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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절은 청교도(Puritan)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16세기에 영국이 종교개혁을 하면서 카톨릭교회와는 다른  ‘잉글랜드 성공회(Church of England)”를 세우고 국교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영국 성공회 안에 아직도 카톨릭적이 요소가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카톨릭의 복장이나 예배 의식 등이 성공회안에서도 지속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본 영국의 청교도들은, 영국의 종교개혁이 불완전하다며, 복음적인 신앙을 지키기 위해 1620년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 매사추세츠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심한 추위의 겨울을 지내고, 그 다음해에 원주민의 도움을 받아 농사를 지어 가을에 곡식을 거두게 됩니다. 청교도들은 그 첫 수확물을 거두고, 야생 칠면조를 잡아 하나님께 감사하며 인디안들과 함께 축제를 벌였는데, 그것이 최초의 추수감사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칠면조를 추수감사절에 먹는 것도 이 때부터 내려온 풍습입니다. 추수감사절은 단순히 풍성한 곡식을 주신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도록 해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 추수를 한 후에 감사하는 것은 구약에 율법으로 정해진 의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감사절기를 지키도록 하셧습니다. ‘수장절이라고 하는 것을 정해 놓으셔서, 일년 추수한 것을 곡간에 들이면서, 하나님께 일주일간 감사하며 제사를 드리고, 축제를 벌리도록 하셨습니다.

추수를 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그 곡식을 거둬들일 수 있는 것이 자신들의 능력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믿음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추수감사주일 예배를 드릴 때에, 농사를 지어 수확물을 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지난 한 해 동안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감사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성도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도범사에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 감사하기는 정말 힘듭니다. 내가 원하는 것들이 이루어질 때에는 하나님께 감사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기가 힘이 듭니다.

몸도 건강하고, 돈도 잘 벌고, 자녀들이 공부도 잘하고 하면 저절로 감사하게 됩니다. 그런데 몸도아프고, 사업도 안돼고, 거기에 아이들도 공부도 못하고 말썽만 피운다면 그것으로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은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사도바울 또한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비결을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모든 일에 자족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삶과 자족하는 삶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여기서자족이라고 쓰는아우탈게스라는 뜻에는외부환경과는 별개로 만족한다.”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는지 상관없이 만족하는 것이 자족이고, 이것이 감사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우리에게 처해진 삶에 자족하며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자족하는 삶을 배워야 합니다.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도 배우게 되고, 직장 생활을 위해 기술을 배웁니다. 요즘 스마트폰이 일반화 되면서, 연세드신 분들도 스마트폰을 배우기 위해서 애쓰시는 모습을 봅니다.

그런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자족하기를 배워야 합니다.저절로 나이든다고 배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에 만족할 수 있는 삶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환경에 따라 감사하기도 하고, 원망하는 삶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자족함을 배우지 못하게 되면, 우리의 삶은 환경에 따라 부정적이고 원망에 얽매인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잠언 30장은 아굴이라고 하는 사람이 쓴 글입니다. 그런데 30:8절에 보면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두가지가 나옵니다.

하나는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라고 간구합니다.

왜냐하면, 부자가 되면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거 같고, 반대로 가난하면 도적질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봐 두려워서입니다. 가난하던지, 부하던지 하나님을 잘 믿고 살아야 하는데, 너무 가난하거나 부하게 되면,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할 것에 대해서 아굴은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환경에 지배를 받게 되면 자족하지 못하게 되고, 당연히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족의 비결을 배웠는데, 배부르고, 풍부에서도 자족할 수 있고, 비천하고, 배고프고 궁핍한 가운데서도 자족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가난하고 배 고플 때만 자족하는 것을 배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풍부하고 배부르면 자족하며 감사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이 잘 살고 배부르기 시작하면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잘살기를 바라고, 더 많있는 것을 원하면서 자신 스스로를 불만족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산다고 모두 만족하며 감사하는 삶을 사냐면 그렇지 못합니다.

