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5/2024 - 생명의 떡, 예수를 먹으라 [요한복음 6:35, 47-51]
https://youtu.be/ghAcnH4SB1c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떠한 존재인지에 대해 헷갈려 했습니다. 예수는 과연 누구인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인가? 메시야인가? 아니면 단순한 선지자인가? 자신을 메시야로 여기는 미친 사람인가?
그런데 예수님과 줄 곧 함께 다녔던 제자 요한은 그의 책,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어떠한 분인지를 명확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12절에,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니라” 우리의 삶이 죄의 어둠가운데 막막할 때에, 우리를 어둠속에서 구원하실 유일한 빛은 예수님이십니다. 참빛이신 예수님께서 어둠 가운데 사는 우리를 찾아와 동행해주시며, 영생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은 주님의 크신 은혜요, 우리의 복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의 말씀에도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누구신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생명의 떡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떡이라고 하면 한국식으로 인절미, 무지개떡, 송편같은 떡을 생각할 수도 있을텐데, 여기서 말하는 떡은, 물과 섞은 가루를 구워만든 팔레스틴 스타일의 길쭉하거나 둥근 두꺼운 빵을 말합니다. 우리가 성찬에 쓰는 빵과 같은 모양에 가깝습니다. 떡은 사람의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먹어야 하는 음식을 대표합니다. 사람들은 이 떡을 구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면서 삽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생명의 떡으로 오셨습니다. 떡이신 예수님을 먹는 사람은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영생의 떡이 무엇을 의미하며, 우리는 영생을 주시는 생명의 떡을 잘 먹고 있는지를 살펴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1. 오늘 말씀 전에 오병이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어떤 떡을 찾아 살아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신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보시면서, 빌립에게 물으십니다.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빌립이 대답합니다. “예수님,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니리온의 떡이 부족합니다.” 그 당시 하루 일당이 1 데나리온이었습니다. 200 데나리온이면 한 사람이 6-7개월개월 동안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가질 수 있는 돈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자들에게 그 많은 돈도 없을 뿐더러, 설령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많은 음식을 한꺼번에 살 수 있는 가게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안드레가 예수님께 보고 합니다. “예수님,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안드레가 그 아이에게 음식이 있었던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안드레가 음식을 찾기 위해 사람들을 조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마 그 아이가 그 음식을 예수님이나 제자들이 먹도록 자원하여 드렸을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한 아이의 작은 헌신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아이의 음식을 받아든 예수님은 그 음식 위에 축복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음식을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음식을 주셨고, 사람들은 배가 부르도록 먹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부스러기를 다 모았더니 열두바구니가 되었습니다. 말도 안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기적을 일으키신 것은,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의 정체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왜 이 기적을 행하셨는지,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무리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내주신 선지자 정도로 여겼습니다. 선지자 중에 이런 능력을 행했던 선지자가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가뭄으로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해있는 사르밧 과부를 찾아가셨습니다. 마침 과부와 아들은 마지막 남은 조금의 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 먹고 죽으려고 했었습니다. 이를 보고 엘리야는 가루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기름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가뭄의 때에 과부와 그녀의 아들을 굶주림에서 구해주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의 후계자 엘리사 선지자도 여리고성에서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 성에 있는 샘물의 수질이 나빠서 과일들이 제대로 열매맺지 못하고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안 엘리사는 그 물에 소금을 뿌려 물을 좋게 만들어서, 과실이 잘 맺도록 하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일으키신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이 엘리야나 엘리사와 같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먹이시기 위해 보내신 선지자 정도로 여겼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굶주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의 제의를 거절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는 집요함은 그 다음날에도 이어졌습니다. 사람들이 배를 타고 예수님을 찾아, 오병이어가 일어났던 곳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예수님께서 안 계시니, 다시 배들을 타고 예수님을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들이 얼마나 예수님을 반가워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별로 반가워하는 기색도 없이, 그를 만나러 온 사람들을 보시고,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예수님은 그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깨닫기를 원했습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은 예수님이 사람들의 육신적인 굶주림을 해결할 존재임을 드러내기 위한 사건, 표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부르며 따르는 이유가 이 사람들과 같이, 우리의 육신을 배부르게 하고, 육신의 만족을 위한 목적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사람들의 육신적인 배고픔을 해결케 하시고자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그러한 목적이라면, 하나님은 예수님이 아니라, 애굽과 가나안 사람들을 흉년으로 인한 굶주림에서 구한 요셉과 같은 사람을 세우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꼭 오셨야 했던 이유는 우리의 육신의 떡을 공급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명의 떡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2. 예수님은 육신의 떡을 구하기 위해 예수님께 온 이들에게, 그들이 꼭 먹어야 생명의 떡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 떡은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를 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여러분은 이 말씀의 뜻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수근거립니다.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그런데 예수님은 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십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식인종이 아니고서야 누가 사람의 살을 양식으로 삼고, 사람의 피를 음료로 마시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어렵다며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예수님과 다니지 않았습니다.
