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8/2017 -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사도신경 설교 7) [에베소서 1:17-21]
지난 5월 25일은
교회절기로 '주의 승천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의 모든 사역을 마치시고, 하늘로 승천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승천주일로 예배드립니다. 사도신경에서는 예수님의 승천과 현재의 모습을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계시다가"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고,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한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를 쓴 기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에베소 교인들이 알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이후에 바로 하늘
승천하지 않으시고, 40일간 이 땅에 더 계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부활의 모습을 보이시고, 예수님의 부활을 확증해 주십니다. 그리고,
40일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승천 하십니다.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행하신 부활과 승천의 크신 능력을 보고서 제자들이 바뀝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직접 보기 전까지 예수님이 부활하시겠다는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늘 죽음을 말씀하실 때에, 부활하실 것을 동시에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그 모습을 직접 보여주셨을 때에 비로서 믿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믿게 된 것은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봄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로 제자들은 부활에 대한 철저한 불신자에서, 이제는 부활에 대한 철저한 증인으로 바뀌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이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의
현재의 모습에도 관심하게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늘로 사라져 버린 존재가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살아계시고, 우리의 삶에 영향력을 미치고 계심을 믿고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라는 믿음의 고백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님은, 지금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사역하고 계시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우리교회의 올해 표어가 "예수를 바라보자"입니다. 이
말씀은 히브리서 12:2절에 나오는 말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예수님은 지금 현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보좌에
앉으셔서 이 땅을 다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의 우편에 예수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더불어 이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당신과 함께 이 땅을 다스릴 권세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2:9-11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 오실 때에, 예수님은 지극히 낮으신 분으로
오셨습니다. 죽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에, 자신의 권세나 통치권을 주장하거나 누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에,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이 땅의 통치자들에게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채찍을 맞으시고, 얼굴에 침 뱉음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님을 그 낮아짐의 상태로 이 땅에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가장 낮은 자로 오셨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하늘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셔서, 모든 이들이 그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굴복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 한 친구 집에 갔었습니다.
조금 외진 곳에 있는 시골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 집 마당에 들어갈 때에,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붕 및 처마 밑에 앉아있는 매 한 마리였습니다.
그 매는 미동도 없이 날카로운 눈으로 마당 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매는 살아있는 진짜 매가 아니라 박제를 한 매였습니다. 그런데 꼭 살아있는 매와 같이 박제를 해 놓았습니다.
친구가 그 박제를 보면서 말하기를, 자기의 집에는 새나 동물들이 오지 않는다고 하더라구요.
비록 박제이긴 하지만, 매가 두려워서 다른 동물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에게 다른 어떤 동물보다 높은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니 다른 동물들이 두려워서 그 앞에서 도망하고 굴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늘과 땅과 땅 아래의 모든
만물의 가장 뛰어난 이름을 주셔셨습니다. 어떤 권세와 비교가 안 되는 최고의 권세를 주셔서,
모든 만물들이 예수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도록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믿는 이들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만물 위에 계신 통치자임을 믿고 굴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고백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고 순종하며 살아갈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할 때에 결국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면서 우리를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를 믿고 주님을 주인으로 하여, 그 분의 말씀에 굴복하는 삶이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삶인 것입니다.
2.
또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중보자로서의 사역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셨습니다. 그렇다고 폭군과 같이 다스리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도리어
그 반대입니다. 예수님은 중보자입니다.
