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6/2025 - 작은 능력으로도 충분합니다. [요한계시록 3:7-13]
https://youtu.be/P3baVzvaUU4
우리 교회가 관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교인, 교회가 되기를 관심해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교회가 되는 것은 전도를 위해서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보다 우선되고 근본적인 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께서 보실 때에 호감이 드는 교회인가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좋은 교회는, 예수님이 보시기에 좋은 교회를 전제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소아시아에 있는 7교회에게 보내신 편지를 통해서,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7교회에 편지를 쓰시면서, 교회들을 칭찬하기도 하시고, 책망하기도 하십니다. 그러기에 이 편지들은 우리교회가 예수님께 칭찬받는 교회가 되는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작년 말에 에베소교회, 서마나교회, 버가모교회, 두아디라교회, 사데교회, 다섯교회에게 주시는 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여섯번째 교회인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시는 편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이 우리 교회,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편지를 쓰실 때에, 먼저 자기 자신을 소개하십니다. 오늘은 예수님을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물을 열고 닫는 열쇠를 가지신 분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에 때로는 우리 앞에 있는 문이 막히거나 열리는 것 같은 일들을 경험합니다. 어떨 때는 내가 원하는 직장이나, 학교,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의 문을 두드리고 열고자 하지만 그 문이 열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문은 내가 기대하지 못했는데 열리기도 합니다. 내가 내 인생의 문을 열고 닫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문들을 열고 닫는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건물을 들어가야 하는데 문이 잠겨있다면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 열쇠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마스터키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한 열쇠로 이 문도 열고 저문도 열고합니다.
우리 인생에 마스터키를 가지고 계신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이를 믿을 때에 우리는 인생의 막힌 문 앞에서 주님을 찾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문 중에 예수님 만이 여실 수 있는 문의 열쇠를 가지고 계시는데, 그것은 바로 구원의 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구원의 문을 여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다."고 하십니다. 그들 앞에 구원의 문이 열려있으니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열린문은 빌라델비아 교회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거룩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 앞에 놓인 구원의 문인 줄로 믿습니다. 그 누구보다 많은 인생의 문을 열고 내가 원하는 삶을 성공리에 살았다고 할지라도, 구원의 문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 인생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구원의 열린문이 빌라델비아를 비롯한 교회에 있는 것입니다. 영혼구원의 엄청난 일이 그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작은 능력의 교회로 알려졌습니다. 어떻게 작은 능력을 가지고 그런 큰 일을 감당했는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빌라델비아 교회는 안디옥교회와 마찬가지로, 책망없이 칭찬만을 받은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델비아교회에게 주신 칭찬은, 그들이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예수님의 말을 지키고, 예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작은 능력의 교회였습니다. 이것은 사회적인 관점으로 볼 때에 교회가 능력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빌라델비아 지역은 빈곤한 지역이 아닙니다. 교통의 요충지인데다가 상업도 발전했습니다. 포도농사가 유명해서 포도주가 특산품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빌라델비아 교회의 교인들 중에는 사회적인 권세를 가졌거나 재력이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교인의 숫자도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작은 능력의 교회가 된 이유가 예수님을 제대로 믿으려고 하니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사회적이 능력자들은 누구보다 힘써서 로마 황제숭배를 함으로 통치자들의 인정함을 받고, 황제 숭배를 하는 상인조합 같은데에 들어가 장사를 하면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진정한 왕으로 섬기는 이들에게 황제숭배는 예수님을 배반하는 일이니, 예수님을 잘 믿기 위해 세상적인 출세와 성공, 부를 포기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스스로 작은 능력의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들이 어리석어 보였습니다. 사회적으로 힘이 없으니, 믿음생활 하기가 더 힘들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더욱 무시도 당하고, 억압을 당하는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그들은 결코 약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적으로는 작은 능력의 사람들일지 모르지만, 그들은 영적으로는 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작은 능력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사회적으로 약한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사회적인 강자의 말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권세를 가진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고용한 돈 가진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시키는 대로 살아야 삶이 편하고, 잘 살 수 있는 문이 열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할 최고의 말씀으로 두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과 상충하는 말과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가장 우선으로 지켜야 할 말은 누구의 말입니까? 세상의 권세자들의 말입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말입니까? 아니면 내 내면의 말입니까? 때론 작은 능력으로 인해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손해본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예수님의 칭찬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것이 교회의 진정한 힘인 것입니다.
