의 악한 성품으로는 스스로 하나님과 평화할 수 없고, 사람들과도 평화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평화를 사모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평화하기를 원하고, 사람들과 평화하기를 원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돈 리차드슨 (Don Richardson, 1935-)이라는
캐나다 선교사가 있습니다.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북쪽에 있는 뉴기니아 (New Guinea)섬에 파송이 되어 1962년부터 15년 동안 뉴기니아
섬에서 선교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곳에 사는 사위 (Sawi)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그 선교의 경험을 “평화의 아이
(Peace Child)” 라는 책으로 썼습니다. 사위 부족은 1950년대까지도 석기 문화의 원시적인 삶을
살던 식인종이었습니다. 사위 부족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가 있었는데 그것은 ‘배반, 배신’의 문화였습니다. 상대를 잡아먹기 위해 친하게 지내며 상대의 환심을 산 후에, 어느 순간 때가 되면 상대를 유인하여
죽여서 잡아 먹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해골을 집에 걸어 놓거나 목에 걸고 다녔습니다. 사위 부족들의 최대의 기쁨은 자신이 배신한 사람이, 배신감에 절망해 하며 불행해하는 것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악한 심성을 가진 이들에게 리처드슨이 예수님을 전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사위부족사람들은 리처드신이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시큰 둥하다가,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이야기를 하면 환호를 치며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러한 사위 부족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온 마을이 요란하더랍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봤더니 사위 부족 가까이에 있는 해남 부족과 그 동안 적대관계에 있었는데 그 부족에게 사위족속의 6개월된 아들을 보내는 날이었습니다. 그 어린아들을 보내는 이유는, 사위부족이 해남부족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였습니다. 뉴기니아 섬에서는 부족간에 충돌이
있을 때에 서로의 부족 가운데 있는 어린 아이를 화해의 상징으로 교환하게 되고 그 아이를 받은 부족은 그 아이를 지극히 보살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살아있는 동안 두 부족간에는 평화가 유지되었는데, 그 아이를 일컬어서, “평화의 아이, Peace Child” 라고 불렀습니다. 리처드슨 선교사가 이를 알고서, 예수님이 바로 그들이 보낸, ‘화해의 아들’과 같은 분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아들을 화해의 아들로 이 세상에 주셔서, 사람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전했더나 사위부족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 들였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고 돌아가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평화의 관계로 회복시켜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람들이 서로 시기하며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사랑하며 섬기며 평화를 만들어가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가운데 품고, 그분의 하시는 뜻대로 살아갈 때에, 우리는 하나님과도
평화할 수 있고, 사람들과도 평화를 이루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허락하신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평화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뱀과 같은 존재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속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뱀은 하나님과의 평화의 관계를 깨는 존재입니다. 뱀은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들도록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순종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불순종하게 만듭니다. 뱀은 사람들과의 평화의 관계를 깨는 존재입니다. 뱀은 상대방에 대해서 악한 생각을 주어서, 이간질시켜 불화의 관계를 가지도록 합니다.
하나님이나 사람을 적대시하는 마음과 생각을 주는 존재가 있다면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품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을 화목케 하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다툼과 미움이 많은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서로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태어나신 예수님과 같이, 겸손히 자신을 낮춤으로 또한 평화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우리에게
평화의 아이로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삶을 따라 살아감으로, 우리 가운데 불화를 만드는 뱀의 역사를
물리치고, 하나님과 평화하며, 사람들과 평화하는 평화의 삶을 확대하고
누리는 성탄의 계절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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