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0/2017 - 지붕을 뜯는 믿음 [마가복음 2:1-5]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이라는 동네에 들어가실 때에 생긴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가의 북서쪽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그곳은 당시 갈릴리 호수가에 있는 마을 중에서 가장 발달한 어업도시였고, 다메섹과 이집트를 잇는 무역로가 지나가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상업적으로도 번성한 곳이었습니다. 가바나움은 유대인들의 회당도 있었고, 로마의 세관도 있을 정도로 커다란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에서 사역하실 때에 주요한 무대가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4: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에 가서 사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 마을을 중심으로해서 많은 사역을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면, 가버나움이 예수님으로 인해서 떠들썩합니다. 예수님께서 한 집에 머무르고 계신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고, 예수님께서 계신 집으로 사람들이 모이는데, 사람들이 워낙 많이 모여서 집안으로 들어가거나 나갈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많은 사람들에게 하신 일은 ‘도’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도’라고 하는 것은, 한문으로 ‘길’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시편 119:105절에서는 사람이 걸어가야 할 길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제대로된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제시하는 삶의 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영생으로 인도하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가능한 줄로 믿습니다. 어떤 분들은 사람의 말은 아주 잘 듣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적인 도를 배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배움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길을 배우고, 그 길을 따라가야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을 때에,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갑자기 예수님이 서 계신 지붕에서 ‘쿵쿵’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천장에서 흙같은 것이 떨어지더니 구멍이 뚫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내 커다란 구멍이 생깁니다.
예수님을 비롯해서 사람들이 그 뚫린 구멍을 보고 있는데, 지붕위에서 네명의 사람이 그 구멍으로 상을 매달아서 내립니다. 그리고 그 상위에는 중풍병자가 한 명 누워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상식으로 사람 네명이서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그 구멍으로 사람을 상에 뉘어서 내려 보낸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갈 것입니다. 지붕은 경사가 져서 올라가 있기도 힘들텐데, 또 단단한 지붕을 뜯고서 사람까지 내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의 일반집들은 지붕은 오늘날의 집과는 구조나 집을 짓는 재료면에서 차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집의 지붕은 평평합니다. 그곳에서 곡식을 말리기도 하고, 창고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지붕에 올라가서 하늘을 향해 기도를 하기도 하고, 휴식을 취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붕을 평평하게 만들어서 사람이 올라가서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지붕을 만들 때에 일단 벽을 세운 후에, 그 벽위에다가 지붕을 받칠 대들보, 커다란 나무를 몇개 올려 놓습니다. 그리고 대들보 위에다가 갈대나 가시덤불 같은 것을 올려 놓습니다. 그리고 그 건초위에다가 진흙을 발라서 틈을 매꿉니다. 그리고 그 진흙위에 모래나 자갈을 뿌리고 그것을 평평하게 다져서 지붕을 만듭니다. 그러면 사람이 올라가서 활동할 만한 평평한 지붕이 됩니다.
그런데 그 지붕을 네명의 사람이 뜯어 낸 것입니다. 모래 바닥을 긁어 내고, 갈대 건초를 들어 내서 구멍을 뚫고서 사람을 침상에 뉘어서 내린 것입니다.
아마 그것을 보는 사람들마다 황당했을 것입니다. 지금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갑자기 지붕이 뚫리더니 병자가 누워있는 침상이 내려 온다고 한다면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을 전하시다가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가르침을 방해하는 그들의 모습에 대해서 언찮해 하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중풍병자를 보시고서 말씀하십니다.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십니다. 그리고 그 중풍병자의 병을 고쳐 주십니다. 그 병고침을 받은 중풍병자는 너무 기뻐서 그가 누워있던 상을 들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 집을 나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중풍병자의 병을 고쳐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구원의 기쁨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중풍병자가 병고침을 받게 된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네명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주실때에 보셨던 것은, 중풍병자의 믿음이 아니라, 5절에 보면,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붕까지 뜯고 중풍병자를 달아 내린, 그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 병자를 고쳐주시기로 작정하셨던 것입니다. 곧 그들의 믿음이 한 중풍병자를 예수님께로 인도하였고, 그리고 예수님의 고침을 받게까지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에, 저와 여러분들도 이 네명과 같은 사명이 있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로 올 수 없는 이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여 주님을 대면케 하고,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케 하는 일들을 하는 자와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서 우리들의 믿음이 더욱 강건케 되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병자를 고침받게 하고, 한 죄인을 구원케 했던 그들의 믿음, 예수님께서 보셨던 그들의 믿음은 어떠한 믿음이었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1. 먼저, 이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은 남다른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로 가기만 하면, 이 중풍병자의 병은 반드시 나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 집의 지붕까지 뜯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러한 믿음을 가지게 된 연유를 보게 되면, 그들은 이미 며칠 전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거나, 들었기 때문입니다.
