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9/2017 -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로마서 6:11-14]
오늘날,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여러 주변 나라들을 불안하게 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북한입니다. 북한의 포기하지 않는 핵무기 개발과 이와 관련된 미사일 발사 실험들이
국제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들도 핵무기와 치명적인 무기들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북한에 대해서 우려하는 것은 그들이 무기를 개발하여서 자신들과 좋지 않은 관계속에 있는 나라들을 위협하고,
국제 평화 관계를 파괴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무기 자체라기 보다는 그 무기가 누구의 손에 의해서 사용되느냐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에게
그 무기가 들어가면 사람들을 상하게 하고 죽이는 일에 사용되고, 선한 사람 손에 들어가면 사람을 보호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일에 사용되게 마련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의 몸을 ‘병기, 무기’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몸을 가지고 의를 도모하는데 사용되기도 하지만, 어떠한 사람은 불의한 일에 사용되기도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원하시는 의의 병기로 사용함을 받을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사도바울은 우리의 몸을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곧 죄가
우리의 몸을 다스려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로마 교인들에게 주는 말입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고 죄의 지배로부터 완전히 자유케 된
것은 아닙니다. 죄는 구원받은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죄의 본성을 자극해서 우리에게 왕노릇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단 중에서 하나인 구원파가 주장하는 교리 중에서 죄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구원파들은
구원에 대해서 강조하면서, 일단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함을 받았으면, 더 이상 회개하는 삶을 살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회개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 따르면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의 권세를 이기고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죄성을 깨닫고,
더 이상 죄의 지배아래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만,
여전히 죄의 영향력 속에 있는 것이 기독교인입니다. 그러기에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0:12절에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잘 섰다고 생각할 대에 그럴 때에도 넘어질까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자신의 병기로 사용하기 위해서 유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렇다면, 우리가 죄의 다스림을 받아, 불의의 병기로
드려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도 바울은 먼저,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욕, 곧 악한 욕망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욕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몸의 욕망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욕망들이 다 선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사욕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악한 욕망도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19-21절은,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몸의 사욕을 쫓아서 살아가다가
보면, 이러한 죄가운데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러한 몸의 악한 욕망, 사욕에 순종치 말라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몸에 대해서 말하기를 “아름답고 건강한 몸””소중한 몸”이라고 말하지 않고 “너희 죽을
몸”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사람의 몸이 유한하고 연약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욕망에 순종하면서 살기에는 우리의
몸이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죽을 몸이 원하는 것을 따라서 살아다가 보면, 죄에게 지배받고 불의함에 사용되기 마련이기에 육체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라고 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육신의 악한 소욕을 따라 살아가도록 유혹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사탄은 하와의 육신의 사욕을 자극합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금하신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과일이 보암직스럽고, 먹음직스럽도록 만듭니다. 결국 육신의 사욕을 따라서 과일을 먹게 되고 결국 죄에게 왕노릇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 40일간의 금식기도를 마치고, 사탄이
예수님께 와서 시험했던 것도, 예수님의 육신적인 사욕을 자극하는 일이었습니다. 먹고 싶은 육신의 배부름을 자극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라는 명예욕을 자극했습니다.
모든 권세를 다 주겠다는 권력의 욕망을 자극했습니다. 육신의 사욕을 자극해서 그것에
순종케 함으로, 사탄 자신이 왕노릇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죄에게 왕좌를 주고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하도록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 반대입니다.
육신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육신의 원하는 것을 따라서 살아갈 때에, 자신의
자유를 누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육신의 소욕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을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내 육신에 좋은대로 살아가다가 보면
나는 어느덧 불의한 병기가 되어져서, 이 땅 가운데서의 하나님의 나라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내 사욕대로 살다가 가정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공격하고 파괴합니다. 교회에서,
사회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공격하고 상하게 하는 불의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사욕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육신적으로 즐겁지 못하더라도, 힘들더라도, 그것이 내 몸의 원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쓰시도록 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번 과테말라 단기선교를 하나님의 은혜로 잘 마쳤습니다. 이번에
선교를 가면 꼭 가봐야 겠다고 생각했던 곳이 있었는데, 저희가 선교하는 지역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알모롱가
라는 마을이었습니다. 과거에 그 마을은 육신의 사욕을 따라 살아가다가 죄에 지배를 받던 역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마야의 후손인 끼체 종족이 사는 마을로, ‘막시몽
Maximon’이라는 우상을 섬겼던 곳입니다. 나무로 만든 사람모양의 막시몽 우상은
그 지역을 영적으로 점령하고 있었고, 사람들로 하여금 육신의 사욕을 따라서 살아가도록 했습니다.
사람들은 육신의 즐거움을 위해 술에 취해 살았습니다. 자신의 분노와 미움을 폭력으로
풀도록 했습니다. 도시 전체가 가정 폭력과 범죄로 물들었습니다. 감옥은
범죄자들로 인해서 늘 만원이었고, 더 이상 수용할 수가 없어서 주변 마을에 있는 감옥으로 보냈습니다.
