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6/2018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알아야 할 일 [로마서 8:28]
지난 여름에
코스타리카에 단기선교를 갔을 때에 놀랐던 것 중에 하나가, 그곳에 있는 청소년들이 한국의 ‘방탄소년단’을 안다는 것입니다.
‘방탄 소년단’ 은 한국의 K-POP 아이들
그룹입니다. 중미의 작은 나라 코스타리카에서도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팬들이 있고, 패이스북에서도 그 팬들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대상을 사랑하게 되면 혼자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모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모임의 이름을 지을 때에 “무엇을 사랑하는 모임” 이라고
이름을 많이 짓습니다. 만약 강아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면,
“강아지를 사랑하는 모임”이라고 짓고, 강사모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이름을 짓다보니 이상한 이름의 모임도 있습니다. ‘버사모’라고 하는 모임이 있길래 무엇인가하고 보니까, ‘버섯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습니다. 그러한 모임들의 활동을 보면, 자신들이 사랑하는 대상을 돕거나 응원하기도 하고, 또한 같은 취미를
사랑한다고 하면 함께 모여서 그 취미를 즐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사도바울은 로마교인들을 향하여서 말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줄임말로 하면 ‘하사모’정도가 되겠네요. 그러니
로마교인들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을 ‘하사모’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곳에 온 이유도, 다른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온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즐기러 갔습니다. 고기잡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낚시대를 들고 바다로 갔을 것입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미 운동장에 가
있으실 것입니다. 아무리 할일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곳에 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적어도 다른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예배에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로마교인들을 향해서 “너희가 알거니와”라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로서 알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사도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지금 이 시간, 이곳에 모여 있는 이유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슨 뜻이 있으셔서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때로 사람들은 내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내가
스스로 왔다고 말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었다면 이곳에 올 수 없고, 하나님께 예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에, 주보에 나온 예배 순서를 보면, ‘예배로 부르심’이라는 순서가 있습니다. ‘예배로 부르심’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배로 부르셨다는 뜻이고, 이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배자로 부르셨다는 믿음의 고백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 뜻하심이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늘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교회로 부르셨음을 믿는 사람은, 이 교회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그 뜻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각 가정의 부모로, 자녀로 부르셨음을 믿는 자들은, 나로 어떠한 일을 하시고자 하시는지
그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이나 장소에 있던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무슨
뜻이 있으셔서 이 상황이나 장소로 이끄셨는지를 관심하며 그 뜻을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있는 어떤 사람도 우연히 부르시거나 실수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하신 바가 있기 때문에 우리를 이곳에 부르셨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늘 하나님의 부르심의
뜻에 관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부르신 뜻이 구체적으로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그 부르심의 뜻이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을 부르신 것은 이 땅에 선을 이루어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교회안에 있는 이들은 무엇보다
선한 일들을 하기 위해서 관심하며 애를 쓰시는 분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서로 주장하는 것이
맞지 않아서 갈등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상대방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마다 선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선’을 의미하는 헬라어의 ‘아가토스’ ‘기쁜, 기분 좋은’이라는뜻에서
왔습니다. 이 말은 선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생각할
때에 좋다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곧 내가 옳다고 여겨지는 것이 선이라는 것입니다. 한 아버지가
잘못을 한 아이를 훈계하기 위해 매로 때릴 때에도 사람의 선의 기준은 다릅니다. 어떤 분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너는 맞아도 싸! 그래야 다시는 그런 짓을 안하지”하면서 아버지를 두둔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분들은 “아이가 잘못했으면 말로 알아듣게 타이르면 되지 때리기는 왜 때려” 하며
아버지를 나무라는 분들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선의 판단기준이 다릅니다. 그러기에 선을 이루기 위해서 모였지만 때로는 갈등과 분열을 경험하기 십상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모두 다 선을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을 이루기 위해서 먼저
전제해야 할 것은, 그 선의 기준이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이 무엇인가를 간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마가복음 10장에 보면,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달려와 그 앞에 꿇어 앉고서 묻습니다. “선한 생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영생얻는 방법을 알려주시기 전에, 그 사람의 말 중에 한가지 잘못된 부분을 고쳐 주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굳이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고 일컫어지는 것을
사양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신이십니다. 아버지도
선하고, 아들도 선할 수가 있는데, 그런데 예수님은 굳이
아버지만이 선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선하다고 말한들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선하심을 거부하고, 하나님 한분만이 선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곧 이 말씀은 선의 유일한
기준은 하나님께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곧 하나님이 좋게 여기셔서 하시는 것이 유일한 선임을 말씀합니다. 성부 하님과
성자 하나님 사이에도 서로 원하는 것이 달랐던 때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아버지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으십니까? 그러니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십시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십자가에서 고통받고 죽는 것은 예수님께서 원치 아니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것이 어찌 선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그 선함의 근거를 자신에게 두지 않고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자신의 죽음이 선하다는 것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예수님조차도
자신의 선하심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죄인인 사람들이, 다른
이들보다 선하고 의롭다고 주장하면서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의 죄의 성품 중에서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을 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먹지만 동산 중앙에 있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열매는 먹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뱀에게 속임을 당해서
그 선악과 나무를 먹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먹은 후에 그들은 자신들의 벗은 모습을 보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을 찾으실 때에 하나님을 피해서 동산 나무사이에
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숨었냐고 아담에게 물으실 때에 아담이 말하기를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라고 반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아담과 하와가 벗은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보시기에 선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고서는 옷을 벗은 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피할 만큼 안 좋은 것이라고 여기게
