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6/2025 - 길. 진리. 생명 [요한복음 14:1-6]
https://youtu.be/jJyDQaK778o
사순절의 기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십자가의 죽으심을 향해 점점 가까이 다가가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식사하시면서 제자 중 하나가 예수님을 팔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가롯유다에게 떡 한 조각을 주실 때에, 사탄이 유다 속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유다는 예수님을 팔려고 밖으로 나갑니다.
유다가 나간 후, 예수님께서 남은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시는데, 예수님께서 어딘가를 가실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라” 고 하십니다. (요 13:33)
이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시몬 베드로가 묻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예수님은 더 이해하기 힘든 말씀을 하십니다. 그 말을 들은 베드로는 “주님 어디로 가든지 내가 가겠습니다. 내 목숨을 버리고 따라가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참 충성스럽습니다. 예수님이 어디로 가실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따라 가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들으시고 그의 마음이 진심임을 아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의 결심과는 다르게 베드로가 어떻게 행할지를 아셨습니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참으로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이해하기 힘든 대화가 오고 갑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예수님은 이미 너희는 알고 있다고 말씀하시니 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같이 꼭 가고자 하시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비롯한 사람들을 그곳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곳은 어떻게 갈 수 있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여러분, 예수님이 없는 삶에는 근심이 자리하게 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이 찾지 못하는 곳으로 가실 것이라는 말에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예수님이 그들과 안계실 때에 제자들이 가져야 할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근심의 일들이 생깁니다. 재정, 가정, 자녀, 건강, 관계의 문제들이 사람을 근심되게 합니다. 더우기 이러한 일을 당할 때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상관하지 않는다고 여겨질 때에 그 근심은 더 가중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근심하지 말고 나를 믿으라”
애굽을 나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 도착했습니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갔고 40일간을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을 인도할 신인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은 금송아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들과 함께 하시고,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눈에서 보이지 않고, 우리 곁을 떠나 있는 것같은 상황에서도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책임져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어디를 가시는지를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 고 하십니다. 이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고 하셨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 집없는 객지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위해서 거처를 예비해 두신다고 하니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아직도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들의 집을 예비하러 가신다는데, 어디로 가시는지, 어떻게 그 일을 하실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근심은 사라지지 않고, 더욱 혼란스러웠습니다.
2. 그런데 제자들을 당황스럽게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당연히 제자들이 알아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디로 갈려고 하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도마가 반문합니다.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그 동안 예수님은 그의 아버지가 하나님 아버지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은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고,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고,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정도 말했으면,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고자 하는 것을 알아차릴 만도 한데, 제자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우리가 주께서 어디로 가는지도 못하는데, 가는 길은 어찌 알겠느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부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이를 준비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로 갈 것이고, 제자들을 데리러 오겠다고 하는데 이를 알아 듣지 못하니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답답하게 해드리는 제자들과 같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가 이 땅에 살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알고, 그 나라에 들어갈 것을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무디는 말하기를 ‘이미 준비된 천국을 바라보는 자는 마치 이미 천국에 있는 듯이 살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Those who look for a heaven made ready will live as though they were already in heaven.
예수님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두고 살아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장차 자신들이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 이르게 될 것을 준비하며 살아갈 것을 바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이, 비록 이 땅에서 살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경배와 찬양 시간에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를 불렀습니다. 후렴을 보면, “오 주님 같은 친구없도다. 저 천국 없으면 난 어떻게 하나. 저 천국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나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하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 마음에 하나님의 천국이 임합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살면서 그 천국을 이 땅에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성도된 우리는, 도마와 같이 예수님이나 자신이 어디로 가야할지를 몰라 근심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믿을 수록,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3.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천국에서 함께 지낼 것을 기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과도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서 함께 거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우리가 가야 할 곳을 준비하실 뿐만 아니라, 어떻게 그곳에 이르는지도 알려 주고 계십니다.
간혹 사람들은 “어디로 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집에서 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아무리 가고 싶은 곳이 있고, 가지고 싶은 집이 있더라도, 돈이나 건강, 자격 등이 갖춰지지 않으면 그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저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그림의 떡이 아닙니다.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도 갈 수 있고, 예수님께서 준비하신 집에서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길이십니다.
이 세상에는 수 많은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마다 자신들이 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택하는 기준들도 다양합니다. 그 길이 편해 보여서, 그 길이 빨라 보여서, 그 길로 가는 것이 멋져 보여서, 부모님이 가라고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 길로 가니까… 여러가지 이유로 길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길을 선택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끝이 어디에 이르냐는 것입니다. 모든 길이 좋아 보여도, 영생에 이르는 길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길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 길 중에 하나라는 말이 아닙니다. 길이라고 할 때에 정관사 the 가 붙어서 오직 그 길이라는 뜻입니다.
사도행전 4:12,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이 세상에 많은 종교들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가르침과 다른 거짓된 말이 있습니다. ‘다원주의 사상’ 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구원의 길이 여러가지라고 말합니다. 산을 오를 때에 여러 길이 있지만 정상에서 다 만나듯이, 세상에 여러 다른 종교들이 있지만 결국 모두 구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듯한 말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구원의 주체이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나에게 올 수 있다.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또한 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 사람들은 진리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다수결로 진리를 결정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진리의 출처는 오직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디모데전서 2:4) 그리고 그 구원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그리고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인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기 위해, 죄인들의 죄값을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대신 치르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나의 죄를 대신 해서 죽어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한명도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죽는다고 해도 단 한 사람도 대속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르실 수 있고, 우리의 생명이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잘 살기를 원하시지만, 무엇보다 우리와 함께 천국에 거하시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면서까지,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셨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이 땅에서 근심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사람들의 죄값을 치르시고 돌아가심으로, 하늘나라의 문을 여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하나님 나라를 품고 하늘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당신께로 올 수 있는 유일한 길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을 때에 멸망치 않고 구원에 이르도록 하셨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은, 예수님을 그렇게 따르고도, 자신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어떻게 가야하는지를 몰라했던 도마와 같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천국길로 가고 있음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집으로 인도할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확신하며, 천국을 품고, 천국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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