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2017 - 죄를 사하여 주심 (사도신경 설교 10) [요한복음 8:1-11]
오늘날 감옥안에는 수 많은 죄수들이 복역하고 하고 있습니다. 텍사스에
인구가 28,500,000(이천팔백오십만)명 인데, 텍사스에 108개의 크고 작은 감옥에, 141,859(십사만천팔백오십구) 명의 죄수가 수감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텍사스 인구의 200명 당 한명은 감옥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범죄자로 감옥에 수용된 이유는, 그들이 법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은 “죄인이다.” “죄인이 아니다.”라고 구별하는 판단의 근거는 바로 법입니다. 법을 어기게 되고 그것이 발각이 되면 죄인이 됩니다. 그리고 죄인으로
판명이 되면 그 죄에 따르는 값을 치르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벌금을 내고 그 죄의 대가를 치릅니다. 감옥에서도 죄의 경중에 따라 며칠 감옥살이를 하고 나오는 사람도 있고, 아니며
죄가 중하기 때문에 평생을 감옥에서 살거나, 심지어 사형을 사형을 기다리는 죄수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감옥에 있는 사람들만이 죄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모두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죄의 대가도 보면 시시한 경범죄가 아니라 사형죄에 해당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인된 모든 사람은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바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영원한 죽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고백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구원의길, 천국의 길을 열어 주셨음을 우리는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고백속에 담겨진 의미에 대해서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먼저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을 믿는다.”라고 했을 때에는 내가 죄인이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죄인이면서도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의로운 사람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이러한
사람들을 흔하게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께 간음한 여인을 잡아 옵니다. 그리고 보란듯이 예수님 앞에 그 여인을 팽개치고 예수님을 향하여 묻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는데, 당신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예수님께 질문하는 이들의 질문은 타당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해서
그 여인은 죄인으로 판명되었고, 그리고 그 여인을 돌로 쳐죽이라는 것도 이미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율법의 기능이었습니다.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의도는 심히 악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 율법에 대해서
문의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고소할 조건을 찾고자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사람들의 인기와 신뢰를 받으며, 사랑을 강조하던 예수가 그
여인을 돌로치라고 한다면 그의 명성에 커다란 해를 받게 되고, 예수님의 세력이 급격히 줄어들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예수께서 그 여인을 돌로치지 말라고 한다고 해도, 율법을
어기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어떠한 대답을 하던지 모두가 문제가 될 것이 뻔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의도가 불순하고 불의하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그 여인이 혼자 잡혀 와서 그 수치를 당하는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원래 율법에 의하면 그 여인은
자신을 간음한 남자와 함께 있어야 했습니다.
여인을 돌로치려했던 사람들이 제시한 모세의 율법은 신명기 22:22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남자가 유부녀와 통간함을 보거든 그 통간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간음을 하는
것은 여자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이러한 일들은 남자의 주도로 이루어지기 마련입니다. 누가 주동자였던지 간에 남자와 여자가 모두 잡혀 와야 하는데, 여인만
잡혀 온 것입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여인으로 간음하도록 만들고, 그 현장을 덮쳐서 그
여인을 잡아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제시하지만, 자신들도
그 율법에 어긋난 악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미 흥분해서 그 여인을 돌로 치려고 합니다. 이는 예수의
허락이 없어도 율법에 의해서 자행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들은 예수님도 그 여인과 같이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만약 그여인을 살려두라고 했다면, 예수님도
율법을 어겼다고 돌로 쳐 죽였을 지도 모릅니다.
2.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이 여인을 돌로 치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예수님의 말씀에 주위가 썰렁해 졌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하고 당황했을 것입니다.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그들은 어느 누구도 그 여인을 돌로 칠 수 없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자신들이 그 여인을 돌로 쳐 죽일만큼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된 것은, 자신들 또한 다른 사람의
죄를 물어 죽일 만한 자격이 없는 동일한 죄인인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돌을 땅에 내려 놓고, 그 자리를 모두 떠났습니다.
사탄이 하는 일이 그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죄성을 깨닫지 못하도록
합니다. 다른 이들에 대해서만 정죄하게 하고, 그래서 분노하면서
살아가도록 합니다.
지난 주간에 울산대학교, 법철학교수인 이정훈교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이정훈 교수는 철저한 불교인이었고, 반기독교적인 법을 재정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입니다. 그 동안 이정훈교수가 했던 중요한 일은,
한국에 “종교 자유
정책 연구원”이라는 기관을 통해서, 한국교회를 무너뜨릴 법을
건의하고, 이것을 입법화 시키도록 지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교수는 종교의 자유를 운운하면서, 기독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다른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교회를 공격하고 불이익을 주도록 했습니다. 미국에서 고속도로를 다니다가 보면, 커다란 간판에 “Jesus loves you”라는 싸인을 종종 보는데 한국에도 이러한 싸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싸인을 더 이상은 볼 수 없게 되었는데, 이것도 종교자유정책연구위원회에서
이것이 종교자유침해라고 주장해서 내리도록 한 것이라고 합니다. 2004년에 ‘강의석'이라는 학생이 자신이 다니는 기독교학교인 대광고등학교에서
종교 자유가 침해당한다고 단식 농성을 벌였습니다. 개학식과 졸업식과 같은 학교 행사를 예배의 형식으로
진행하고, 모든 학생들이 이에 참여할 것을 강요한다는 것입니다. 그
일로 강의석 군은 퇴학을 당합니다. 그 이후에 학교와 교육청을 대상으로 고소해서 승소를 합니다. 그런데 그 배후에도 이 기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세금을
내도록 주장하는 법제정을 하고자 하는 것도, 이 단체에서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이정훈 교수가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극적인 변화의 계기가 2007년에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를
공격할 또 다른 정책을 준비하면서 기독교방송을 텔레비젼으로 보면서 모니터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기독교에
대해서 알아야지 그 잘못됨을 끄집어 내서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기독교방송을 자주 봤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날도 한 목사님의 설교를 관찰하며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방송에서 목사님은 “사람들이 죄인이고, 예수님께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해야 한다.”는 말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이정훈 교수는 그러한 설교를 들을 때마다 조롱조로 말했다고 합니다. “죄인? 웃기고 있네… 너나 잘하세요.”
