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1/2025 - 말씀으로 우리안에 거하시다 [요한복음 1:1-5]
https://youtu.be/0NnjtT30Nnk
오늘부터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대림절은 이천년전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고, 다시 오실 예수님의 약속을 되새기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대림절기 동안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어떠한 분인지, 그리고 왜 오셨는지를 요한복음 말씀을 통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예수님의 탄생이야기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고, 가르치시고, 기적의 일들을 행하시는 모습을 통해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그 시작부터 예수님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명확하게 정의를 내리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예수님을 두고서 이런 저런 말이 많았습니다. 사람인 예수님을 어떻게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냐며,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슬람 국가의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믿습니다. 만약 무슬림에게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이를 믿으라고 하면 큰 일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는데,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1. 우리가 그 탄생을 기뻐하며 재림을 기다리는 예수님은 누구일까요?
먼저 요한은 예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말씀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태초에 만드실 때에 무엇으로 만드셨습니까? 창세기 1장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그 말씀하신 대로 이세상의 것들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누구시냐하면,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라고 했습니다. 곧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분은 곧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태어났다고 해서, 그분이 하나님과 비교할 때 열등한 존재라고 여기면 안됩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오셨다고 해서 사람과 같은 존재라고 여겨서도 안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사람의 모습을 하고 오셨지만, 그분은 여전히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하신 말씀이십니다. 예수님의 말, 삶, 몸동작, 표정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신 말씀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거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이제 말씀의 형태로 사람안에 거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천년전에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은, 지금 육신적으로는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지만, 여전히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14절 말씀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했을때에, ‘거하다’라는 단어는 ‘에스케노센’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는 ‘천막을 치다’ 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출애굽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지으라고 하신 성막을 연상시키는 단어입니다. 출애굽기 2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천막을 만들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곳에 거하시며, 그들과 함께 하심을 보여 주셨고, 그곳에서 모세를 만나주시고,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사람들과 함께 거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로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안에 말씀으로 거하시며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안에 모시고 살 때에, 말씀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우리 마음에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살아갈 때에 진정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1800년대 후반에 시카고를 비롯해,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에서 복음을 전하며, 많은 사람을 전도했던 유명한 설교가인 D.L. 무디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는 백만명을 전도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도 믿음이 없어 믿음을 구할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하며 간증했다고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믿음을 달라고 기도한 시간만 합쳐도 몇 달은 족히 될 것입니다. 내 생각으로 믿음이란 번개불과 같이 어느 날 나를 확 달아오르게 할 어떤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수없이 기도해도 믿음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어느 날 나는 로마서 10장을 읽다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란 구절을 보았습니다. 그 즉시 나는 성경을 부둥켜안고 믿음을 구했습니다. 그리고는 성경을 다시 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시작했더니 믿음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기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알고 이를 순종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고 살아갈 때에 믿음이 생기고,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영적인 경험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우리를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떠나 죄가운데 즐거워하며 멸망길로 가는 사람들을 보며 고통스러워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문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되십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대할 때에, 예수님을 대하듯이 읽고, 그 말씀에 반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성탄의 계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읽고, 묵상하고, 이를 행함으로, 우리안에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경험하는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며 사는 것은, 바로 생명과 참 빛을 모시는 일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말씀안에 생명이 있고,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요, 빛이십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 빛이 있고, 빛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생명과 빛이신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이 땅에 사망과 어둠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이 사망과 어둠에 있게 된 것은 죄의 결과입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입니다. 사탄은 사람들에게 죽음의 길을 생명의 길이라고 속여서, 사람들이 죽어라고 멸망의 길을 가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사탄은 어둠을 빛이라고 속여서 사람들이 어둠가운데서 마음대로 죄를 짓고 살아가도록 만듭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이신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시고 살아갈 때에, 우리는 생명을 누리며 빛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빛되신 예수님을 모실 때에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둠 가운데 행했던 더러운 죄들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죄가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았고,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기까지 했는데,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실 때에, 내 죄의 실상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실 때에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리고에 작은 삭개오라는 키가 작은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이 여리고로 들어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보기 위해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갑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요 부자였습니다. 그 당시 세리는 죄인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삭개오가 올라간 나무에 이르렀을 때에 그냥 지나가지 않으시고, 나무위에 있는 삭개오를 올려 보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죄인인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시는 것이 마땅치 않게 여겨졌지만, 세리 삭개오는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합니다. 삭개오는 예수님께 약속하기를,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며, 누군가를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실 때에 무엇보다 죄에 대한 자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죄에 대해서 회개하고,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내 뜻대로 살았던 삶을 회개하도록 만듭니다. 다른 이들을 돌보지 않고 괴롭혔던 일들을 깨닫도록 합니다. 많은 것을 가졌으면서도 그 동안 외면했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이었던 삭개오의 집에 머무르기를 원하시는 것처럼, 예수님은 말씀의 형태로 죄인된 우리안에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빛되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시면 가장 먼저 어둠속에 묻혀져 있던 우리의 더러운 죄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말씀 가운데 우리의 삶을 조명해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했다면 그것은 죄가 없는 의인이라서가 아니라, 우리의 죄를 드러내 줄 빛이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삭개오와 같이 빛되신 예수님을 갈망하며 그분을 우리의 삶속에 모시면서 살아가십시오. 세상의 잡다한 것을 마음에 두고자 애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모시고자 힘쓰는 성탄절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므로, 우리의 더러운 죄를 드러나고, 이를 눈물로 회개하는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3. 그런데 우리의 죄가 드러난다고 해서 슬퍼하거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빛되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주실 뿐만 아니라, 그 죄를 씻어주시고, 생명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빛이 되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드러내시는 것은 죽이시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살리고자 하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무엇이 죄인지를 깨닫고 이에서 돌이켜서 참 생명의 길을 걸어가도록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이요 빛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우리는 빛의 자녀로서, 영생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의 어둠과 사망의 세력을 물리칠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아주 뛰어난 검객이 있었습니다. 그의 칼 솜씨는 당대 최고여서 그를 대적할 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강도를 만났습니다. 칼을 든 강도는 검객에게 의기양양하게 말합니다. “있는 것을 다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이 말을 듣고 검객이 말합니다. “네 이놈, 내가 누군 줄 아느냐?” 라고 소리쳤습니다. 강도는 검객을 조롱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곧 내게 탈탈 털린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소" 그런데 이런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그 검객은 그 강도를 상대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집에다가 검을 놓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6:17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검인 말씀을 읽고,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사탄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이 빛이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계실 때에, 우리는 영생의 길을 온전히 걸어갈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강력한 능력 인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인류를 구원하셨듯이,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이 세상에서 구원하셔서 영생으로 이끄실 강력한 능력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생명과 빛의 말씀을 늘 귀히 모시고, 그 말씀을 삶으로 이루는 예수님의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을 되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지금 육신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지 않지만, 말씀으로 여전히 우리 안에 거하고자 하십니다.
이 성탄의 계절에 빛과 생명되신 말씀이신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사건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심령의 어둠속에서 행한 더러운 죄를 밝히시고 이를 책망하시고 회개케 하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사건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더러운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시고,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건이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문자가 아니라 빛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말씀이 우리안에서 밝게 빛나고 생명력을 발휘함으로, 우리로 인해서 우리 가정, 교회, 이 사회의 죄의 어둠이 물러가고, 주님의 영생의 능력이 증거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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