그들은 가난에 사로 잡혀 있었고, 가난을 극복하려고 더욱더 우상에게 매달렸지만,
그럴 수록 더욱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974-75년 사이에 그 마을에 영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우상과 더러운 악습에 찌들어 살던 ‘마리아노 리스까흐체’ 라는 청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목회자가 되어서 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청년 몇 사람이 마리아노 목사님을 찾아와서 총을 그의 머리에 겨누었습니다.
마리아노 목사님은 총구가 머리를 향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자신을
구해주시면 주님의 일에 헌신하겠다며 그 청년들이 보는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은 방아쇠를
당겼는데, 그 총은 발사되지 않았고, 목사님을 죽이려고 왔던 청년들은
그 상황에 놀라서 도망갔습니다. 그 이후로 목사님은 몇개 되지 않은 그 마을에 있는 교회들과 연합하여 알모롱가를
위해서 중보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적인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악한 영의 지배를 받았던 사람들이 점차 회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구원받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가정의 폭력이 사라지고, 범죄가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그곳의 수 많았던 술집들이 없어지고, 감옥은 텅텅 비기 시작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곳의 땅들이 풍성한 열매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수확이 없었던 땅에서 풍성한 야채들이
생산되었습니다. 저희 선교팀이 알모롱가에 있는 밭을 지나갔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평화스러보였고, 밭에는 풍성한 채소로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 알모롱가는 98%가 기독인이라고 합니다. 알모롱가의
사람들은 그 전에는 몸의 사욕에 잡혀 자신들의 몸을 불의의 병기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기도생활을 멈추지 않고, 자신들의 몸과 마음을 드려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병기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썩어질 몸을, 하나님의 의의 병기로 드려지기를 원하고,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이유 중에 하나는, 이 세상의
죄의 세력과 맞서서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어나가는 강력한 무기로서 사용하시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께 의의 병기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죄가 아무리
육체의 사욕을 주장하면서 나를 지배하려고 한다 할지라도, 죄의 유혹에 대해서 반응하지 않는다면,
죄가 우리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11절에는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죽은 사람의 귀에 대고 아무리 무엇을 하라고 명령을 한다고 해서 그것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은 죄짓는 일에 대해서는 죽은 자처럼 반응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에는 민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일에는 민감한데,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는 민감해서 자신이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시는
일에 열심으로 사용 받아야 합니다. 2) 또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의의 병기로 드려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머물러야 합니다. 14절에,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죄의 병기로 드려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 중에서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고 살아갈 때입니다. 율법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게 합니다. 사람이 율법을 어겼을 때에는 죄를 지었다고 정죄하며 구원의 은혜를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사람이 율법을 지켰을 때에는 구원이 마치 사람의 공로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듭니다. 결국 죄는 구원이 사람의 노력으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 결국 구원에 이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죄의 권세를 못 이깁니다. 그런데, 은혜가운데 있는 사람은 반대입니다. 죄는 지속적으로 사람을 드러내어서 정죄하거나 그 공로를 자랑하도록 만드는데, 은혜가운데 있는
자들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드러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내 자신이 비록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구원받았음을 선포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자신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죽음에서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면서 살아감으로, 우리는 죄를 이기고 그 지배를
받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고 살아갈 때에, 우리는 불의의 병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쓰시는 의의 병기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예배에 성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로마서 12:1절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우리의 몸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 선교 일정 마지막 금요일에 다녀온 마을은 특이한 모양의 산 중턱에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산 봉우리들이
뾰족한 돌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여러 종교 사람들이 올라가서 기도하는 기도처라고 합니다.
기독교인들도 올라가서 기도하고, 마야의 토속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가서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위에는 십자가도 세워져 있고 하얀 천들도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마을을 시끄럽게 한 사건이 있었는데, 마야 종교를
섬기는 사람이 제사를 드리는데, 자기의 아이를 제물로 드리기 위해서 제단에 올려 놓고 의식을 진행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의 할아버지가 아이를 찾다가 이를 발견하고 경찰에 연락해서 그 아이는 다행히 죽음을 면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다른 이를 제물로 바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모여서 함께 예배드리는
일에 우리의 몸이 바쳐지기를 원하고, 흩어져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면서, 예배의 삶을 살아가는데 의의 병기로 사용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배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의의 병기로서 불의와 맞서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죄의 권세와 다스림 속에서 불의한 도구로 사용되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썩어질
자신의 몸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뜻과 대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방해하고 공격하며, 강한 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불의의 병기가 많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드려질 의의 병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몸의 사욕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하심을 따라서 살아가는 병기를
원하십니다. 자신의 행함의 공로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병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 강력한 불의의 병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노략하려고 하는 죄에게 드려진 불의의 병기가 가득한 이 세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욱 강력한 병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불의의 병기에 무참히 패배하는 병기가 아니라,
우리 곳곳에 있는 죄의 다스림과 불의함을 파쇄하는, 강력한 하나님의 의의 병기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사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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