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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사람들을 택하셔서 사용하셨던 것을 봅니다. 처음에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민족이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이었고,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들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교인들에게당신들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이방인인 골로새교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하나님께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에, 우리 삶의 목적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알지 못할 때에는, 내 자신이 모든 선택의 주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게 된 것도 내 자신이 하나님을 믿기로 선택했고, 교회에 나온 것도 내가 원하는 교회를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목표는 자신이 정하고 하나님은 이를 이뤄주셔야 하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정반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선택의 주체가 하나님께 있는 것이고, 선택받은 성도들은 그 선택하신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소명의식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셨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신 이유에 관심하며, 그 부르심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고 믿는 사람들의 신앙의 자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택하심을 믿는 저와 여러분은,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명에 따라서 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지난 주일에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삶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긍휼과 자비, 겸손과 온유, 오래참음의 옷을 입어야 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것에 이은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로서 거룩과 사랑스러운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잘 입어야 할 뿐만 아니라, 잘 벗어야 하고, 잘 품고, 잘 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삶을 덧입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먼저 입었던 옛 사람의 옷을 벗어야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의 일입니다. 한국에는 각 학교마다 체육복이 있어서 체육시간이 되면 활동하기 편한 체육복으로 갈아입습니다. 그런데 겨울이 되면 체육복으로 갈아입는 것이 꺼려집니다. 제 고향은 철원이라서 날씨도 추운데 따뜻한 평상복을 벗고 얇은 운동복으로 갈아입는 것이 싫기도 하고 귀찮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에 어떤 친구는 원래 입고 있던 옷을 벗지 않고, 그 위에다가 체육복을 그냥 입기도 합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 티가 납니다. 옷 맵시도 투박할 뿐만 아니라, 움직임도 둔해 보입니다. 선생님에게 그 모습을 걸리게 되면 매로 맞기가 일수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던 아이들은 또 그렇게 하곤 합니다.

누군든지 새로운 옷을 입기 위해서는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벗어야 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는 교인들 중에는 과거의 옷을 벗지도 않고, 그 위에 예수 그리스도를 덧입으려고 하는 모습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골로새서 3:9절에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옛 사람의 모습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 옛사람을 벗어 버리지 못하니, 아무리 새사람의 옷을 입으려고 해도 도리어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것입니다.

8절에 보면, 그 벗어 버려야 할 옛사람의 모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다른 사람에 대해 분노하고 악의를 가지고 비방하는 모습에 사로 잡혀 살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택함받은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는 더 이상 옛사람의 모습을 입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분노에 사로 잡혀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온유함으로 행할 수 있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악한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비방하며 살았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같은 상황속에서도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자비를 행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것입니다. 때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옛사람의 모습에 여전히 사로 잡혀서, 예수 그리스도로 덧입는 것을 힘들어 하는 우리의 모습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날마다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로 덧입기 위해서 힘쓰는 것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의 모습인 줄로 믿습니다.

 

2. 이제 두번째로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는, 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이라고 말하면서, 교인들 사이에 불만의 상황이 있을 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간의 관계가 항상 만족할 만한 상태였으면 좋겠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죽도록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 사이에도 서로에게 불만스러운 때가 옵니다. 갱년기를 경험하시는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그 순간에는 모든 것이 짜증나고 감정조절이 안된다고 합니다. 남편의 목소리를 들어도 짜증나고 심지어 현관에 벗어 놓은 남편의 신발을 봐도 화가 나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부부 사이에도 이러한 불만의 순간들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불만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2016년에 미시간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윌리엄 초픽 (William Chopik) 박사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초픽박사는 1981쌍의 중년 남녀 커플을 관찰하면서, 행복감과 건강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연구했던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행복한 파트너와 살면 건강해질 확률이 많지만, 불만이 많은 배우자와 살게 되면 그 만큼 건강에도 해로워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로 초픽 박사는 다음과 같이 3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불만 속에 사는 사람들의 주된 관심은 자신이 경험하는 스트레스에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신경써 주고 돌봐줄 생각을 못한 답니다. 반면에 행복감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을 잘 돌보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자신의 배우자의 건강에도 관심을 가지고 돌보기 때문에 더욱 건강해 진다는 것입니다.