된 것입니다. 아직도 아마존 정글같은 곳에는 옷을 입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아담의 말을 들었다면 당연히
억울하다고 항의 할 것입니다. 아담의 문제는
옷을 입고 벗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죄의 문제인 것입니다. 사람의 죄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를 분별하지 못하도록 혼돈시켜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내가 선하다고, 악하다고
생각하는 그 기준을 나의 몫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선과 악의 기준을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좋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구하며, 그 뜻대로 살아갈 때에 그것이 선을 이루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열왕기서나
역대기서에 보면, 이스라엘의 여러 왕들이 나오는데, 그 왕들이
죽은 이후에 그 왕이 선한 왕인지, 악한 왕인지에 대한 평가가 나옵니다. 그런데 선한 왕의 기준이,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백성들을 잘살게 했다고 선한 왕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볼 때에 나라를
강하고 부하게 여겨서 정말 선한 왕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데, 성경에서는 하나님께 불순종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 왕에 대해서는 하나님보시기에 악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왕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였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우리를 착하다 잘한다고 생각할지라도 정말로 중요한 것은, 선과 악의 기준이신을 판별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 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의 판단과 행동을 가지고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우리가 신경써야
할 시선은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실는지를 살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지금의 나의 모습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면 그것만으로 우리의 부르심의 뜻을 잘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실 만한 뜻을 따라서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늘 관심하고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3.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셔서 선을 만들어 가심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면서 거의 실족했던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은 아삽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아삽은 다윗왕 시대에 성막에서 찬양을 담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아삽이 실족할 뻔했던 것은, 찬양준비가 잘 안되고 힘들었거나, 악기가 마음에 안들어서 실족할 뻔한 것이 아닙니다. 시편 73:1-2절에 아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라고
말합니다. 아삽이 실족할
뻔한 이유가 3절부터 나옵니다.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라고 합니다. 아삽은 악하고
오만한 사람 사람이 잘되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교만하고 강포한 사람들이라면
벌을 받아 못 살아야 하는데, 그와는 반대로 건강하고, 고난도
없고, 재앙도 없이 잘 지내다가 죽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서 실족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때에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하시고, 하나님의 선한 일들을 이루어가고 계신다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캔사스에
있는 부활연합감리교회 (Resurrection UMC)가 교회를 건축하면서 본당 정면에 거대한 스탠인드
글라드를 설치하고, 2017년 4월에 봉헌예배를 드렸습니다. 스테인드 글라스는 가로 100피트(30미터), 세로 40피드(12미터)의 거대한 크기로, 161개의 스테인드 글라스 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각 스테인드 글라스 판을 하나씩 보면 그것이 무슨 그림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스테인드 글라스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그 161개의 판들을
제대로 나열을 하고, 그 그림을 가까이에서가 아니라 멀리서서 보았을 때입니다. 그럴 때에 스테인드 글라스에 그려진, 두팔을 벌리시고 가운데 서
계신 예수님과 양쪽에 가득 매운 성경의 인물과 기독교 역사의 신앙의 지도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서 만들어가시는 일들은 때로 선해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떨 때는 칙칙한 검정색
스테인드 글래스를 들고 우울해 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상한 모양의 스태인드 글라스를 들고서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불안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모든 것들을
합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들을 이루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큰 그림, 선하신 계획을 알기에는 너무 무지한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어떠한 순간을 지나간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가져야 될 것은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전적인 신뢰인 것입니다. 아삽이 비록
하나님으로 인해서 실족할 뻔했지만, 그 이후에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 73:22-23,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아삽은 하나님의
뜻을 다 알지 못하여서 실족할 뻔했는데, 그래도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아삽은 실족할 만한 상태에서도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았습니다.
아삽은 실족할 만한 위기 때에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항상 주와 함께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며, 항상 하나님과 함께 했습니다. 아삽이 실족할
만한 상황에서도 항상 하나님과 동행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손을 붙드셔서 실족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때로 우리의
신앙생활에 실족할 만한 일들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선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 어려움을 당합니다. 내가 바라는 학교나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정의 형편이 좋지 못하고, 건강이 좋지 못하고, 여러가지 어려운 일들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에 아삽과 같이 더욱 주와 함께 하시는 시간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신 일들을 이루어가시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관심해야 할 것은, 우리를 왜 부르셨는지, 하나님의 부르신 뜻에 관심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뜻이 있으셔서 이곳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연이 여기 있는 분도 없고, 실수로 여기있는 분도 없고, 모두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뜻을 늘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뜻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것은, 내가 선의 기준이 되어서 판단하고 행동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선하다는 것을 거부하시고,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만을
선하다고 하였습니다. 선의 기준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유일한 선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이루어야 할 선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좋아하시는 뜻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때로는 우리에게 고통과 어려움을 가져 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선한 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보기에 악하다고 생각하는 것까지도 합력하여서 선을 이루어가시는 분인 줄로 믿습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음을 깨닫고, 우리가 좋게 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뜻을 온전히 이루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들임을 하나님께 날마다 보여드리는 성도의 삶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도의 삶속에도 아삽이 보았던 일들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합니다. 지금도 이 세상에는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여러가지
폭력속에서 아파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건강에 문제가 있는 분들도 계시고, 가정에 문제가 있는 분들도 있으십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정말
선하신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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