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9/2017 - 부족함없네 [시편 23:1-6]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다윗의 고백 “부족함
없네”라는 제목을 가지고 감사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게 있어서 감사는 중요한 덕목입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에게 절기를 정해 주시고 시시때때로 감사의 제단을 쌓게 하셨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사도바울도, “모든
일에 감사하라(살전 5:18)”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탈무드에서 감사에 대해서 이렇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만일 다리를
한 쪽만 잘렸으면 하나님께 두 다리가 다 잘리지 않은 것을 감사하라. 만일 두 다리가 잘렸으면 하나님께
목이 부러지지 않은 것을 감사하라. 만일 목이 부러져 버렸으면 그 뒤는 걱정할 일이 없음을 감사하라.”
감사는 조건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서 가져야 할 필수적인
자세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감사하면서 살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 감사하자” 라고
목소리를 가장 많이 내고 있는 성경은 시편입니다. 그리고 시편의 많은 부분이 다윗의 글입니다. 다윗은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감사할 만한 일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누구보다도 감사할 수 없는 경험들을 했습니다. 거짓으로
모함도 당하고, 배신도 많이 당했습니다. 그리고 죽을 고비도
수 없이 넘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감사할 수 있는, 자신의 삶을 만족케 하시는 분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이신 것만으로도 자신은 부족함이 없고,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먹고 입을 것을 많아서 부족함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하는 일이 자기의 뜻대로 잘 되서 부족함이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가진 것 없고, 되는 일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되신 것만으로도, 그 하나님 한분만으로 부족함이 없다고 만족했습니다. 그러니까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며, 시로 노래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 땅에 영원하지 못할 가변적인 것을 소유하지 못해서 불안해 하거나
불만하며 살기보다는,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을 모셨기에, 하나님
한 분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던 삶을 살았습니다. 진정한 감사의 근원을 찾은 것입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다윗과 같이 하나님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다윗이 가진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통해서, 우리의
감사가 무엇에 근거해야 할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심을 믿기에 만족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인도하시는 목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만큼 목자의
심정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을 없을 것입니다. 다윗은 어릴 때부터 양을 치던 목자였고, 다윗의 주된 관심은 자신의 양들을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목자된 하나님의 관심과 마음을 잘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역시 사람들의
목자가 되셔서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와 같은 곳으로 인도하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3절에 보면 그 인도하시는 길이 무엇인지 나와 있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그 어떤 관심보다,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 관심했습니다. 육신적인 편안과 부유함 보다는 영적으로 제대로 살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리고
목자되신 하나님이 그 소원의 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영혼에 관심하시고, 푸른 풀을 먹이시고, 물을 먹이실 분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 만족했습니다.
영적인 삶에 관심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족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육적인 만족과 세상적인 성공만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하나님으로 만족할 수 없고, 그분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양들인 저와 여러분들이 영적인 삶에 관심하며, 주님의 공급하심을
기대하고 따라 오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이 소생케 되기를 원하십니다.
히브리어로 “소생시키다.”는 ‘슈브 Shub’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 뜻은 “돌아가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에, 우리의 영혼이 다시 살게 됩니다. 목자와 가까이 있는 양이 좋은 꼴을 먹는 법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성도가 영혼이 소생케 되는 법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살고자 할 때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삶의 목적이,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내가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다윗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의의 길로 걸어갔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자신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삽니다. 그렇다면 결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엉뚱한 길로 가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서 의의 길을 걷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의로워지는 비결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일을 하고, 사업을 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유도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삶을 살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다윗과 동일한 하나님을 믿지만, 우리의 관심이 육신을 향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나의 이름을 위하여서 살아가고자 할 때에
하나님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불평이 생깁니다. 목자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나의 영혼에 관심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의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2. 또한 다윗이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족함 없이 보호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자신을 보호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가기 위해서, 목자는 양떼를 데리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기도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다윗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양들은 골짜기의 어둠 침침한 곳에서 사망의 기운을 느끼며 불안해
하지만, 도리어 그 때가 목자가 양들에게 바짝 붙어서 더욱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양들은 무서움에 목자를 떠나서 도망가지만, 가장 안전한
곳은 목자와 함께 하는 것임을 다윗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해함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존경 받는 랍비 중에 아키바(Akiva)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날, 아키바가 여행을 하게 됐습니다. 그는 여행에 필요한 장비와 함께 랜턴과 닭과 당나귀를 가지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날이 저물어 한 마을에 들어가서 묵을 곳을 찾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맞아 들이지 않았습니다. 아키바는 할 수 없이 마을과 좀 떨어져 있는 들판에다 천막을 쳤습니다. 그리고 책을 좀 읽으려고 램프를 켜 놓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서 불이 꺼졌습니다. 할 수 없이 그는 일찍 잠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일어나 보니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밤
사이에 닭은 고양이에게 잡혀 먹혀서 털만 남겨 놓았고, 당나귀도 맹수의 울음소리에 놀라 도망가고 없었습니다. 아키바는 찹착한 마음으로 짐을 정리하고, 지난 밤에 묵기 위해서
들어갔던 마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은 하룻밤 사이에 폐허가 되어 버렸습니다. 전날 밤에 도적들이 그 마을을 습격해서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노략해 갔던 것입니다. 그 때 아키바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깨닫고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등불이 꺼지지 않고 켜져 있거나, 닭이나 당나귀가 소리를 내게 되면,
자신이 있는 곳이 발견되어 자신도 똑같이 되었겠구나 라는 깨달음이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가운데서도 램프가 꺼지는 것과 같은 암담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시간을
알려줄 닭이 죽고, 내 짐을 지고 갈 당나귀가 도망가는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하는 일마다 꼬이고,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그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은 나를
초장과 물가로 인도하시고, 나와 더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더욱 가까이 하심을 믿고 만족하며 감사했습니다.