나이 지긋한 퀘이커 교도 한 사람이, 누구든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에게는 40 에이커의 농토를 주겠다고 광고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이 퀘이커 교도를 찾아왔습니다. 퀘이커 교도가 그 사람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십니까?” 질문을 받은 사람은 이제 40에이커의 땅을 받을 것을 기대하면서, “예 그렇습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퀘이커 교도가 그에게 다시 묻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왜 내 땅을 원하지요?” 그 사람이 자신이 가진 것에 진심으로 만족하고 있다면, 40에이커의 땅을 가지러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난하고 궁핍한 상황에서도 만족하지 못하지만, 부유할 때에도 자족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많은 것을 가지게 되면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잘되면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겠다고 합니다. 내가 좋은 직장이나 학교에 들어가면 그 때 하나님께 충성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 감사하며 헌신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충성스럽게 살아가지 못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지금 나의 형편이 부하던지, 가난하던지, 좋은 상황이던지, 그렇지 못한 상황이던지 간에, 지금 형편에 자족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 때에 비로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헌신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2. 그리고 자족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만족의 기준이 달라져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자족의 비결에 대해서 말하기를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에 자족하는 비결을 자신에게 능력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 9절에서 바울은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원래 부요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대로 다른 이들을 부요하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가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죽기까지 낮아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높아지고 낮아지고, 부요하고 가난하고자 만족의 근거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가 가난하거나 부해지는 것, 세상적인 성공이나 패배에 두게 되면, 진정한 자족의 삶을 살아갈 수도 없고, 범사에 감사한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목표로 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는 어떤 환경속에서도 자족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내가 못먹고 못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는 것을 내 만족으로 삼는다면,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만족하며 살게되고, 감사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로, 만족의 기준이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자신이 학식이 많은 경건한 바리새인이라는 것에 만족감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로마 시민권자로서 가진 권세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자기 만족의 기준으로 삼았던 세상적인 풍요와 권세를 다 버리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더 이상 세상적인 것을 만족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맡겨주신 사명을 살아가는 것에 만족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배가 고프고, 사람들에게 돌을 맞으면서도 그것이 감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적인 풍요를 만족의 기준으로 삼는 한 우리는 자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내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만족의 근거로 삼을 때에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만족의 근거를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에 둘 때에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자족과 범사에 감사한 삶을 경험케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3. 자족하는 삶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믿을 때에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 또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시편 136편에는여호와께 감사하라.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말이 26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특별히 1절에는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떄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일이 선해보이지 못하고 인자해 보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욥기에 보면, 욥에게 갑작스러운 고통의 일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욥이 집에 있는데 종이 와서 보고를 합니다. 갈대아 사람이 갑자기 약대에게 달려들어 빼앗고 종들을 칼로 죽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한 사람이 와서 말합니다. 욥의 자녀 10명이 맏형의 집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고, 그 지붕이 욥의 자녀들에게 무너져서 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욥의 온 몸에 악창이 나서 기왓장으로 몸을 긁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욥의 아내는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누가 욥의 아내의 반응이 잘못되었다고 감히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을 사람이 몇명이나 되겠습니까?

그 때 욥기 2:10절에 욥이 말합니다.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않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이 복으로 여겨질 때도 있고, 재앙으로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믿을 때에 축복이든 재앙이든 자족함으로 받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분 중에,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시는 분이 있습니다. 몸에 이상을 느끼셔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는데 암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항암 치료를 받고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 이 암도 내가 주었다.”라는 말씀을 주시더랍니다. 그 말씀을 듣고 생각하기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니 다 감사함으로 받아야지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하시던 일을 쉬지 않고, 기도생활은 더욱 열심히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섬길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고 또다시 감사해 합니다.

질병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은혜로 받을 때 감사가 있습니다. 때로 어려움과 고통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믿고 받게 되면, 그것을 통해서 감사가 있고 주님의 귀한 뜻이 이루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은 사도바울과 같이 자족하는 비결을 배울 때에 비로서 가능합니다.

부요함속에서도 더 욕심을 내지 않고 자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난가운데서도 좌절하지 말고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만족의 기준이 달라져야 합니다. 세상적것에 근거한 만족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물질이나 건강, 성공과 같은 것을 우리의 만족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환경에 따라 감사와 불평이 반복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만족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낮아지고 비천해지더라도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면 그렇게 되는 것이 감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이루는 것을 우리의 만족으로 삶을 때에 어떠한 환경에 처하던지 만족하며 감사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불평과 원망이 많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믿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족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잘 이루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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