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8/2018 - 기도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마가복음 9:14-29]
막9:14-29, “기도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지난 주일 말씀에, 우리는 높은 산에 제자들과 함께 오르신 예수님께서
빛의 모습으로 변하신 것과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영광된 모습을 보여 주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베드로는 황홀하여서 그곳에 천막을 짓고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좋다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끄시고
산에서 내려 오십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향해서 나아가십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산 위에 있을 때에 산 밑에서 일어났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산 위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된 모습이었다면, 산 밑에서는 귀신들린 사람으로 인해서 소란해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산밑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지금 우리가 살고 이 세상과 이 때를 조명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믿음의 태도는 무엇인지 함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먼저, 산 밑의 모습을 보면, 귀신, 악한 영이 역사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 오셔서 나머지 제자들이 있는 곳에 와 보시니 아주
소란했습니다. 큰 무리가 제자들을 둘러싸 있었고, 서기관들이 제자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리 중에서 한 남자가 예수님께 나오더니 왜 이러한 소란이 있게 되었는지
말합니다. 자신의 아들이 귀신에 잡혔는데, 귀신이 어디서든지 자신의 아들을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파리해진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아이가 어릴 때부터 이러한 일들을 당했는데, 귀신은 아이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다는 것입니다. 귀신에 사로잡힌 아들도 괴롭겠지만, 이를 어릴 때부터 지켜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더욱 아프고 절망 적이었을 것입니다. 귀신에게 사로
잡혀서, 물로 뛰어 들고, 불로 뛰어드는 아들을 보면서 그 아이를 귀신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이지만
귀신들린 아들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산위에서의 사건과 대조를 이룹니다. 높은 산 위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있었지만, 이제 산 밑의 세상에서는 악한 귀신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럽고 악한 귀신이 사람을 사로 잡아서, 자신의 숙주로 삼아서, 사람을 괴롭히고 상하게 하고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세상이 더욱 미쳐 간다는 말씀들을 하십니다. 이런 일이 사순절이 시작되는 지난 재의 수요일에 또 일어났습니다. 미국 플로리다 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그 학교를 갓 졸업한 19세의 한 남자가 반자동 소총을 가지고와 학생들을 향해서 마구 쏘아 댄 것입니다. 이제 곧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학생들은 뜻하지 않은 총격으로 인해서 비명을 지르며 몸을 숨기기도 하고, 도망을
가야만 했습니다. 평화스러워야 할 평범한 학교가, 총을 든 한 사람으로
인해서 소란과 공포로 바뀐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17명이 총에
맞아 숨지고, 십여명의 사람들이 다쳤습니다. 총기난사범인 니콜라스 크루즈는
경찰조사에서 “나는 악령의 지시를 들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온전한 정신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이 땅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이 세상이 악한 영에게 사로 잡힐 때 일어납니다. 귀신들린 아들의 아버지가 말하기를,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이라고 말합니다.
귀신이 그의 아들을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사로 잡아서 물과 불로 던져 그를 상하게 했던 것입니다. 에베소서 2:2절,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역사하는 영이 있는데, 그것이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사탄을 말합니다.
이 악한 사탄을 추종하는 악한 영의 무리들이 있습니다. 귀신들도 그 무리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에 사로 잡혀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땅에는 악한 영이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을 사로 잡아서 하나님과 대적하게
하고, 물과 불로 뛰어들게 만듭니다. 이 사회가 악한 영에게 사로 잡히게 되면, 이 세상에 더욱 악의 역사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사람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악한 영의 권세는 사람의 능력보다 강하시 때문입니다.
귀신들린 아들의 아버지가 예수님을 뵙기 전에 귀신들린 아들을 구하려고 많은
수고를 했을 것입니다. 용하다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아이를 구하려고 했지만 어느 누구도 아들을 귀신으로부터 해방시키지 못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까지 와서 귀신을 쫓아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제자들도 그 아들을 귀신으로부터 구해 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사회가 악한 영의 역사를 해결해 보려고 많은 노력을 합니다. 사람들을 교육하고, 법을 강화시키기도 하고, 악과 맞설
강한 조직을 만들지만 그러한 것들이 소용이 없습니다. 2. 그런데 이 땅에서 악한 영의 권세를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한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악한 영들은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20절에 보면, 귀신이 예수를 보고서,
곧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아이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립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제어할 능력이 있음을 알고 아이에게로 들어가 더욱 극성을 부립니다. 악한 영의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알기에, 도리어 주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들을 대적하고, 사람으로 실족하여 넘어지게 만듭니다.
예수님의 일을 방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확실하게 알기 때문에,
마치 자신의 권세가 예수님보다 더 강한 것처럼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악한 영은 아는데, 사람은 이를 알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거품을 물고 있는 아들을 보면서 놀라서, 예수님께 더욱 간절히 간구합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귀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분인것을 알고 두려워하지만, 정작 이 아버지는 예수님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분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을 들으시고 책망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라고 하십니다.
