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0/2025 - 왜 산자를 죽은 자 가운데 찾느냐? [누가복음 24:1-6]
https://youtu.be/biJB8w9H4Es
부활절이 되면 연상되는 것이 무엇이 있나요? 예수님, 십자가, 빈무덤? 대표적인 것이 달걀일 것입니다. 부활절이 되면 대부분의 교회들이 달걀을 나누어 줍니다. 제가 어릴 때에 교회에서 Youth Group 은 부활절 전 토요일에 달걀을 쌌습니다. 그때에는 셀로판 종이로 달걀을 쌓고 양쪽 끝을 리본으로 예쁘게 묶었습니다. 때로 샐로판 종이색이 달걀에 물들어 달걀이 알록달록하게 변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참 좋아져서 부활절 그림과 문구가 있는 비닐로 달걀을 감싸고 뜨거운 물에 넣으면 달걀에 딱 달라붙어서 예쁜 성탄절 달걀이 됩니다.
그런데 부활주일에 달걀을 주는 이유는 달걀을 통해서 부활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알수 있기 때문입니다. 달걀은 겉으로 보기에는 딱딱한 상태여서 생명이 없는 것 같지만, 시간이 되면 껍질을 깨고 병아리가 나오는 것이 꼭,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사셔서 무덤에서 나오시는 것을 연상하기 때문입니다. 계란을 보실 때에 부활의 의미도 함께 새겨 보셨으면 합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상식적으로 부활을 믿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으니까요.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도 예수님께서 부활할 것이라고 단 한명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도 마찬가지고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세번씩이나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가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잡혀서 고통을 당하고 죽을 것이다. 그리고 삼일만에 다시 살 것이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도 이를 믿지 않았어요.
오늘 말씀도 보면, 예수님이 죽으신 후 삼일째 되는 안식후 첫날에 막달라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들이 무덤을 찾은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해서 간 것이 아닙니다. 관례에 따라 예수님의 시신에 악취를 방지하는 향유를 시신에 발라 드리려고 간 것입니다. 그들은 무덤에 가면서도 무덤을 막은 돌을 어떻게 할지를 염려하며 갔습니다. 그런데 무덤에 가보니 무덤을 막았던 거대한 돌이 굴려져서 무덤이 열려 있었고, 무덤을 지키던 로마군사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인들이 무덤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분명,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고,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갔다고 생각하며 근심했습니다.
그 때에 두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어찌 하여 살아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그렇게 천사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그녀들에게 알렸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은 이 여인과 같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 찾고 있는 모습이 없는지를 성찰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이며, 부활 신앙에 합당한 삶은 무엇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다는 뜻입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죽은 사람이 다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합니까? 사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에 죽은 자를 살리신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12살난 딸이 죽었을 때에 그 집에 가셔서 ‘달리다쿰, 소녀야 일어나라’ 하시며 소녀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인성에 들어가실 때에, 한 과부의 아들의 장례행렬을 보고 그 과부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의 아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도 유명합니다. 그들이 죽었다가 살아난 것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그 의미가 다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죄와 죽음의 권세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다시 사신 것은 예수님께서 죄와 죽음의 권세, 사탄의 권세를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사람들은 번번히 사탄의 권세에 패배해 왔습니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도 사탄의 속임수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들의 아들 가인과 아벨 중에서 가인은 아벨을 시기함으로 동생 아벨을 죽이는 죄를 범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셨을 때에, 사망이 권세가 예수님을 집어 삼키셨습니다. 마치 사탄이 이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여러분, 인류 최대의 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 전쟁, 또한 각종 인재로 인하여 죽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보다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의 대적은 죄와 사망의 권세를 휘두르는 사탄인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들도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고 사람들을 멸망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는 사망과 죄의 권세로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사망의 권세를 무너뜨리신 것입니다.
