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2017 - 주님의 재림과 심판 (사도신경 설교 8) [사도행전 1:6-11]
오늘 이 시간에는 사도신경에 나타난 우리의 믿음의 고백에 대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사도신경을 말하는 라틴어 Credo 는 “나는 믿는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곧 사도신경은 우리가 믿는 믿음을 그 내용으로 합니다. 그런데 Credo 는, Cor do (코르-도) 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는데, ‘Cor’ 는 ‘심장’, ‘do’ 는 ‘바치다’ 라는 뜻으로 “심장을 바친다.”라는
의미가 ‘코르도'에는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도신경으로 믿음의 고백을 할 때에 그것은 단순히 머리 속에 있는 지식과 정보를 되뇌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는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내 심장까지도
바친다.”라는 전적인 확신과 충성의 의미가 있습니다. 실제로
초대교인들은, 이러한 신앙고백을 지키기 위해서 죽음까지도 불사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동안, 우리의 심장을 드려서 지켜야 할 사도신경에 관한
말씀을 몇번 살펴 봤고, 오늘은 그 순서에 따라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는 사도신경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신경의 많은 부분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고백은 예수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과거 이천년전에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후에, 부활하셔서
부활의 몸을 입으시고 승천하셨고, 현재는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우리의 삶을 간섭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이제 미래에 이루어질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천년 전에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처음 오셨던 예수님께서, 이제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는 재림의 믿음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기독교인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었던 초창기의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에
믿음이 상당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해서
300여 차례나 말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는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부터 시작합니다. 요한복음 14:3절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이후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하늘로 승천하실 때에
천사들이 예수님의 오심을 예고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하늘로 오라가시는데 구름이 예수님을 가리워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서 이야기 합니다.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예고 합니다.
그 이후로부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에 대해서 기대하면서 평생을 살게 됩니다.
모든 성경의 마지막인 요한계시록도 예수님 재림에 대한 기대로 성경이 끝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마지막장인 22:20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합니다. 사도 요한은 주 예수님이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면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했고, 그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안에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을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2.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신다.”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두번째 오셔서 하실 일은 ‘심판’입니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그리스도의
오심을 간절히 사모했던 사람이 나옵니다. 시므온이라는 연세 많으신 할아버지입니다. 시므온은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바라면서 늙어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성령님이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그 이후에 아기 예수님께서 부모님에게 안겨서 성전에
들어오셨을 때, 성령님이 시므온을 감동시켜서 성전안으로 들어가서 아기 예수님을 뵙게 됩니다. 그 때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말합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누가복음 2:30-31)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통해서 이 땅의 구원을 보았던 것입니다. 시므온의
고백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처음 오실 때에는 구원의 주님으로 오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두번째 다시 오실 때에는 예수님은 사람을 심판하러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두번째 오실 때에는 구원받을 자와 멸망받을 자가 확실히 갈라지게 됩니다.
히브리서 9:27-28절에서도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모든 사람이 육신적으로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육신의 죽음은 어떠한 사람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또한 사람이 피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주님의 심판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심판은 산자뿐만 아니라 죽은자도
심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땅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면, 지금
살아있던지, 아니면 과거에 살다 죽었던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사람들이 행하는 심판은 그 심판의 대상자가 죽으면 끝입니다. 죽은
사람을 가지고 심판을 한다는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때에는, 사람이 육신적으로 죽었다고 심판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심판의
때에 주님은 죽은 자들도 다시 부활시키셔서
심판 자리에 서게 하십니다. 사람이 죽었다고 모든 것이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심각한 예수님의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심판은 영원한 생명과 죽음을 판결하는 재판이 됩니다.