이 땅에 계실 때에도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서, 죄로 인해 갈라진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를 중재하고 화해시키셨듯이,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여전히 중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을 목격한 증인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요한일서 2:1절에 말하기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운 예수 그리스도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사람의 대언자가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대언자라는 뜻의 희랍어는 “파라 클레토스’인데, ‘파라’는 '곁으로'란 뜻이고, '클레토스'는 ‘부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파라클레토스'는 '누군가를 위하여 곁에 서서 도와주는 역할을 맡은 자'라는 뜻입니다. 로마서 8:34절에, 사도바울도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온전하지 못해서 여전히 죄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로 따지면 벌을
받아 죽어야 마땅하지만, 여전히 하나님께서 기다려주시며 이해해 주시는 것은, 지금도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중보해 주시고, 간구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한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 밭에 무화과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열매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심은지 삼년이 지났는데도 실과가 맺히지 않았습니다. 이를 본 포도원 주인은,
땅만을 버릴 수 없다고 말하며 열매매지 못한 무화과 나무를 찍어 버리고자 합니다. 그 때에 과원지기가 그 주인에게 말합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눅13:6-9)
과원지기는 그의 주인에게 무화과를 대신해서 대언의 말을 해 줍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일 중에 하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사람의 형편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히브리서 4:15절에는 예수님을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님은
사람과 같은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사람의 죄성과 연약함을 정말 잘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우리의 형편을
말씀해 주시고, 또한 우리가 믿음으로 열매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고, 중보해 주시는 분인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지은 죄로 따지면 하나님께 벌을 받아도 한참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죽어도 오래 전에 죽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내가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언하심과 간구하심 덕분인 것 입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께서 대언하시고 간구하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이곳에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사탄은 죄인된 우리를 정죄하며 괴롭히고,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고발하지만,
예수님은 도리어 우리를 불쌍히 보셔서 하나님께 중보하시며, 우리를 격려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매일의 삶이 주님의 중보하신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함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다른 이들의 죄된 성향과 연약함을 볼 때에 가져야 할 마음은,
예수님과 같이 긍휼히 여기며 중보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죄성을
문제삼기 보다는 이해하려고 하셨고, 중보해 주셨기에, 저와 여러분이
죄로부터 해방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다른 이들의 형편을 이해하고 중보한다면,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닮은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오르셔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거할 집을 마련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2절에서 하늘나라로 가시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거할 처소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늘나라에 있는 하나님
아버지 집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5:1절에서,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있는 사람들이,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들을 다스리시고, 때로는 중보하시면서,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집이 있는 천국에 들어오게 하시기 위해서 사역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땅에 살면서 육신이 거할 집을 사거나 짓기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합니다.
그런데 튼튼하고 잘 지은 집도 영원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집에 사는
사람 또한 영원히 살 수가 없습니다. 제가
어릴 때 다니던 고향 교회는 처음, 시멘트 블록을 쌓아서 지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더 큰 교회를 지어야 할 때에,
이번에는 블록이 아닌 돌로 짓게 되었습니다. 돌산에서 돌을 가져다가 잘라서 그것으로
교회 건물을 짓는 일이 아주 힘든 일이지만, 아주 오랫동안 쓸 수 있는 튼튼한 교회를 세워 보자고 해서 돌로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다짓고 난 다음에 문제가 생겼는데 그것은 물이 센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완벽하고 튼튼한 교회를 지었다고 생각했는데 비가 오면, 그 돌들 사이로 빗물이
세어서 교회 안에 벽이 젖기 시작하고, 곰팡이가 생겨 냄새가 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잘 짓고, 완벽하게 지으려고 해도 이 땅에서의 집은 완벽하지도 영원하지도 않은 법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이 땅에 아무리
아름답고 튼튼한 집을 세워놓고 산다고 해도 그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그 집을 떠나야 하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인간의 육신의 몸을 장막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장막은 여행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는 임시거처입니다. 언젠가 떠날 것을 전제해서
신속하게 설치하고 거둘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장막입니다. 그런데
사람 몸이 장막집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나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의 장막집을 이 땅에 두고서, 이제 하나님께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의 집이 아니라, 하늘의 집을 예비하러 가심을
말하심으로, 우리가 이 땅에 영원히 살 것으로 집착하며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도리어 우리의 소망을 하늘에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련한 영원한 집에 거할 것을 소망하면서, 주님의 통치를 받으면서 구원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때로 우리의 육신의 장막이 후폐해
가고, 이 땅에 사는 집들이 시원찮아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살 집은
우리의 썩어질 육신의 장막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를 위해서 준비해 주시는 영원한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인해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고,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이 땅에 계실 때에는 지극히 낮은 존재셨지만,
지금은 온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 하시고,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절대적인 통치권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님께만
베풀어주신 것이 아니라, 19절에 보면, 하나님의 능력의 크심이 우리에게
베푸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부활할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영원한 집에 거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지금도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셔서, 우리를 통치하심을 믿고, 그 이름 앞에 무릎을 꿇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능력을 허락하시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영원한 집에서 살 수 있도록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믿고 살아가는 이들은,
이 세상에서 후폐할 집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예비하신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것을 기대하고 소망하면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굴복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이 땅의 어떤 집보다, 하늘의 집을 아름답게 짓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
어느 것보다도 가치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찬양드립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이 땅에 있으면서, 이 땅의 있는 임시거처, 장막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준비하신 영원한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에 무릎 꿇고 찬양하며 순종하고,
그 이름을 높이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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