그날도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그렇게 조롱하려는 말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혀가 굳어지고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번개에 맞은
것과 같이 자신을 사로 잡는 강력한 힘으로 인해서 자신은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리고 되었습니다. 그때
이정훈교수는 땅에 엎드려서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죽었구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일로 인해서 이정훈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자신이
죄인임을 철저하게 깨달아 회개하고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기독교회를 공격하는 세력들에 대해서
밝히고, 이를 영적전쟁으로 인식하고 맞서야 한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정훈 교수가 예수님을 만나서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기 전까지, 교회가
한국 사회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고, 자신은 그러한 교회를 파괴하는 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후에, 이정훈교수는 그 동안
자신이 부인했던 것을 인정하며, 고백하게 됩니다. “사람은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이요, 하나님께서 그 죄를 물어 죽인다고 할지라도,
어떠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죄인임을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 그 죄의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성을 보지 못하고 다른 이에게서 그 죄를 찾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실 때에도, 유대인과 로마인들은 자신들은
아무런 죄가 없는 의로운 사람처럼 여기고, 도리어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서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우리의 인간적인 속성을 가장 잘드러내는 말이 죄인입니다. 혹시나 주님
보시기에, 우리가 죄된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늘 살펴야 합니다.
3. 그리고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했을 때에,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만이,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는 유일한 길임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이려는 사람들을 향해, “죄없는
자가 저 여인을 돌로치라”고 했을 때, 여인을 돌로치려는 사람들은 모두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양심은 있어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돌아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라면, 간음한 여인을 보고서 돌로쳐서 율법을 집행할 만한 사람이 딱 한명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기에 그 여인을 돌로 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지셔서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돌에 맞아서 그 죄의 댓가를 치러야 할 그 여인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돌로 치지 않으셨을 뿐아니라, 도리어 그 여인을
위해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이 여인에게만 죄용서함을 허락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은 멸망치 않고 영생에 이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지은 죄가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사함을 받은 것은 거져 된 것이 아닙니다. 때로 세상에서는
죄에 대한 사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명절 때에 대통령 특별사면이라고 해서, 대통령 명령에 의해서 죄수를 풀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값없이 대통령의
선물로 풀어진 것입니다. 사면을 할때 그 죄인의 남은 죄의 형량을 누구도 대신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공의롭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를 사해 주신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원하지만, 공의를 훼손시키지 않으십니다. 누군가
죄의 대가를 치러야 사랑과 공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람들의
죽을 죄를 담당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죄를 정죄하지 않고 대신 그 여인의 죽을 죄를 대신해서 직접 치르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믿음이 있을 때에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는 줄로 믿습니다.
4.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를 믿는 사람들은, 또한 용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문을 가르쳐 주시면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하나님의 죄의 용서함을 믿고 기대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죄를 지은
이를 용서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죄인된 사람을 품고 함께 가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6:37,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다른 이들을 정죄할 만한 존재가 못됩니다. 나도 깨닫지 못하는
수 많은 죄가 나를 스스로 정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내가 그것을 깨닫지 못해서 태연해 하고, 의롭다고 착각하는 것 뿐입니다.
여인을 정죄했던 사람들은 그들이 의로워서 그 여인을 돌로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하고 의롭다고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고 돌을 내려 놓았고, 또 다른 죄를 범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죄사함 받았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또한 죄를 사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로 죄를 용서하라고 하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마땅한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면서 가장 상대하기 힘들어 하셨던 이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기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에 종교지도자여, 율법에 대해서 잘 알고,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두개인,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의롭다고 여겼고, 돌을 들어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치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또한 우리 모두를 향하신 말씀입니다. 지난 한 주간을 돌이켜서 나의 모습을 보았을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치 아니하시는 죄가운데 있었음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죄를 위해서 대신 죽으셨다는 그 대속의 십자가를 믿을 때에만 가능한 줄로 믿습니다.
그럴 때에 나의 공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죄사함을 받습니다.
또한 죄사함의 은총을 아는 사람들은, 또한 죄사함의 용서를 베푸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내가 다른 이를 정죄할 만한 존재가 안됨을 깨닫기에, 다른 이에게 들었던 돌들을 내려 놓고, 또한 용서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오늘 우리에게 죄용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릴 뿐만 아니라, 그 용서의 사랑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흘러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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