2. 그리고 빌라델비아 교인이 칭찬받은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에서 예수님을 배반한 제자가 있습니다. 먼저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혀서 대제사장에 집에 끌려갔을 때에, 대제사장 집의 뜰에가지 쫓아갔습니다. 그런데 한 여종이 베드로를 보면서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자신도 예수님처럼 해를 받을까 두려워,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하기까지 했습니다.
가롯유다도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3년 정도 예수님을 따라 다녀봤는데 예수님이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대단한 인물인지 알았는데 별일 없는 사람처럼 여겨졌습니다. 더 이상 예수님을 따를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아버립니다.
사도행전 4:12절에는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구원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을 배반하게 되면, 구원에 이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나를 배반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나 자신을 부인하고 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는 사람입니다. 나의 유익과 욕망을 부인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배반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빌라델비아 교회 교인들은 자신을 부인할 지언정, 예수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황제숭배를 하지 않으면 박해를 받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예수님만을 그들의 왕으로 섬겼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손해보고 무시를 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고, 예수님만을 예배하며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작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여겼지만, 예수님의 이름을 배신치 않은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가 굳건하게 세워지고, 구원의 열린 문의 교회가 된 것입니다.
저는 교회를 섬기면서 봉사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마음에 감동이 올 때가 많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서 행사를 준비하는데 몸이 안 좋으신 분이 오셔서 반갑기도 하고 걱정도 되어서 "힘드실 텐데 어떻게 나오셨어요?" 물으니, "집에서 아프나 교회에서 아프나 아픈 것은 마찬가지니, 뭔가 거둘 일이 있을까 해서 왔어요." 라고 하십니다. 교회는 강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으면 잘 세워질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습니다. 몸이 약하거나, 경제적으로 넉넉치 않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고, 대단한 재능은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힘쓰며, 자신을 부르신 소명을 위해 헌신하시는 이들을 통해서 교회가 서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칭찬하시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강한 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능력이 작던 크던지 상관없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기에 힘쓰고,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파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칭찬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보실 때에 그들은 진정으로 교회를 세우는 강한 자들인 것입니다.
3. 예수님은 빌라델비아의 행한 일들을 보시고, 그들을 칭찬하셨을 뿐만 아니라, 빌라델비아교회를 향하여,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느닷없이 사랑의 고백을 하시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음을 아셨기 떄문입니다. 요한복음 14: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예수님의 말씀, 계명을 지키는 자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빌라델비아교회가 그런 교회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불이익과 고난을 감수하며 스스로 작은 능력에 거했던 교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를 모르실리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도 그들에게 예수님이 그들을 사랑하는 줄 알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그들에게 사랑을 보여주십니까? 그들이 사회적인 힘을 얻도록 해주십니까?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심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하십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사랑하는 증거로, 유대인들이 와서 그들 발 앞에 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복음 앞에 나오는 것은 정말 이례적인 일입니다. 오늘날도 대부분의 유대교인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이 쓰여지던 당시에는 더 심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구세주가 아니라고 하며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을 훼방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로마 정부에 신고해서 어려움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사탄의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사탄의 회'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유대인들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와서 교인들 앞에 절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곧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교회의 권위에 순복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보면서,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에수님께서 그들을 돌보고 계심을 그리고, 사랑하고 계심을 알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주님을 사랑하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무엇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킬 때에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받으신 예수님은 그냥 있지 않으시고, 예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지키는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이름이 영원을 구원하는 능력임을 우리로 하여금 확증해 주심으로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을 알려 주십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교회의 힘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사회적으로는 작은 능력을 가진 교회였지만, 예수님이 보실 때에 그들은 결코 작은 능력의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교회가 가져야 할 영적인 능력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교회의 능력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이름을 믿고 증거하는데서 옵니다.
내가 세상적으로 능력이 작다라고 해서 예수님을 믿는데 위축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 칭찬받는 성도요 교회가 되는데 있어서는 사회적으로 작은 능력을 가졌어도 충분합니다.
우리가 어떤 형편 가운데 있던지 상관없이,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이름을 믿고 증거하는 것이, 교회에게 주시는 참된 능력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많은 교회들이 영적인 빈곤가운데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때에 우리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적으로 더욱 강건해져서, 영원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며, 주님께 칭찬받는 성도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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