둘째, 쉽게 우울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수면 패턴이 불규칙하고 기운이 없는데 반해, 행복감을 가지는 사람들은 제시간에 숙면하고 운동도 많이 하기 때문에 자신과 배우자의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삶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서 술과 담배와 같은 것을 의존하다가 건강을 해치기 십상인데, 행복감을 가지는 사람은 그러한 것을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건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살다가 보면 좋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불만이 생길 때도 있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불만의 상태가 가족간에도 있을 수 있고, 직장이나 이웃들과도 생길 수 있습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골로새에 사는 교인들 사이에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음을 잘 알았기에, 교인들에게 서로에게 불만이 있으면 어떻게 하라고 미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관심하는 것은 불만의 종류가 아니라, 불만에 대처하는 방법입니다. 사람들 사이에는 다양한 불만의 내용들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상대방에게 불만이 있을 때에 그 불만스러운 것에 초점을 맞춤으로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술이나 담배같은 것으로 그 불만을 해소하려고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함받은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서 불만이 생길 때에 세상 사람들과는 대처하는 방법이 달라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누군가에게 불만의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 피차간에 불만이 있을 때에 그 불만을 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서로가 가진 불만에 대해서 논쟁하며 싸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품을 수 있는 큰 아량과 사랑을 가지기를 하나님은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어른이 어린아이의 실수와 허물을 품듯이, 어른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잘못을 품고 용서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다른 이들을 용납하고 용서하라고 하면서, 그 모범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그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을 용납하고 품는 것의 모범은 예수님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을 품고 용서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베드로가 용서에 관해서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베드로가 일곱번 용서해 주어야 하냐고 묻는 것은 그 당시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용서의 횟수보다 많은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랍비들은 이웃이 자신에게 범죄한 것이 있으면 3회까지만 용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일곱번을 말한것은, 나름대로 용서함에 대해서 자신의 관대함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술 더 뜨십니다. 일곱번뿐아니라,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고 하십니다. 숫자적으로 따지만 490번을 용서하라는 것인데, 이는 숫자적인 의미가 아니라 숫자에 얽매이지 말고 끊임없이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사람에 대해서 불만이 있을 때에,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정답은용서입니다. 불만의 관계속에 있는 상대방을 용서하는 것은 이미 작정된 일이지, 용서할까 말까를 고민하면서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까지 용서해 주셨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과는 다르게, 이 땅에서는 서로 품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사탄이 하는 일입니다. 사탄에게는 다른 이들의 죄와 허물을 품고 용서하는 법이 없습니다. 사탄이 하는 일은 서로를 비난하고 정죄하게 합니다. 사탄은 사람들의 작은 허물에도 지속적으로 정죄하면서 사람들게 상처를 주고 절망케 만듭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상대방의 허물을 품고 용서하며 나가는 사람입니다.

 

이번에 전교인 수련회에서 간증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성도분이 간증을 하시는데 어머니에게 받았던 아픔과 상처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분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랑의 감정이 다른 사람에 비해 없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자신에 대해서 무관심했고, 그런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애를 썼다고 합니다. 엄마에게 칭찬받으려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아와도, 다른 사람들은 칭찬해 주는데, 엄마는 무심하게 상장을 툭던져 버리기 일 수 였다고 합니다. 사탕과 같은 간식이 생기면 보통 엄마들은 자신은 못먹어도 아이들을 먼저 주는 것이 엄마인데, 그분의 엄마는 자신은 먹어도 자식은 안주어다고 합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자기 어머니가 계모인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또 그렇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쓴뿌리가 있어서 어머니에 대한 불만이 그분의 내면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느즈막히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한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용서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에 내키지 않더라도 용서한다고 선포하십시오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말씀에 순종해서 자신의 어머니를 용서한다고 일단 말로 선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용서를 선포한 후에, 그 마음속에 있던 엄마에 대한 아픈 마음이 풀리기 시작하게 되었고, 어머니에 대해서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이 생기더랍니다. “엄마도 그 때는 미숙해서 나에게 그렇게 하셨겠구나...” 그렇게 엄마를 용서하니까 엄마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게도 되고 대화도 할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그 엄마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잘 돌보아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행해야 할 태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다른 사람의 허물과 부족함을 품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품고나갈 때에,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닮아가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사람이 다른 이들에게 불만이 생겼을 때에 할 수 있는 일은 품고 용서하는 일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잘못한 것에 대해서 갚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서로에게 불만이 생겼을 때에 내가 스스로 재판장이 되어서 판단하고 행하다가 더욱 관계가 어려워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옳고 그름의 판단도 하나님의 몫이고 그것을 처리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몫인 것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을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품으며 용서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를 용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귀한 은혜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3.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택함받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이 모든 일에 사랑을 더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게 될 때에 지켜야 될 수 많은 신앙의 덕목들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말한 것과 같이 긍휼과 자비, 겸손과 온유, 오래참음과 용납과 용서 등의 덕목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의무적으로 억지로 한다고 하면, 그것은 율법이 되게 됩니다. 마음에도 없는 위선적인 행위가 되고, 그 안에 기쁨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면 달라집니다. 모든 일들을 할 때에 사랑을 더한다는 것은, 이 모든 일을 행할 때의 동기가 사랑이어야 함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길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처럼 기쁘고 감사한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는 것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은 죄인된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하신 일입니다. 때로 제자들을 꾸짖으셨던 것들도 사랑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것도 의무나 강제가 아니라, 긍휼과 자비의 마음으로 그 일들을 감당해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은, 모든 일을 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사랑을 동기로 해서 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것은, 내가 예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이 택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당신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임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게 위해서는 잘 벗고 입고, 잘 품고, 모든 것에 사랑을 더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덧입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죄된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옛것을 버리지 못하면 새것을 덧입을 수 없는 법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욕망을 벗어 버리지 못하면, 신령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삶을 입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 품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불만이 있을 때에 그것으로 다툼을 일으키는 것은 옛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럴 때에 불만을 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품고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외적으로 칭찬받을 만한 훌륭한 일을 행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사랑에 근거한 것이 아니면 하나님보시기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무슨 일을 하던지 예수님과 같이 사랑의 동기를 가지고 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우리가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로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잘 입고, 잘 품고, 사랑을 더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우리를 통해서 온전히 드러나는 예수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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