요한계시록 21:8절에 보면,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죄인들은 주님의 심판을 받고 지옥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육신적으로 죽은 것은 별로 문제가 안됩니다. 심판 이후에 영원한
지옥 불속에서 그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둘째 사망을 치르는 자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 땅에서 살면서,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서, 자신은 죄로부터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다고 믿는 사람은, 곧, 죄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둘째 사망을 경험하지 않고, 영원히 생명인 천국의 삶을 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재림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죽어 영혼이 주님께로 간다고 하지만,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실
때에 다시 새로운 몸을 입고 부활에서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할 것을 믿고, 그 때를 준비하며 살고, 죽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3.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우리가 믿는 믿음의 고백이 됩니다. 그리고 초대교회 교인들은 한결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사모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께서 심판주로 오시는 것을 몰라서 주님의 재림을 그토록 고대했던 것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재림과 이 땅에 나타날 재앙들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요한은 속히 오시겠다고 하시는 예수님을 향해서, “주님
좀 천천히 와 주십시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도요한은 말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초대 교인들은 예수님이 심판주로 오시는 것에 대해서 겁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구원되었음을 믿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관심은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6절에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라고
했습니다. 초대교인들은 주님이 재림하시면 심판받아 지옥에 들어갈 것을 염려했던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있을 것, 그것도 항상 주와 함께 있을 것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재림으로 번역된 헬라어로 “파루시아(παρουσία)”는 “가까이 곁에 있다.”라는
의미의 “파레이미(πάρειμι)” 라는 말에서 파생되었습니다. ‘파루시아’는 예수님께서 자신들과 더욱 가까이 함께 하시기를 소망하는 바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 이 세상에 고난과 어려움이 많지만, 세상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더욱 함께 하고 싶어하는 그 소망이 초대교인들인에게 강하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그랬습니다. 고린도후서
5:8-9절에 고린도교인들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살고 죽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관심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고, 그리고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차라리 몸을 떠나, 죽어서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파루시아”를 기다리는 사람들속에 있어야 동기어야 합니다. 주님과 조금 더 가까이
거하고 싶어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해서 초대 기독교인들보다
많이 소망하지 않고, 도리어 이 땅에서의 삶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성향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천국
가기를 원하지만, 지금 당장 가고 싶어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초대교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울을 비롯해서
초대교인들은 예수님과 더욱 가까이 함께 할 것을 기다리며 그분의 재림을 소망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님은,
“너무 가까이 하지는 말아주시고, 좀 적당하게 떨어져서 그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분”으로 된 듯 보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거하기 보다는, 이 땅의 것과 사람들을 더 가깝게 두고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가난과 고난’ 가운데서는 예수님의 오심, 파루시아를 고대했는데, 이제 세상의 물질과 풍요속에서 예수님의 오심을
사모하지 않고, 지연되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이 풍요해서 예수님의 은혜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들이 많지만, 그럴 수록 우리와 영으로 함께 하시는
주님과의 교제를 누리며, 궁극적으로 주님을 직접 만날 것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는 거짓된 재림 사상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재림을 놓고 왜곡되게 가르치는 무리들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믿음이 이단적인 것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몰몬교의 창시자 요셉 스미스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왜곡되게 가르쳐서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1890년에 요셉 스미스는 앞으로 56년 내에 주님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56년이 지났는데도 주님의
재림은 없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챨스 럿셀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도 역시 잘못된 재림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1914년에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예수님이 영으로 재림하셔서 왕으로 통치하고 계신다고 변명을 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증인들이 모이는 집회소를 “왕국회관”이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믿고 사모하는 마음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분명한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그 때는 분명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마태복음 24:36절에 예수님은 주님의 재림과 종말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언제 오실는지는 다시 오실 예수님도 모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만이
아시는 ‘Top Secret, 최고의 비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재림과 심판의 날을 비밀에 붙이심으로, 날마다
주님의 재림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성도들이 어떤 특정한
날을 주의 재림의 날로 관심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이 주님의 재림의 날임을 준비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 샤워를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벌거벗고 샤워하고 있는데 주님이 재림하신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옷입을 시간은 주시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때보다 샤워를 빨리 마치고 나오게 됐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매일 순간순간에 이루어지는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
재림하실 때에, 주님 보시기에 얼굴 찡그리실만한 부끄럽고, 악한
모습으로 그분을 맞이하지 않도록 항상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믿는 성도들은,오늘도 내일도, 언제 주님오시던지, 그분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신앙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신다”고 저와 여러분은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주임을 믿을 때에, 우리는 예수님이
언제 오셔서 심판하시더라도 그에 합당한 삶으로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세주임을 굳건하게 믿고, 구원하신 주님의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초대교인들은 심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리어
속히 오시라고 간구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이 구원받았음을 확신했고, 또한 주님과 더 가까이 함께 거할 수 있음을 기대하며 사모했던 것입니다.
이 땅에 있으면서도 주님이 영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기쁨으로 누리실 뿐만 아니라, 또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그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것을 기대하시면서, 심판주로 오셔서 이 땅의 공의를 이루시고, 우리와 함께 하실 주님을 더욱더 사모하며 기다리시는, 매일매일이 주님의 파루시아, 재림의 날이 되는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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