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0/2024 - 우리를 환대하시는 예수님 [마태복음 11:28]
https://youtu.be/IvBqps8HcGg
누군가에게 환대를 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힘들게 하루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갔는데 배우자와 자녀들이 문앞에 나와서 인사를 하며 수고하셨다고 말해 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떤 분은 자신의 가족들보다 집에서 키우는 애완견을 더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집에 들어와도 가족들은 별관심이 없는데, 강아지는 자신이 집에 들어오면 기뻐 어쩔줄 몰라하며 꼬리를 치며, 껑충껑충 띄며 자기를 반겨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돌아가실 때에 유산을 애완동물에게 주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환대를 받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지만 조심해야 할 환대도 있습니다. 라스베가스의 카지노 호텔들은 손님을 아주 친절하게 맞이합니다. 투숙비와 호텔 음식도 다른 지역에 비해 쌉니다. 그런데 그렇게 환대하는 이유가, 그 호텔에 머물면서 도박을 하게 해서, 호텔의 유익을 취하기 위한 것입니다. 때로는 조심해야 할 환대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 조건없이 진심으로 환대해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여러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을 대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 사람의 수고와 짐을 자신이 책임을 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한 사람들을 다 자신에게 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에게 오는 이들에게 쉼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인생의 짐을 책임지시겠다는 초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를 환대하시는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왜 부르시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쉼이 무엇인지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의 초대의 대상입니다. 어느 누가 삶의 수고와 무거운 짐을 지는 인생에서 자유할 수 있겠습니까?
'수고한다.'는 것은 스스로 많은 일들을 하여 계속해서 피곤에 지친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무거운 짐진 자'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 의해 무거운 짐을 지게되어 지쳐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의든, 타의든 짐을 지고, 수고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과로할 때에 입술이 찢어지고, 눈의 실핏줄이 터지기도 하는데, 우리는 세상에서 이러한 수고를 하면서 살아가기 일 수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러한 수고하는 것과 짐을 맡아서 책임을 져준다고 한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숨을 돌리고, 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해 주시겠다고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쉼을 주시겠다고 사람들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위해서 수고하는 삶을 산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쉼을 주시겠다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것은 단순히 육신적인 삶의 고단함을 해결해 주시고, 편하게 살게 해주시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수고와 짐들이 있는데 그것은 죄의 짐입니다.
죄의 짐은 우리의 영혼을 짓누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은 영적인 짐을 지고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죄의 짐은 심각한 결과를 낳습니다.
야고보서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이 죄의 짐을 그냥 놔두면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장 해결해야 할 짐은 죄의 짐인 것입니다.
바울은 이 짐에 대해서 히브리서 12:1-2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고 했습니다.
성도는 죄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맞이하는 수고와 짐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시간이 되면 해결되고, 벗어버릴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죄의 짐은 스스로 벗어 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로지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의 짐을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육신적인 수고와 짐에 관심하며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보시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짐들을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우리가 죄의 짐에 눌려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를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우리의 영적인 형편을, 우리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죄의 짐에 눌려있는 사람들에게 쉼을 주시겠다고 오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안식, 쉼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수고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쉼을 위한 것 아니겠습니까? 돈이 많으면 쉼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권력이 있으면 세상을 편히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소유한다고 할지라도 쉼이 없습니다. 우리의 욕심은 우리에게 자족하지 못하게 하고, 쉼없이 수고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다 소유하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이룰 수 있다면 쉼이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쉼은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갈 때 있습니다. 예수님은 쉼을 주신다고 말씀하시기 전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쉼을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은, “예수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에, 부모님의 품에 있을 때에 쉼이 있는 것과 같이, 우리가 예수님과의 친밀할 때에 우리에게 쉼이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7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우리가 주님과 친밀한 관계속에 있을 때에 우리의 근심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케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을 맡아주실 것을 알기에 평안할 수 있고,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 놓는다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가 하나님 안에 머무르지 못하도록 하도록 해서, 참 안식과 평안을 누리지 못하도록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속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만들어 죄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둘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고, 하나님을 피해 숨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쉼은 하나님과의 관계속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하게 여기며, 귀찮아하고 불편하게 여긴다면, 세상에서 쉼을 얻으려고 추구하며 산다면, 우리가 죄의 영향가운데 주님과 떨어져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는 예수님께로 가까이 나왔습니다. 