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7/2018 -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 [히브리서 3:1-6] 신년주일
기독교인을 표현하는 여러가지 호칭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기독교인들을 향해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가 아니라,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부르심,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가져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왜 나를 부르셨는지를 그 이유를 알고,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기독교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늘의 부르심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거룩한 형제들”이라고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자들로써,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기독교인은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깊이 생각하다는 ‘카타노에오’ 라는 헬라어를 쓰는데, 이는 “어떤 것에 대해서 전심으로 몰두해서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아주 집중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깊이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그 사람에게 큰 관심이 있을
때입니다. 상대방이 너무 싫던지, 아니면 너무 좋으면 상대방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비디오 오락을 좋아하는 학생들에게는 게임생각에 게임화면이 눈에 아른 거립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꿈에 나타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대학교 교수님은 학생들과
당구장에 갔다가 재미에 들리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강의를
위해 강대상에 섰는데, 강의실에 모여있는 학생들의 모리가, 당구대 위에
올려진 당구알 갔더랍니다. 우리가 무엇인가에 관심하게 되면 그것을 생각하게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깊이 생각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때에, 사람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서 깊이 생각하셨던 분이시고,
사람의 몸을 입고서 이 땅에 오실 정도로 우리를 생각하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오늘날도
우리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생각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주님은 우리를 깊이 생각하시며, 우리를 집중해서 바라보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생각하듯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도리의 사도요, 대제사장”으로
깊이 생각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아포스톨로스’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면서 자신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반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요한복음 5:17절에,”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라고
했습니다.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할 것은, 자신을 보낸자의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고,
이 땅에서 사도로서의 일을 감당하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그가 사도로서 감당한 일이 대제사장으로서의 역할입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이라고 하면, 구약시대때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 속죄제사를 드리도록 했는데, 그 일을 관장하는 사람이 대제사장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있어야 속죄제사가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속죄제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속죄제물입니다. 히브리서 9:22절에는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속죄제물인 양이나 소 같은 것을 잡아 피를 흘리는 일어 있어야지만,
죄사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할 때에, 그분은 이 땅의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한 대제사장의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분이
예수 그리스도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속죄의 일을 하셨는데, 다른 짐승을 잡아서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직접 흠이 없고 정결한 속죄제물이 되셔서,
피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할 때에,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속제제물이 되셔서 피를 흘리시고 돌아가신
그 은혜와 사랑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와 사랑은 기독교인들이 늘 깊이 생각해야 할 내용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의 근간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예배드리는 것도,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도,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 은혜와 사랑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믿음생활을 하면서,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생각하지 않고 할 때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감격 없이 예배드릴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참 힘들고 고달픕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살아갈 때에 예배와 믿음의 삶에 감동이 있고,
생명력이 살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며 회복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 이어야
합니다.
2. 그리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생각해야 합니다.
2절부터 보면 하나님의 집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집은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하나님의 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으로서 그들은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 신실한 일꾼으로, 종으로서 신실한 사람이었고,
유대인들은 그러한 모세를 위대하게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세와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을 만드신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집으로 삼으셨지만, 신약에 들어와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집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것이 교회입니다.
에베소서
1:22-23절에,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으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예수님은 어떤 존재냐 하면, 하나님의 집을 만드신 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집을 이루는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인 성도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집된 우리를 맡아주신다고 했으니, 우리가 하나님의 집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고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을 맡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원하시는 뜻대로, 그분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갈 때에, 성도의 삶과 교회가 주안에서 아름답게 지어져 가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에, 우리의 삶을 맡아주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분을 믿고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일을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대로 자신의 모든 것,
생명까지 맡기고 하셨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를 맡아주신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가장
좋은 것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3.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하나님의 집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6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된 존재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소망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때로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소망이 무너지고 절망적인 상황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에도 예수님을 생각하며,
예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시편
42:11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서 절망을 경험할 때에, 하늘에 소망이 있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와이 마우이 섬에는
Haggi Institute 가 있습니다. 이는 존 해거이라는 미국의 전도학자가
설립한 기독교기관입니다.
해거이 목사님에게는 존이라고 하는 외아들이 있었는데 정신박약아였습니다. 존은 휠체어를 타고 앉아서 아버지가 설교를 하면 뒤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했습니다. 부모님은
어떻게 하든지 그 아이를 고쳐 보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이 아이를 안고 다니면서 22년 간을 지내다가 결국 그 아이는 죽고 말았습니다.
해거이 목사님은 아들이 죽은 후에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내가 이제 해야 할 일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해거이 인스티튜트’(Haggai Institute)라는 기관을 설립했습니다. 복음이 잘 전해지지 않은 아프리카나 아시아에 있는 기독교 지도자들을
모집해 하왕이로 데리고 와서 한달동안 훈련을 하고, 다시 돌려보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해거이 박사는 자기 가정에 닥친 절망적인 일에 낙담하지 않고,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안에 소망이 있음을 굳게 붙잡고, 그 소망을 전하는데 일생을 헌신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둔 소망을 끝까지 붙잡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에게 소망을 둘 뿐만 아니라, 그분이 하신 일을 자랑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인이요, 하나님의 집으로서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소망은 우리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랑거리가 되고, 전도의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그 예수님을 자랑하는 일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와 소망이 내 안에서 넘쳐
나서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자 아우구스티누스가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천국 문에 이르자 문지기가 “당신은 누구요?”라고 묻습니다. “저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문지기가 말합니다. “내가 보니 당신은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오. 당신 머릿속에는 예수님의 말씀은 별로 없고 온통 철학자의 지식으로 가득 차 있소.
당신은 철학자일지는 모르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아니오.”
깜짝 놀라 꿈에서 깬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이후로 굳게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렇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다. 이제는 예수 믿는
사람답게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만 생각하리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삶이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면 내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생각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의 것을 깊이 생각할 때에 염려와 걱정이 많아집니다. 나를 서운하게 한 사람을 깊이 생각하게
되면 미움이 많아집니다. 세상의 물건을 생각하면 탐심이 생깁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에, 참 소망이 생기며,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다른 그 어떤 생각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시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에서,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이루시고자 하셨던 삶을 재현하고 드러내는, 예수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우리 교회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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