오병이어를 보고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던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그렇게 쉽게 떠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의 말대로 예수님이 자신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했기 때문에 떠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통해 그들이 기대하는 떡을 더 이상 얻지 못할 것 같고, 다른 곳에서도 이 떡은 취할 수 있었기에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더 궁극적인 이유는 그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구원자이심을 깨닫지 못했기에 예수님을 떠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신은 생명의 떡이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을 먹으라고 하니, 이 말씀을 그들이 이해하기 어렵기도 했지만, 그들이 관심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영생에 관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이 땅에서 양식을 줄 사람을 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육신적인 욕망을 채워주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을 때에, 많은 제자가 예수님을 떠난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이러한 유혹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믿었는데도 내가 원하는 육신의 필요가 채워지지 않고, 내 감정이 상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 예수님을 떠나, 다른 해결책을 찾아 가고자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추구하는 이 세상의 것들은 영생의 복을 보장하는 것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취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그리고 영생은 생명의 떡인 예수님의 살과 피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먹고 마시라고 하는 그의 살과 피는 바로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시고자 십자가에 오르셔서, 찢기신 그의 살과 흘리신 그의 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나를 대속하신 구속의 사건임을 믿고 확신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은, 바로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죽음에서 살리는 ‘생명의 떡’이 되는 사건입니다.
사람은 이 육신의 떡만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참 구세주임을 믿고, 그를 ‘생명의 떡’으로 먹어야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우리가 썩어질 육신의 양식을 위해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주시는 생명의 떡인 예수님을 먹고 그 생명을 우리가 누리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3. 이제 예수님을 생명의 떡으로 믿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잘 먹는 일입니다. 그래서 영생을 취하는 일입니다.
‘안데스의 기적’ 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있습니다. 1972년 10월에 아마추어 럭비선수를 포함한 45명의 사람들이 탑승한 비행기가 짙은 안개속에서 항로를 벗어나, 눈 덮인 안데스 산맥 봉우리로 추락했습니다. 이 사고로 12명이 즉사하고, 17명은 며칠 후 부상으로 죽거나 눈에 깔려 질식사했습니다. 그리고 16명이 남았습니다. 그들은 구조수색을 기다렸는데, 사건 발생 후 10일 후에 무전을 통해 자신들을 구조하기 위한 수색이 취소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때 의대생이었던 르베르토 카네사는 한가지 제안을 합니다. 생존을 위해 죽은 시체를 먹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결정이었겠습니까? 그들은 죽은 친구의 시체를 먹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자신들 중에서도 죽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자신들의 몸을 다른 사람을 살리는 양식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16명의 사람들은 인육을 먹으며 두 달 동안을 산에서 버텼습니다. 그리고 구조 요청을 위해 10일 동안 산을 내려왔고, 칠레의 양치기를 만나 그들은 구조되었습니다. 그들은 동료들의 살을 먹음으로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동료의 살이 그몸 안에 들어와 살아갈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사람들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 육신적인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주신 살과 피를 먹고 마실 때에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고자 우리로 하여금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우리에게 그분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 우리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영원하신 예수의 생명을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우리에게 제공하고 계십니다. 저는 떡을 생각할 때에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최형주 권사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정성스럽게 떡을 만드셔서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셨던 모습말입니다. 음식을 준비하신 분에게 가장 큰 기쁨은 그 음식을 맛있게, 감사함으로 먹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생명의 떡’으로 믿는다고 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맛있게 먹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1) 먼저 예수님을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을 때에 누구든지 죄의 사망의 권세에서 놓임받아 영생을 얻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2) 그리고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 내안에 거주하시며, 그의 말씀이 내 삶을 통해서 나타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오셨던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먹고 그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우리의 몸이 예수님처럼 거룩하게 변화된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예수님을 잘 먹어야 합니다. 찬양 가운데 드러나는 예수님, 기도와 말씀 가운데 나타나시는 예수님을, 아멘으로 내 안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이 예수님의 몸이 되어서, 주님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도는 어떤 사람입니까? 생명의 떡되신 예수님을 감사함으로 잘 먹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살과 피를 잘 먹고 마시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말씀을 잘 먹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찬을 할 때에, 내 안에 예수님의 살과 피가 들어와 예수의 몸이 내몸이 되고, 그의 피가 내 안에 흘러 주님의 삶을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나도 내 살을 내어 줄 수 있는 삶…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이의 살을 찢어먹는 이들이 아니라, 내 살과 피를 내어주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잘 먹어야 돼요.
우리 모두 주위 분들과 이렇게 인사하시겠습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잘 먹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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