이 예배가 우리에게 부담과 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과 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쉼과 안식은 예수님께로 갈 때에,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3.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수님은 자신에게 온 이들에게 예수님의 멍에와 짐을 메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예수님께 혹떼러 갔다가 혹을 붙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매라고 하는 짐은 죄의 짐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감에서 오는 수고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메라고 하시는 멍에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강 상류에 위치한 조그만 마을이 있었습니다. 이 마을에 선교사들이 선교하기 위해서 왔는데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마을 청년들이 일터로 나갈때 물살이 빠른 강을 건너야 하는데, 그 청년들은 가슴에 검은 돌 하나씩을 안고 강을 건너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선교사님께서 가슴에 안은 돌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그 청년이 말하기를 “이것은 생명의 돌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돌들은 몸이 가벼워 물살에 휩쓸려가기 쉬운 그 청년들의 몸을 무겁게 해서, 그 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안고가는 돌은 짐이 아니라, 그들을 살리는 생명의 돌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산다는 것이 부담이요 짐으로 여겨지겠지만, 그것은 우리를 죄에 빠져 휩쓸려가지 않도록 하는 생명의 돌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에 진정한 쉼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온유와 겸손”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께 나오는 이들에게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쉴 수 있을 때에, 진정한 쉼이 있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마음의 쉼이 없이 살아갑니다. 우리 마음이 세상일로 분주하고, 걱정이 많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쉼을 얻어야 우리의 삶에 평안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세상적인 일들로 가득차 있으면 쉼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계실 때에 우리는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갈 때에 참 쉼과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대로 순종하면서 살아갈 때에 마음의 쉼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예수님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온유와 겸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대로 사셨습니다. 죽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 온유와 겸손했기 때문입니다. 포악하고 교만한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힘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포악했고, 교만했습니다.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었고, 그들은 광야에서 불순종의 죄값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온유와 겸손함으로 나아갈 때에 그 말씀에 순종하며, 참 쉼을 얻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만 온유와 겸손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온유하고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도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온유하고 겸손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죄가 많고 무지하다고 해서 사람들을 포악스럽게 대하거나 교만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살아기 위해 온유와 겸손으로 사람들을 대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죄로부터 자유하며, 우리의 마음에 쉼이 있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께로 올 때에 환대해 주십니다. 우리가 죄가 많다고 할지라도 거절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우리를 기쁘게 맞아주십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을 환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며 불편해 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그를 환대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아주 불편해 했습니다. 그를 환영하지 못했고, 결국 예수님을 죽이는 끔찍한 죄를 범했습니다.
때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환대하지 못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20절에,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라오디게아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예수님을 온전히 모시지 못하고, 문 밖에 세워두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을 짐스러워하며 살아가는 삶은 주님안에서 참 쉼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환대를 받으셔야 할 곳이 교회인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우리를 환대하신 예수님을, 환대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우리 가운데 계시는 주님을,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환영하며, 찬송하고, 예배드리고, 말씀에 순종함으로 환대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께서 죄의 짐으로부터 자유케 하시고, 마음의 쉼을 주시고자 우리를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적인 수고와 무거운 짐을 벗어놓고, 예수님의 멍에와 짐을 메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 우리의 수고의 이유가 달라져야 합니다. 전에는 세상의 허망한 것들을 위해서 수고하였다면,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서 수고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짐스럽게 여기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를 생명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사탄이 주는 짐은 우리를 죽이지만, 예수님께서 주시는 멍에는 우리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멍에를 메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온유하고 겸손하십시오. 그럴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안에 들어와 역사하며, 참 안식과 구원을 누리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비록 이 세상이 욕심에 이끌려 마음에 쉼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지만, 저와 여러분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멍에와 짐을 지고, 주님안에서 참 평안과 쉼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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