그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 아이를 사로 잡고 있는 귀신을 쫓아내 주실 분이라는 믿음입니다. 아버지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지 않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서 볼 때에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 동안 아들을 고치기
위해서 의사를 찾아봤을 것이고, 무당을 찾아가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제
제자들에게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들을 잡고 있는 그 아들을 쫓아낸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아들이 귀신으로부터 놓임받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그래서 예수님께 간구를 해 보지만, 예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믿음의 확신은
없었습니다. 자신보다 어려보이는 33세의 젊은 청년을 뭘로 보고 그
믿음이 생기겠습니까? 그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번번히 실패하였고,
더욱 상처와 절망을 경험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아버지에게 도전을 주십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고 하십니다. 그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예수님의 꾸지람을 들을 때에 소리를 지르며 예수님께 간구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라고 말합니다. 그 아버지가 그 아들을 낫게 하기 위해서 예수가 그 아이를 낫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자신도 답답할 노릇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고 자신의 믿음없는 것까지도 고백하며
처철히 예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아들을 고쳐줄 수 있는 믿음이 자신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왜 그 믿음이 없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가 어떠한 분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볼 때
33세의 노총각 이상의 존재로는 안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믿을 만한 분인지
믿음이 가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아들을 사로 잡은 귀신의 권세가 더욱 강해 보였습니다. 때로 제자들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알지 못해서, 예수님이 하신 기적적인 일들에 놀라곤 했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가 배를 타시고 갈릴리호수를 지날 때에 풍랑을 큰 물결을 만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고, 이에 바다가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이 모습을 보면서 기이히 여겨 말합니다.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라고
말합니다. 그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니고, 같은 배에 타고 있던 제자들도 예수님이 어떠한 분인지 제대로 몰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확실히 알고 믿게 되면, 바다를 잠잠케 하는 일이 기이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알면, 귀신들린 아들로부터 귀신을 쫓아내주시는 것이 기이한 일이 아니라 아주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그 아버지에게 믿음이 없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분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귀신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고 두려워서 떨고 있는데, 정작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여서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귀신이 두려워 떠는 예수님은 어껀 분이십니까? 보기에 인생의 경험이 부족한 젊은 총각이 아니라,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요,
우리를 구원하신 구세주이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산 위에서 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임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주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요.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의 삶을 주장하시는 절대적인 주권자이신 줄로 믿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 내 주실 뿐만 아니라, 그 보다 더 한 것도 하실 수 있는 것임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3. 그 아버지가 자신도 안타까운 마음에 “내
믿음없는 것을 도와 주시옵소서” 라고 간구합니다. 애절한 간구입니다. 믿고 싶은데 그 믿음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그가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그 아들의 몸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그 말과 함께 귀신은 아이에게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그 아이에게서 나갑니다. 예수님은 그 귀신을 쫓아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그 아이에게로 나와서 다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동안 귀신은 자신의 마음대로 그 아이의 몸을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했는데, 이제 다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아이의 방패가 되어주셔서,
악한 귀신으로부터 그 아이를 보호하셨던 것입니다. 과거에는 악한 귀신에게 사로 잡혀서
살았지만, 이제는 주님께서 그 아이를 붙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더러운
귀신에게 붙들려서 죽음의 공포속에서 살던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께 붙들려서 보호함과 평안을 누리는 인생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가 우리의 삶이 이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영이 아니라, 주님께 붙들려 보호하심을 받고 인도하심을 받는 인생되시길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예수님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아이의 아버지에게
알려 주셨고, 그 믿음을 도와 주셨습니다. 4. 그런데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또한 그 능력을 행하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그곳에 있는 무리들 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궁금한 질문이 생겼습니다.
왜 자신들은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는지를 묻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기도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이런 종류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가? 사람을 사로 잡고 역사하는 악한 영의 권세들을 물리치는 능력, 사람을 사로 잡아 물로 빠뜨리고
불로 던지는 악한 영의 권세를 제어하고 쫓아내는 능력은 기도외에 다른 것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실, 오늘 말씀에 제자들이 아이에게 들어간 귀신을
쫓아내는데 실패했지만, 전에 귀신을 제어했던 경험들이 제자들에게는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열두제자들을 부르사 둘씩 짝지어서 복음을 전하도록 보내시면서,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쳤습니다.
그 때에 그들이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고쳤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권능을 주셨기 깨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은 기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던 그 능력을 제자들에게 주시고
이를 행해지기를 원하십니다. 무엇보다도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근거로 합니다. 23절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
고 하셨습니다. 이는 자신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다고 스스로 믿는 자기 암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도록 하시는 전능하신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전능하신 분임을 믿고, 자신의 모든 것들을 주장하고 계심을 믿기 때문에,
예수님께 기도로 간구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없는 사람은 예수님을 찾거나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 대신 내가 믿는 사람들을 찾아가게 마련입니다. 내가 믿는 방법을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예수님께 와서 기도하며 간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주신 권세를 가지고, 주님의 하시고자 하시는 일들을 감당하는 삶을 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기도는, 내가 주님을 살아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구세주임을 믿는 믿음을 보여 드리는 증거가 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과 함께 변화산에서 내려와서 가장 먼저 본 것은, 귀신들린 아이로 인해서 소란해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악한 영의 권세가 어려서부터 아이를 붙잡고서 해를 입히고 있었고, 그로 인해서 그 아버지 또한 고통속에 있었습니다. 악한 영의 권세속에 있는 세상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이 땅에 온갖 악한 영의 역사들이 만연합니다. 사람들 안에 들어가 사로 잡고, 물과 불로 뛰어 들어가 그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가정과 학교와 직장, 사회에 만연해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이를 해결해 보려고 하지만, 악한 영의 권세를 이길 지혜와 권세가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종류들의 일들을 믿음의
기도를 통해서 감당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12-13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고, 그 이름으로 구할 때에,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 일을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는 악한 영의 권세를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을
너무 잘 아십니다. 그래서 믿음의 기도를 통해서, 악한 영과 그 역사를 몰아낼 수 있는 기도의 능력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이 땅가운데 일어나는 악한 영의 역사들을 바라보면서, 상처받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기도의 자리로 이끕니다. 그리고 기도의 자리로 나오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그 믿음을 더하여 주십니다. 믿음이 약하던,
강하던지 기도의 자리로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사순절 기간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더욱 믿어지는 믿음의 성장이 있으시길 바라고, 그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심으로, 악한 영의 권세를 물리치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는 능력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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