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를 고쳐주시기 며칠 전에도 가버나움에 왔다가 가셨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을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열병을 앓고 있던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셨고, 여러 병든자들을 또한 고쳐주셨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네명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가버나움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3절에 보면, 네 명이 중풍병자를 예수님께로 데리고 간 이유가, 다른 사람들이 네 사람에게 그 일을 시켰기 때문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주실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이미 믿고 있었고, 그들은 네명에게 지시해서 중풍병자를 예수님께로 데리고 가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믿음은 어디에서 생겼냐 하면,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보거나, 들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저절로 생기거나 성장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생기기 위해서는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듣거나, 예수님의 행하신 일을 보는 사건이 필요합니다. 네명의 사람은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행하신 기적을 직접 보았거나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시는 그 자리에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귀신들렸다가 나은 사람이나 병들었다가 나은 사람의 간증을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예수님을 보거나 들음으로 생긴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더욱 잘 믿는 믿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모습으로 믿음의 사건들을 보고 듣는 일이 중요합니다.
로마서 10:17절에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에 열심을 내고, 믿음의 사건들이 일어나는 곳을 경험하는 것이 믿음 성장에 있어서 중요합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가에서 대화하는 장면이나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과 대화를 하면서, 예수님이 메시야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을 알게 된 여인은 그 즉시로 자신의 마을로 뛰어가서 예수님을 전하게 됩니다. 그 때에 이 여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믿기도 하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신의 마을에 며칠 머물러 주실 것을 청하여서 이틀을 지내시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마을에서 예수님께 직접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이제 그 동네 사람들이 처음 예수님을 소개해 준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합니다.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고 말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메시야인 것을 깨닫고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믿음의 자리로 나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이 생길 수도 없고, 성장할 수도 없습니다.
지난 주간, 저는 우리 중고등부 학생들 6명을 데리고 오클라호마에서 열리는 중고청 연합집회에 다녀왔습니다. 8시간을 왕복하는 먼 여정이었지만, 저는 그 학생들을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 말씀의 자리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더 감사한 것은, 수련회 금요일 저녁 집회 이후에, 강사목사님께서 학생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이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Preacher 로 부르심을 받거나, 도전을 받는 학생들은 앞으로 나오라”고 Altar Calling 을 하셨는데, 100여명의 학생중에서 6명의 학생들이 응답했고, 그 중에는 우리교회 학생도 한 명 있었습니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우리 학생들이 여러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믿음의 말씀을 들으면서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우리교회 학생들이 앞으로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의 단계를 넘어, 주님 앞에 헌신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힘써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 이유를 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믿음의 자리로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말씀이 들려져도 그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믿음의 성장을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지는 그곳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예배 시간 시간은 물론이고, 성경공부도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소그룹모임에서 성경말씀을 나눌 때에도 믿음이 성장합니다.
뿐만 아니라, 매일 매일 성경 말씀을 읽는 일에도 열심을 내셔야 합니다. 사람이 설교를 잘 들었어도 일반적으로 24시간이 지나면 75%정도는 잃어 버린다고 합니다. 일주일에 한번 설교 듣는 것으로 내 신앙이 잘 성장할 것으로 크게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학생이 일주일에 30분 정도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것으로 잘 배웠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 하루 종일 공부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집에가서 숙제를 하면서 더욱 배우기에 애를 씁니다.
믿음생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고, 그 말씀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면서 살아가는 그 믿음은 오래 교회에 다닌다고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자리로 나와야 합니다. 믿음으로 예배드리고, 말씀듣고, 기도하는 그 자리로 나아갈 때에 그 믿음이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만약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지 않으면 있던 믿음까지 상실하게 됩니다. 지붕을 뜯는 네명의 사람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기적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2. 그리고 지붕을 뜯는 네명의 믿음은, 그들 앞에 놓인 장애물을 극복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중풍병자를 고치기위해서 네 명이 해야 할 일은 예수님께로 그 중풍병자를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중풍병자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만남이 가능할 수 있도록 주선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꽉 차 있어서 도저히 중풍병자를 예수님께로 데리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먼저 만나러 온 그 사람들이 도리어 방해물이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명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로 나아갈 또 다른 방법을 찾습니다. 그것이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뚫고 그 환자를 예수님께로 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붕까지 뜯어서까자 중풍병자를 자신에게 데리고 오려고 하는 그 모습을 보고, 그들의 가진 믿음을 보게 되십니다.
