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3/2024 - 세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한다 [전도서 4:9-12]
https://youtu.be/ZWqDjrom_Hk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코비드 팬데믹을 지나면서 좀 달려졌습니다. “뭉치며 죽고, 흩어지면 산다.” 세월이 지나면서 삶의 방식들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한 집에 삼 사대가 함께 모여서 떠들썩하게 사는 것이 다복한 집으로 여겨지는 대가족 시대도 있었고, 이제는 소가족들이 일반적인 가족형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혼자 사는 사람들도 참 많아졌습니다.
“나 혼자 산다.” 라는 싱글들을 출연자로 한 방송이 있는데, 이 방송에서 짠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한 출연자가 등에 담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출연자가 파스를 등에 어떻게 붙이는지 아십니까? 파스의 접착면의 반대편을 스카치 테이프로 먼저 벽에 붙입니다. 그리고 벽에 붙은 파스의 위치를 파악한 후에 등을 벽에 갖다 대어서 파스를 붙이더라구요. 자의든 타의든 혼자 산다는 것이 쉽지 않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 또한 다른 사람을 책임지지도 않고 편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심지어 기독교인들 중에도 이런 신앙의 형태를 가지신 분들이 있습니다. 소위 ‘가나안’ 교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은 신조어인데, 심오한 뜻은 아니고요, “가나안”교인을 꺼꾸로 하면 “안나가”이지요. 교회에 안나가고 혼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사회가 점차 개인주의화 되고 신앙적으로도 이러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 믿음의 공동체에 속하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몸된 교회입니다. 믿음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 안에서 이런 저런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도움도 받고, 훈련도 받으면서, 그 믿음이 더욱 견고해 지고, 장성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으로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전도자는 사람들이 서로 연합하는 것이 어떤 유익이 있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연합의 형태가 무엇인가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전도자가 “두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다” 라고 말하는데, 이는 유대인들의 속담가운데 하나입니다.
한국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은 이유는, 서로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기 떄문이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수고한 결과가 서로에게 상과 같이 유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좋은 상이 무엇인지를 다음 절들에 예로 알려 주고 있습니다.
1) “한 사람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킨다.”
내가 넘어질 때 일으켜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인생에 좋은 상을 받은 사람입니다. 생각해 보면, 인생에 있어 넘어짐은 친숙한 일입니다. 걷지 못하던 아기 때에는 한 번 일어서 보겠다고 안간힘을 쓰지만 넘어지기를 반복합니다. 장성해서는 자신을 과신하다가 실수로 넘어지기도 합니다. 연세가 드셨을 때에는 힘이 없어서 작은 돌뿌리에도 쉽게 넘어지곤 합니다.
그런데 그 때에 누군가가 옆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거나, 넘어졌을 때에 누군가가 일으켜 준다면 큰 위로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린 아이 때에는 부모가 우리를 일으켜주는 좋은 상과도 같은 분들입니다. 장성해서는 동무들이 그러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2) 그리고 두번째 예로 추울 때에 나를 따뜻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좋은 상과 같은 사람입니다.
“두 사람이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구약시대에 히브리인들은 유목 생활에 친밀한 사람들입니다. 가축을 치다가 밤에 밖에서 텐트를 치며 야영을 하곤했습니다. 팔레스틴지역은 광야가 많기에 낮에는 뜨겁지만, 밤에는 온도가 급속히 내려 갑니다. 그럴 때에 옆에 누군가가 함께 누워서 몸을 따뜻하게 해줄만한 가까운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좋은 상을 받은 사람일 것입니다.
썬다 싱이라는 인도선교사가 있습니다. 그는 인도와 그 주변에 있는 지역을 다니면서 선교를 했는데, 어느 날 그가 네팔에 있는 한 동네를 가기 위해 산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 날 따라 눈보라 심하게 몰아쳤습니다. 썬다 싱은 먼저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눈보라와 추위를 피할 곳이 없어서 계속 앞을 향해 걷고 있었는데, 그들 앞에 길 바닥에 쓰러져 얼어 죽어 가고 있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썬다싱은 동행자에게 말합니다. “이 사람을 함께 데리고 갑시다. 그냥 두면 죽고 말 것입니다.” 그랬더니 함께 가던 사람은 화를 내면서 “우리도 살지 죽을지 모를 이 판국에, 이 노인네까지 데리고 가다간 우리 모두가 죽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 사람은 혼자 빠른 걸음으로 자기 길을 떠났습니다. 썬다싱은 그의 말이 맞다고 여기면서도 죽어가는 사람을 그냥 둘 수 없기에, 차갑게 식어가는 그 노인을 등에 업고 목적지를 향해갔습니다. 그 노인을 업고 가는 썬다싱의 몸이 뜨거워지더니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썬다싱의 뜨거운 체온으로, 등에 업힌 노인의 몸이 따뜻해져서 그 노인도 의식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썬다싱이나 노인이나 그 추위가 그렇게 춥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걷게 되고, 마을에 거의 다 왔을 때에 썬다싱은 길에 쓰러져 있는 꽁꽁 얼은 시체를 보았습니다. 그는 혼자 살겠다고 먼저 떠났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나와 함께 수고에 동참하는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상과도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곁에 있다면 그 이유는 넘어진 자를 세워 주고, 삶의 추위가운데 있는 이들을 따뜻하게 하는 유익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 때에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상이 되는 것입니다.