로마서 6:9,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하리라” 라고 했습니다. 사망의 권세는 더 이상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장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신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 또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긴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로부터 살아나셨음을 믿는 자들은 사탄의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참 생명을 누리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리가 곧 우리의 승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에 절망과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찾아 죽일 수도 있기에 두려워서 몰래 한 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후에 그들은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혔고,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죄책감에 붙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두려움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다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이 제자들에게 예수님 부활소식을 알렸지만, 제자들이 이를 믿지 못하니 그들은 여전히 두려움 속에 있던 것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지만, 이를 믿지 못하니 그들에게 예수님은 죽어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두려움속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평강하라” 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보았을 때에 그들에게 평강이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이들은 삶의 고통과 어려움이 올 때에도, 부활하신 구세주께서 나를 구원해 주실 것을 믿기에 평강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한 의사, 보리스 콘트린은 소련 시절 열렬한 무신론자로, 기독교를 “미신”이라고 조롱하며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중환자실에서 심장병으로 죽어가는 한 기독교인 할머니를 치료하게 됩니다. 할머니는 고통 속에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사 선생님, 괜찮아요. 예수님이 저를 부르실 날이 가까운 거예요. 저는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걸 믿어요. 그러니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할머니는 평안한 얼굴로 생을 마감했고, 그 장면이 콘트린의 마음을 깊이 흔들었습니다. 그는 점점 복음에 마음을 열게 되었고, 결국 회심하여 의사이자 전도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음을 이긴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본 후, 나는 더 이상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을 때에, 우리는 주님안에서 참 평안과 능력을 누리는 것입니다. “평강하십니까?”
3.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믿음은 말씀에서 오는 것입니다.
천사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여인들을 볼 때에 참으로 답답했을 것입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 찾고자 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천사가 그 여인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기억하라”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에서 말씀을 전하시면서 자신의 고난과 죽음,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이 말씀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들에게 말씀의 기억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셨을 때, 도마라는 제자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도마가 돌아오자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이 흥분을 하며 예수님이 살아나셨음을 도마에게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 도마는 말합니다. “내가 그의 손에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그런데 열흘 후에 도마가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예수님의 몸에는 부활의 증거가 있습니다. 못자국과 창자국입니다. 탁지원 국제 종교문제 연구소장에 따르면, 한국 소종파 지도자 중에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만 20여명, 재림예수를 자처하는 경우는 50명이라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나름대로 능력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언을 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을 행하고, 신령한 계시를 받았다며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은 그들이 예수라는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못자국과 창자국이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이나 속임수로 사람들을 미혹하거나 겁박해서 자신들을 따르게 하고, 약탈하며 사람들을 해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죄인들을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던 낮아짐과 죽음의 흔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 몸에 사랑과 대속의 흔적인 못자국과 창자국이 있는 분이 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에 몸에 난 못자국과 창자국을 본 도마는 고백합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이들의 고백이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요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예수님을 도마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믿음은 어디에서 옵니까? 로마서 10: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보면 믿음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해서 표적을 구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을 가질 때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이루어짐을 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뭔가를 보는 것이 복되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볼 때 예수님의 부활을 보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듣고 믿는 우리는 복된 자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믿음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죄사함과 구원의 능력을 경험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우리의 삶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는 복이 우리에게 있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어찌하여 살아있는 자를 죽은 자가 가운데서 찾느냐 그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죽은 자와 같이 여기며 믿음생활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종교개혁가 마틴루터가 카톨릭교회를 상대로 개혁을 하면서 강한 도전과 죽음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 일로 루터가 절망하여 침울한 얼굴로 방에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그 때에 그의 아내 카타리나가 검은 상복을 입고 루터 앞에 나타났습니다. 루터가 놀라서 “여보, 누가 돌아가셨나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그의 아내가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돌아가신 것 같아요, 당신이 그렇게 낙심하고 있는 걸 보니 말이예요”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죽은 자 취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이를 증거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담대히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이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심을 믿고 평강을 누리며, 우리의 주인이 되심을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심을 경험하는 성도,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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