예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고자 할 때에 반드시 장애물이 앞을 막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삶 속에는 시험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믿음생활하면서 부딪칠 시험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장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먼저 이들이 마주한 장애물은 사람이었습니다. 네명이 중풍병자를 메고 예수님께로 가고자 할 때, 사람들이 홍해와 같이 갈라져서 예수님께로 길을 내어 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 좀 잘 믿어보려고 했더니, 어떤 사람이 눈에 걸려서 믿음생활에 어려움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자신들을 막는 람들과 실랑이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예수님이었지, 그 사람들과 맞서는게 아니었습니다. 네명은 그 사람들을 피해서 다시 예수님께로 나아갑니다.
그들이 마주한 두번째 걸림돌은 환경이었습니다. 중풍병자를 멘 네명이 사람의 장애물을 피해 지붕위로 올라갔을 때에, 지붕이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자신들 사이에 지붕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로 갈 때에, 사람이 장애물이 되었고, 환경이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러한 장애물을 볼 때에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장애물을 주신 것은, 이 일을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믿음의 결단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믿음의 장애물을 주실 때에는, 그것을 극복하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큰 믿음의 세계로 나아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하면, 더 좋은 믿음으로 성장할 수도 없고, 더 큰 믿음의 세계를 경험하지도 못합니다.
믿음의 시험과 장애물로 인해서 괴로워하는 분들을 만나게 되면 목사로서 권면을 합니다. “믿음으로 결단하고, 흔들리지 말고 나아갑시다.”라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믿음으로 결단하고, 사람이나 환경의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더욱 좋은 믿음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믿음의 장애물을 허락하신 하나님은, 그 장애물 앞에서 담대히 믿음으로 넘어서는 그 믿음을 보기 원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께로 더 가까이 가고자 할 때에, 가장 큰 장애물은 다른 사람이나 환경도 아닙니다. 자기 자신입니다. 내 자신이 예수님께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고 못하도록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믿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극복해야 할 장애물은 바로 자신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네명의 사람에게 본 믿음은, 바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예수님께로 가까이 가겠다는 시험과 장애물을 극복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지붕을 뜯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들 안에 있는 간절함과 그 믿음을 보셨던 것입니다.
3. 예수님은, 네명의 믿음을 보시고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 믿음에 응답해 주십니다. 더 큰 믿음의 사건을 보여 주시고, 그들의 믿음을 더 성장케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네 명이 내려 다 준, 침상에 누워있는 중풍병자를 보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의 육신적인 병고침만을 관심한 분이 아니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에 먼저 관심하셨습니다. 죄로 인해서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중풍병자를 보시면서, 죄사함의 은혜를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육신적인 문제도 해결해 주십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자신이 누워 있던 상을 들고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집으로 나아갔습니다.
중풍병자가 죄사함을 받고, 육신적으로 고침을 받은 것은, 예수님께서 네명의 믿음을 보시고 일으키신 믿음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지붕을 뜯는 네명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더 큰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네 명의 믿음의 사람들로 인해서 그 집은 더큰 믿음의 사건을 경험할 수 있었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더 큰 믿음으로 나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네 명의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원하시는 역사를 보지도 못한 중풍병자를 위해서 그들을 보내셔서, 예수님께로 오도록 지붕을 뜯는 믿음을 허락하시고, 또 다른 기적의 역사가 연속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시는 믿음은 단순히 입으로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사람과 환경을 탓하면서 주저 앉아 있는 모습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네 명의 사람과 같이 예수님께로 나아가기 위해서 지붕을 뜯어 내릴 정도의 믿음과 그 결단의 모습을 보시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의 믿음이 아니라, 네명의 믿음에 반응하셔서, 그 믿음의 역사를 이루셨던 것과 같이, 저와 여러분들의 믿음의 모습을 통하여서, 이 땅 가운데 구원과 치유의 역사를 이루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네명의 믿음을 보시고, 믿음의 역사를 이루셨던 것과 같이, 좋은 믿음을 주님께 보여 드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원합니다. 좋은 믿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장애물은 필수적입니다. 사람을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장애물을 주실 때에 그것을 핑계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지붕을 뚫어서라도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그가운데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원하기는 우리 교회가 믿음의 사람들로 지붕이 뚫린 그 집과 같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믿음의 사건을 경험하고, 그 사건으로 날마다 믿음이 성장하고,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장애물과 시험을 이기는 믿음, 그래서 한 영혼 영혼이 구원함을 받고, 삶의 문제가 해결되는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가정과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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