2. 그리고 전도자는 세 사람이 함께 하는 유익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12절에, “한 사람이면 패하고,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고,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살다가 보면 상대해야 할 대적이나 상황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에 누군가와 함께 힘을 합하면 그 상대나 환경을 극복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세사람이 함께 있다고 해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겹줄이 되어야 합니다. 세겹줄이라고 하면 세 줄을 땋아서 하나의 줄로 만든 것입니다. 각각의 줄은 큰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각각의 세줄이 하나로 묶여 질 때에 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시너지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힘을 합하면 두배의 힘이 나야 하는데, 실제로 두배이상의 힘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케팅을 할 때에 매출을 높이기 위해 협업, 콜라보레이션이라는 것을 많이 합니다. 전자제품 회사가 패션 디자이너와 협력해서 제품을 내놓기도 합니다. 의료계와 과학계가 협업해서 성능 좋은 의료기계를 만들기도 합니다. 공부를 할 때에도 혼자가 하면 힘들지만 친한 친구들과 스터디그룹을 만들어서 하면 재미있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힘든 일을 할 때에도 친한 친구와 함께 하면, 그 일도 해 볼만한 합니다.
우리가 쓰러질 사람을 세워줄 수 있고, 따뜻하게 해 주고, 승리를 위해 함께 힘써 줄 수 있다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좋은 상과 같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서로가 상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때로 함께 하는 사람이 상이 아니라, 넘어지게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창세기 2:18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를 돕는 좋은 상과 같은 존재로 하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와는 선악과를 먹고, 아담에게도 그 죄를 전가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하와는 아담을 세워준 것이 아니라 넘어지게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있다고 해서 상대방이 넘어질 때에 반드시 붙들어 일으켜주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방의 넘어짐을 좋아하기도 하고, 심지어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세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 말은 쉽게 끊어지지는 않지만, 이 또한 끊어질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출애굽을 한 후에 약속에 땅,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 사건이 생겼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요단강 동편에서 강을 건너 서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르우벤지파와 갓지파가 모세에게 자신들은 가축들이 많으니, 요단강 동편의 목초지를 자신들에게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요단강을 건너지 않게 해달라고 합니다.(민 32:3-5) 당연히 그렇게 요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러한 그들의 요청에 화를 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지파들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사람들과 전쟁을 치러야 되는 상황인데, 르우벤과 깃지파 사람들이 요단강을 건너지 않고 그곳에 머문다고 하면, 나머지 지파들을 낙심케 만들어, 요단강 서편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고 물러날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로 하나되게 하셨는데, 세겹줄을 약화시키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함께 한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낙심케하는 일들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상이 되어야 할 텐데, 때로는 낙심케 하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우리가 진정으로 서로에게 좋은 상과 같은 존재, 함께 일으켜 주고, 따뜻하게 해주고, 세겹줄과 같은 이들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신앙적인 연합을 이루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1)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연합하여야 합니다.
10절에, 한 사람이 넘어지면 하나가 동무를 붙들어 일으켜 세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의 동무는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히브리어로 ‘하베르’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는 ‘하브루타’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는데, '하브루타'는 유대인들이 탈무드를 공부할 때 두명씩 짝을 지어 서로 질문을 주고받으며 학습하는 교육 방법을 말합니다. 그러니 동무로 해석된 '하베르'는 하나님의 말씀가운데 이루어진 친밀한 관계의 사람인 것입니다. 성도의 관계가 세상적인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관계가 될 때에, 서로가 넘어질 때 붙들어 일으켜 줄 수 있는 서로에게 상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2) 그리고 또한 우리는 기도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에 우리는 영으로 하나가 되어 서로를 지탱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일 때에 서로가 기도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다니엘 새벽기도회가 11월 1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혼자 기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함께 모여서 기도할 때에 영적인 시너지가 일어납니다. 차가워진 마음이 함께 기도할 때에 뜨거워지며, 서로에게 좋은 상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3) 그리고, 주의 선한 일을 위해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함께 모이는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세상에 많은 모임들이 있습니다. 그 모임들은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도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위해서 합력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선을 행하기 위해, 세겹줄, 네겹줄, 모든 사람들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선을 이루는 것이 교회입니다. 이럴때에 우리 교회에 주시는 상이 클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만남과 관계들이 서로에게 좋은 상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하기 전에, 하나님과 함께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넘어질 때에 우리를 세워 주시는 분, 추운 때를 맞이할 때에 따뜻하게 해 주시는 분, 그리고 진심으로 우리와 함께 사탄의 공격을 싸워주시고 보호해 주실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급이 되십니다.
창세기 15:1절에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상급이니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신의 상급임을 경험하였고, 다른 사람들을 복되게 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상급임을 경험하는 사람이, 또한 다른 사람의 상이 되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 말씀으로 하나되고, 기도로 하나되고, 하나님의 선을 행함으로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안에서 하나되어 우리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상이 되는 귀한 관계, 하나님과 얽히고 설켜서 더욱 든든히 서가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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