더군다나 다윗은 하나님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함께 해 주실 뿐만 아니라, 원수의 눈 앞에서 상을 베푸시고, 또한 머리에 기름을 부으셔서 높여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다윗에게는 그를 해하려고 하는 많은 원수들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왕으로 세움받는데
방해하고, 왕이 되어서도 다윗을 해하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원수들이 다윗을 해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도리어 왕으로 기름부으셨고, 그들 위에 높이셨습니다.
다윗이 말하는 원수는 단순히 나를 괴롭히고, 어려움을 주는 존재가 아닙니다.
히브리어로 “원수”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차라르’이고, ‘묶다,
속박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진정한 원수는, 나로 하여금 목자되신 하나님을 따라가지 못하게 묶는 존재입니다. 내 원수는 영혼의 웰빙을 위해서 살아가지 못하도록, 내 관심을 세상에
묶어 두고 육신을 위해 살아가도록 만드는 존재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데, 내 이름을 위해서 살아가라고 불의한 길로 나를 묶는 존재가 원수입니다. 그래서
목자되신 하나님을 따라가지 못하도록 하는 자가 진정한 원수입니다. 목자되신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들이 우리의 원수가 됩니다.
그러기에 어떨 때는 내 자신이 내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목자되신 하나님을 따라가지
못하도록 내 스스로가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이러한 원수를 시시때때로 만났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주변의 상황과 사람들이
어렵게 한다고 할지라도, 목자되신 하나님만을 따랐고, 그
원수들 앞에서 존귀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목자되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에, 목자를 따라가기 힘든 음침한 골짜기와
원수들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를 믿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다윗이 하나님께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목자의 집’에
거할 것을 믿었기 떄문입니다.
다윗은 목자를 따라서,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원수의 공격과 유혹을 지나서,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서 살다가 보면 도착하게 될 곳을 알았습니다. 6절에 나와 있는 것과 같이 “여호와의 집”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목자의
집’인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셔서, 그곳에서 영원히 함께 살고자 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양이 목자의 집에 이르고, 거하게 되는 것도, 양의 능력과 공로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양들과 같은 사람들은
스스로 목자의 집인, 하나님이 계시는 집까지 찾아갈 만한 지혜와 능력이 없습니다. 사람은 양같아서 무지하고 연약해서 스스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 가서 거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근거합니다. 비록 저와 여러분이 어리석고 죄가 많지만, 선하신 목자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당신의 집으로 우리를
이끄시고자 하는 선하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자하심을 가지고 있으십니다.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잠깐이 아니라, 평생을 통해서 함께
하실 것을 믿고 만족하며 감사해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무지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신다고 하니 목자를 따라가면서 다윗은 부족함이 없음을 고백하며, 만족하고 감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우리의 감사의 충분함이 되시는 분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마이애미 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마이클 맥클로우'는 감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잠깐 멈춰서서
우리에게 주어진 감사함을 생각해 보는 순간, 당신의 감정시스템은 이미 두려움에서 탈출해 아주 좋은 상태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감사를 통해서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가와 싸워 승리했을 때와 유사한 감정을 가지게 한다.” 고
말합니다. 두려움을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비결이 감사에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우리의 삶을 회복시키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인은 이러한 감사의 내용을 다윗과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찾는
사람들입니다.
다윗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윗의 감사와 찬양은, 하나님이 자신의 목자가 되신다는 만족함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다른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나를 ‘여호와의 집’으로 이끄시는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삼고 만족하며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통해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최고의 만족과 감사가 이미 여호와를 통해서 확보되고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인한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목자이신 하나님때문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목전에
있는 원수에 대해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을 통해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의 만족은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되심으로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다윗의 고백이 있기를 원합니다.
“주는 내 목자십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두고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같은 고백이 있는 매일의 감사가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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